최룡해 訪러? 訪露? 訪蘇?

대중매체에서 북한의 노동당 비서 최룡해가 김정은 특사로 러시아를 방문한 뉴스가 한참이다. 뉴스의 타이틀은 모두가 한결같이 ‘최룡해 방러’이다. 그런데 문제는 ‘방러’라는 말이다. 방러는 “동사(방문하다)+목적어(러시아)=방러”로 표기한 한문식 표기법이다. 우리말은 목적어+동사의 구문인 ‘러시아를 방문하다’가 맞지만, 전통적인 한문 표기법으로는 동사가 선행하게 된다. 그러니 방러란 한자로 표기하면 ‘訪러’라는 한자어+영어의 합성어가 된다.

 

그러나 도대체 ‘방러’가 맞는 말인지를 모르겠다. 아마 한문서당 훈장님이 보았다면 방러는 틀린 말이라고 기자들을 혼냈을 것이다. 한자어로는 訪러가 아니라 방로(訪露)나 방소(訪蘇)가 맞다. 소련(蘇聯)은 역사속으로 사라졌으니 ‘러시아를 방문하다’를 한자식 약어로 쓰고 싶다면 당연히 방문(訪問)+로서아(露西亞)를 축약해서 방로(訪露)라고 해야 옳다. 이것은 미국을 방문할 때 방미(訪美)라고 하지 방아(메리카)라고 하지 않는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도대체 방러(訪問+Russia)가 어디에서 온 조어법이란 말인가?

 

방러가 맞다면 필리핀 방문은 방필이고, 싱가포르 방문은 방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글을 남길 때는 인류의 역사에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에 우리는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모르면 찾아보고 배워야 한다. 필리핀을 방문한다면 방필이 아니라 ‘필리핀 방문’으로 쓰던지 굳이 한자를 쓰고 싶다면 필리핀은 비율빈(比律賓)이니 ‘방비’가 맞다. 싱가포르 방문은 그냥 ‘싱가포르 방문’이 맞고 한자어로 쓰고 싶다면, 싱가포르는 한자로 신가파(新嘉坡)이니 ‘방신’이 맞다. 마찬가지로 러시아 방문은 그대로 ‘러시아 방문’으로 쓰던지 아니면 ‘방로’가 맞는 것이다.

 

기자는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 교육을 받은 분들일 터인데, 도대체 한글을 쓴 것인지 한문을 쓴 것인지 한글 구사 능력이 의심스럽다. 한문을 배우던 시대에서 영어를 배우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웃어넘겨야 하는 것인지, 도대체 이 시대 우리의 한글은 어디에 위치해있는 것인지, 슬픈 우리 한글의 자화상을 보는 듯 싶어 각성을 촉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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