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이 끝나가는 딸과 함께 남한산성을 올라갔다. 아는 분은 해외로 조기유학을 보낸 딸을 위해 이국의 문화에서 성장할 그녀가 공부를 마치고 성인이 되어서 존재감의 혼란을 겪지 않도록 우리나라 전통과 문화의 숨결이 느껴지는 유적지와 아름다운 자연명소를 틈나는대로 많이 보여주었다고 한다.

얼마 남지 않은 겨울 끝자락의 산성은 마른 나뭇가지들 속에 진중하게 둘러 있었다.
남한산성은 인조와 조성 대신들이 준비없이 명분만으로 청과 맞서다 추운 겨울 꽁꽁 언 압록강을 넘어 질풍같이 서울로 진격해오는 청군을 피해 강화도로 가려다 청군에 길이 막혀 겨우 피신한 곳으로 삼전도의 치욕의 역사를 낳은 곳이다. 서울을 버리고 급하게 도망한 남한산성 안에는 적은 수의 군사와 한계절도 버티지 못할 적은 식량밖에 없었다. 청은 산성을 포위하고 주요 통로를 차단했다. 대신들은 주화파와 척화파로 갈려  자기들끼리 싸우기 바빴고 백성과 병사들은 전투에 나서기 전에 얼어죽을 판이었다.결국 인조는 청에 항복하고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항복의식을 치르고 만다. 
병자호란을 다룬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은 감당하기 어렵고 씻어내기 어려운 역사의 치욕에 대해 “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으며,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치욕이었다.”고 말한다. 

삶에는 때로 치욕을 받아들여야만 계속되는 삶을 기약할 수 절망적인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아주 오래된 역사속의 시간을 차분히 성곽을 따라 걸으니 입춘의 매서운 추위보다 옛사람의 자취가 진하게 느껴졌다.                           

겨울이 끝나고 새봄이 오면 남한산성은 연초록 순이 돋고 푸른 아름다움을 뿜어낼 것이다.  평범한 삶도 영광과 치욕이 뒤범벅되 만들어지고 치욕의 역사도  우리의 또 다른 이력이며  삶의 증거이다. 치욕도 우리 삶의 엄연한 부분으로  삶은 다양한 무늬로 완성된 치열한 흔적의 이력이다. 그래서 가끔은 위안과 휴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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