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싸움만 있고 비정규직은 없었다



출처 : 한경닷컴 > 뉴스
일자 :2009년 6월 30일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비정규직법 개정안의 시한 내 처리가 무산됐다. 여야는 30일 밤늦게까지 절충을 벌였으나 최대 쟁점인 법시행 유예기간을 놓고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해 합의안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여야는 막판까지 타협은 커녕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는 등 표 논리 속에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의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에 따라 71만명 비정규직 근로자의 해고 위기가 현실화됐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유선진당 등 3당 환경노동위 간사들은 이날 비정규직법 개정을 위한 마지막 담판에서 연간 1조원의 정규직 전환지원금 확보에는 의견접근을 이뤘으나 법 시행 유예기간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비정규직법 처리 무산에 따른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후폭풍도 거셀 전망이다. 7월부터 법이 시행되는데도 지난 2년 동안 손 놓고 있었던 노동부의 무기력증과 표를 의식해 6월 초까지 당론조차 정하지 못한 한나라당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된다. 해고대란은 없다며 기존 비정규직법 강행을 밀어붙인 민주당은 향후 대량실업 사태가 발생할 경우 정치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엄현택 환노위 수석전문위원은 "당장 7월에만 9만여명이 정규직 전환 또는 계약해지 대상인데 이 가운데 재취업이나 재계약에 실패한 3만명가량이 실업자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형호/김유미 기자 chsan@hankyung.com 

책 제목 : 비전의 충돌
저자 : 토머스 소웰

비전의 충돌은 대립된 이해관계의 갈등과는 다르다. 이익과 관련된 문제의 이해관계 당사자들은 대체로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들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 것인지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비전이 충돌할 때 특정 비전에 가장 강하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도 그 비전의 중요한 가정들에 대해선 거의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 우리 모두는 비전을 갖고 있다. 비전은 우리의 사고방식을 소리없이 결정한다.  

비전은 도덕, 정치, 경제, 종교 그리고 사회적인 것일 수도 있다.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는 우리의 비전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때로 필요하다면 비전을 저버리기 보다는 파멸을 감수한다.  

우리는 비전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 제외하고는 비전을 위해 거의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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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신념을 포기하기보다는 파멸을 택했다. 

난 그들이 어떤 신념으로 정치에 임하는 지, 우리 국민에게 어떤 비전을 주기 위하여 일하는 지 알지 못한다. 그렇게 크게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최소한은 기대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자신의 갈 길을 가고야 말았다.

사실 나도 지금 비슷한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다. 이제는 나도 사람을 뽑아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그런데 마침 내가 필요로 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왔다. 하지만 앞으로 한동안은 투자 및 재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그에 대한 지원을 할 수가 없는 입장이다. 그로부터 많은 제안이 왔지만 결국 돈이 들어가는 것은 모두 거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발전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최소 6개월간은 재투자와 생존이 더 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제안한 것들이 옳은 것들이고, 마케팅이라는 것이 신발의 판매에서 절대적이기는 하다. 문제는 마케팅을 하기 위한 제품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가 먼저 신발에 대한 오더를 주거나, 투자를 한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하지만 투자자의 속성 또한 ‘최소의 위험,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다보니, 당분간은 지켜보면서 신발판매가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다음에 투자를 하겠다는 약속만을 하고 있다. 나로서는 그를 나의 직원으로 고용해서 안정적인 기반위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현재 내가 보유하고 있는 자원은 그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앞으로 당분간 이 문제는 풀어야 할 고민거리이기는 하지만, 그가 나를 떠날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래서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하고, 향후에도 그가 우리 신발에 공헌할 수있도록 계약을 하려고 한다. 그런 점을 그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열악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그는 필맥스(Feelmax) 신발에 그의 열정을 쏟겠다고 하면 더욱 전의를 다지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비정규직이 된 그에게 감사한다.  

그런 점에서 난 행운아라고 할 수있다. 힘이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사람을 만났으니 말이다. 난들 왜 그를 고용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까? 다만 내가 가진 자원내에서 나의 전략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추미애위원장은 ‘노동계의 동의를 구해와야 비정규직 개정안을 상정하겠다’고 했다. 그럼 경영계의 동의를 받고 비정규직법을 통과시켰는 지 묻고 싶다. 말이 사용자측이지 나같은 회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마도 수십만개는 될 것이다. 어쩌면 피고용자보다 못한 수많은 사장들을 그들은 고려하지 않고 있을 지도 모른다. 지금 국회에서 난무하는 수많은 논의는 나름대로 논리성과 일관성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비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자신들만의 비전을 고집하면서 수많은 삶을 불안정하게 몰고 가고 있다.  (때로는 인간의 행복에 비하면  무의미할 수있는  비전때문에 정치인들은 전쟁마저도 감수한다).

고용자로서는 직원이 수시로 바뀌는 것을 원치 않는다. 오래있는 직원이 바로 그 회사의 보이지 않는 노하우이기 때문이다. 피고용자 역시 자꾸만 자리가 바뀌는 것을 원치 않는다. 특히 회사를 바뀐다는 것은 스스로의 경력 관리에도 문제가 있는 데다,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고용기간에 대하여 제한을 두는 것보다 같은 일을 하는 데 보상체계가 다른 불합리함에 더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 것이야 말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하는 일이 같고, 보상체계가 같다면 굳이 회사로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나눌 필요가 없을 것이고, 직원으로서는 회사에서 오래 근무하기 위하여 열심히 일을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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