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 우울증 확률 높다”



출처 : 한경닷컴 > 뉴스 > 국제
일자 : 2009년 2월 26일

소득이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캐나다 국영 CBC 방송이 25일 보도했다.

CBC는 캐나다보건정보원(CIHI)의 조사 결과를 인용, 전국 13개 도시 주민 중 19.2%가 극빈층으로 분류되지만, 병원 치료를 받는 우울증 환자 중 극빈층 비중은 25.5%에 달했다고 밝혔다. 반면, 일반 주민 중 고소득층으로 분류된 20.5%가 우울증 환자 중 차지하는 비중은 15.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CIHI는 조사 결과가 종전의 다른 유사한 조사나 다른 나라의 연구 사례와도 부합하는 것이라면서, 앞서 캐나다통계청도 저소득층이 고소득층에 비해 일상적인 일로 스트레스를 받을 확률이 1.58배 더 높다고 발표한 바 있다고 전했다.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CIHI는 특히 가난한 여성의 경우 부유한 여성에 비해 우울증 증세로 어려움을 겪게될 가능성이 25% 더 높다고 전했다.

(밴쿠버연합뉴스) 신상인 통신원 sanginshin@yna.co.kr ☞ 기사원문보기

책 제목 : 학습된 낙관주의
저자 : 마틴 셀리그만

현대인은 이전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을 겪어야 하는 가? 이에 대한 질문중 하나가, 자신으로서는 처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 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학습된 비관주의’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울증을 벗어나는 기술과 그것의 재발을 막는 법도 배워야 한다.

‘학습된 낙관주의’는 ‘긍정적 사고의 힘’의 재발견이 아니다. 낙관주의의 기술은 행복한 사건들을 설파하는 핑크빛 주말학교에서 나온 것도, 단순히 긍정적인 주문을 외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실패를 경험할 때 ‘부정적이지 않은 사고’의 힘을 이용해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 모두가 살다 보면 겪게 마련인 실패에 직면하여 자신에게 내뱉는 파괴적인 말들을 바꾸는 것이 낙관주의의 핵심 기술이다.

낙관주의의 혜택은 무한한 것이 아니다. 비관주의도 사회 전체에서든 우리 개인의 삶에서든 나름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 비관주의가 (냉철한 현실 파악을 통한) 귀중한 전망을 펼쳐보일 때 우리는 용감하게 비관주의를 감내해야만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맹목적 낙관주의가 아니라 유연한 낙관주의, 눈을 뜬 낙관주의다. 우리는 비관주의의 예리한 현실감각이 필요할 때 그 것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헤매서는 안 될 것이다.

비관주의가 필요할 때 : 실패의 위험이 클 때, 낙관주위가 필요할 때 : 그 외 모든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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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참 웃을 일이 별로 없다. 들리느니 우울한 소식들 뿐이다. 그러니 어렸을 적에는 듣지도 못했던 ‘우울증’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지금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비율은 2차대전때보다도 10배이상이라고 한다. 이 책이 발간된 것은 1990년이니 아마 지금은 11배이상은 되지 않았을까?

살면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불행의 원인에 관하여 여러분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에 관하여 흔히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탓이야. 앞으로도 그럴 거야. 어찌해도 소용없을 거야.” 반면에 불행에 굴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황이 안 좋았어. 어쨌든 좀 지나면 나아지겠지. 이게 인생의 전부가 아니잖아?”

불행한 일에 대해 습관적으로 행하는 설명의 양식은 실패했을 때 그냥 내뱉는 말 이상의 것이다. 자신이 중요하며 가치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며 하찮고 가망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이 것이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를 가르는 척도이다.

그렇다면 왜 꼭 낙관적이어야 하는가? 그 것은 낙관주의가 ‘인내력’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주로 보험판매인들의 사례로 설명하였다. 그들에게는 판매에 대한 재능과 동기가 인내력만큼 중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거절당하는 경험이 쌓임에 따라서 인내력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띠게 되는 듯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진행된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보험판매인의 예를 들었다 뿐이지, 남의 거절을 받는 게 일상적인 직업인 사람들,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사람, 하루 하루가 어려운 사람, 앞으로 닥칠 일이 걱정되는 사람이 다 우리들이다. 그렇지만 다 그게 우리의 책임은 아니다. 남 탓도 좀 해보자. 어쩌다 보니 운이 안 좋았고, 어쩌다 보니 하필 어려운 시기에 태어났고, 어쩌다 보니 어려운 날씨가 좋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그저 여러 가지 변수 중에서 하나가 잘못되어 지금의 내가 어려울 뿐이다. 더 인내력을 갖고 자꾸 무언가를 하다보면 세상은 자꾸 기회를 준다. 그래서 인내력, 끈기가 세상살이에서는 중요하다. 물론 ‘물위를 걸을 수있다는 자신감’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이 어리석어서, 재능이 없어서, 못생겨서 그랬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을 개선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패의 원인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 것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할 수있다. 나쁜 일의 원인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건 그 것이 변할 수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가난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것은, 가난 그 자체가 가장 큰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어느 동물에게나 배고픔은 생존에 관한 문제이고, 그 이상의 스트레스는 없다. 그리고 가난을 못 벗어날 것이라는 고통은 희망이 없는 우울증으로 우리를 몰아간다. 그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을 겪느니, 차라리 ‘낙관주의’를 억지로라도 학습해서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게 스트레스도 덜 받고, 좀더 건강하게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