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한경닷컴 > 뉴스

일자 : 2008년 6월 13일




쇠고기를 넘어 정권퇴진운동으로 번진 서울 도심 시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집단최면의 양상까지 보이고 있으니 말도 안 되는 것조차 말이 되고,그것이 정당화.일반화되는 오류는 필연이다. 어떤 논리적 합리적 이성적 설명도 통하지 않게 돼 있다.




결국 ‘실용’이 문제였다. 민심이반의 불씨가 됐던 ‘강부자'(강남 땅부자),’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S라인'(서울시) 인사에 대해선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잘못을 인정했으니 더 말할 게 없다. 미국 쇠고기에 대한 실용주의도 마찬가지다. 광우병의 존재,그리고 인간광우병의 발생 확률은 ‘과학적으로’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고 국민건강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쇠고기를 주고 FTA(자유무역협정)라는 더 큰 이득을 취하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그런 실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쇠고기 협상은 졸속의 실패작이 됐지만 솔직히 그런 접근 자체를 잘못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실용의 치명적 결함은 명분과 이념의 공격에 한없이 취약하고,철학의 빈곤으로 비춰지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는 합리적 사고를 요구하지만,명분과 이념은 쉽게 감성으로 흐른다. 아무리 가능성이 낮아도 그렇지 국민 목숨이 걸린 문제를 정부가 팽개쳤다? 여기에 반미주의까지 실린 ‘뇌송송 구멍탁’ 한마디에 넘어가는 게 군중이다.




오류는 또 있다. 명분과 이념을 배제하고 효율과 실익을 추구하자는 실용이 오히려 이념화되고 만 것이다. 실용의 틀에서 이념에 매달렸던 지난 참여정부의 노선이 부정된 것까지는 좋았다. 어쩌면 오늘의 혼란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실용이 폐기되어야 할 가치는 결코 아니다. 잘못은 이 대통령의 실용 리더십이 태생적인 CEO(최고경영자)의 실용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정의 일방통행이었지,근본적으로 실용의 탓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용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功利)주의에 기반한 철학이라고 본다면,국가운영의 실용은 바로 좌와 우를 넘나들고,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적 대치를 해소하는 것이다.




이념적으로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대립적 노선과 정책을 선택적으로 섞고 조정.절충.타협.양보.포용하는 데 길이 있다.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적응하는 국정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게 실용의 생명이다.




추창근 논설실장 ☞ 기사원문보기








책 제목 : 시장인가? 정부인가?

저자 : 김승욱,김재익,조용래,유원근




공공 정책을 선택할 때 효율성 기준과 공평성 기준에 따라 서로 다른 대안이 채택될 경우에는 첨예한 논란이 발생한다. 예컨대 생활보호 대상자에 대한 지원이 지출에 비해 효과가 적어 복지 예산을 삭감하자는 법안에 국회에 제출되었다고 하자. 예산이라는 공공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자는 경제적 기준으로는 이 법안이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복지 예산 삭감은 생활보호 대상자들의 정치적 요구를 묵살하는 것이며, 또 공평성의 측면에 문제가 있다. 더구나 일부 계층의 희생을 바탕으로 사회적 효율성을 높이는 행위가 정당한 가에 대한 논란도 있을 수있다.




다음은 어떤 정책을 수립할 때 나타날 수있는 정치인과 경제인의 차이점이다.


















정 치 인



경 제 인





자원배분의 기준



공 평 성



효 율 성





정책 평가의 기준



투 입



산 출





정책 필요성의 기준



유권자의 요구



사회적 필요성





정책의 우선 고려대상



유권자 지지 집단



사회 구성원 전체





정책 수립 기술



교섭.타협.등 정치적 과정



분석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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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대통령이 처음 당선되었을 때만해도 최초의 CEO출신 대통령으로서 경제를 살릴 것이라고 많은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수많은 문제들에 직면해있다. 사실 그로서는 억울한 면도 많다. 기름 값이 배럴당 150불을 올려다 보고 있고, 이에 따라 모든 물가가 오르는 것을 이명박대통령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정부로서는 어쩔 수없는 외부환경 변수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잘못은 지금 ‘대통령 탓’이 되고 있다. 하기사 그런 일이 어찌 이번 뿐인가? 아주 오래 전의 일은 고사하고 최근의 대통령 중에서 집권중이나 퇴진후에 국민의 칭찬을 받았던 적이 있었던가? 그런 면에서 우리는 아주 편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IMF 외환위기로 인하여 국내 총생산이 줄어든 적 말고는 한국 경제가 후퇴한 적은 없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한국민을 대단히 ‘낙관적이면서 위기에 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평한다.




그럼 지금의 이명박대통령이 저리도 비난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광우병 쇠고기’이다. 사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리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대부분의 정책 판단은 이미 전 정권에서 정해졌고, 이를 최종 결정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경제적으로 한국에 이롭거나, 적어도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시해도 좋을 만한 확률의 광우병과 FTA라는 더 큰 이득, 그리고 도시민들에 저렴한 가격에 쇠고기를 공급할 수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대다수 국민의 환영을 기대했을 것이다. 경제가 정치를 원활히 흘러가게 할 것이라는 CEO적인 생각이었다.




그런데 상황은 거꾸로 흘러갔다. 혜택을 받는 다수는 조용하지만, 피해를 보는 소수는 피흘리며 반대를 한다. 게다가 그 소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공평성’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지지집단의 요구에 충실하게 대변한다.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게 되었다.




정치는 공평한 분배에 관한 것이고, 경제는 최대 효용의 창출에 관한 것이다. 무엇이 먼저인가에 따라 ‘정치경제학’이 될 수도 있고, ‘경제정치학’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치경제학’은 익숙한 단어이지만, ‘경제정치학’은 아직 익숙하지 않다. 새로운 대통령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어서 빨리 그의 ‘경제정치학’이 자리를 잡고, 모든 사람들이 화합을 해서 어려워져가는 국제 경쟁 시대에 대처할 시간을 벌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