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들은 노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살아보지 않아서다. 사람들이 흔히 이성적으로 다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젊은 사람들에게 노인들도 성생활을 할까? 라는 질문을 하면 ‘안 한다’가 대다수다. 하지만 노년에도 성생활을 지속하는 남성이 많다. 한국소비자원이 노인의 날(2013년 10월 2일)을 맞아 60대 이상 어르신 500명을 대상으로 성(性) 안전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312명(62.4%)이 성생활을 하고 있었다. 특히 성생활을 하는 어르신 중 상당수가 발기부전 치료제나 성기능보조 의료기기를 접한 경험이 있었다는 보고가 있다. 예전에 내가 ‘노인의 4고’(노인의 건강 문제, 노인의 경제적 문제, 노인의 역할상실, 노인의 소외감)를 언급한 일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노인의 성문제’는 노인의 소외 문제와 결부되어 아주 심각하다.

최근에 모 방송사에서도 ‘노인의 외도문제’에 대해서 잠깐 다루는 듯 했지만 사실 그렇게 지나가듯 다루기에는 노인의 성문제는 상당히 비중 있는 사회문제다. 워낙 성행위와 관련된 문제는 개방되지 못하고 은둔되거나 비밀스런 일로 인식되어 통계를 낸다거나 드러내 놓고 거론하는 데는 제약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의 성 문제는 날마다 그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노인의 성은 젊은이의 성과는 그 내용을 달리하는 것이 사실이다. 노인은 이미 ‘종족번식’의 의미보다는 ‘4고’에서 드러난 ‘소외감’, 즉, ‘외로움’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누구나 느끼며 산다. 부부로 살든, 돌 싱으로 살든, 미혼이든 다 마찬가지다. 외로움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동안 언제나 같이 가야하는 영원한 동반자 관계다. 그 외로움의 정도는 개인의 트라우마에 관여하므로 사람마다 다를 뿐 누구나 외로움은 있다. 간혹 외로움을 잘 모른다는 사람이 있지만 들여다보면 자신의 복잡한 환경, 복잡한 관계로 인해 외로움을 인지할 겨를이 없을 뿐 외로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외로움에는 다른 대체물이 있다. 부모, 친구, 일, 책임, 의무 등등의 조건들이 그 외로움을 대체할 수 있다. 그래서 잠시 우울하다가도 바쁜 일상에서 자신의 외로움을 잊어버리고 술 한 잔으로 하루를 잊고 다음날의 분주함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노인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노인은 이미 이 세상에서 4고에 관계되는 것들에 깊숙이 노출 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악한 상황 속으로 끝없이 내 몰린다. 그나마 돈이 있는 노인은 돈으로 성을 산다. 그래도 건강이 좀 뒷받침 되는 노인은 또 다른 외로운 노인과 즐거울 수 있다. (이것이 합리적인 행위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여기서는 노인의 외로움만을 두고 말 하고자 함이다.)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없는 노인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그렇게 비참하고도 외롭게 생을 견뎌내야 하고 종국에는 고독사(孤獨死) 하기도 한다. 보건복지부 집계를 보더라도 전국 무연고 사망자는 2009년 587명, 2010년 636명, 2011년 727명으로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고독사의 주요 원인인 1인 가구도 지난 20년 동안 3배 가까이 급증했다고 한다.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1인 가구 비율은 25.3%에 이른다. 2020년에는 30%에 이를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한 부모가 열 자식은 거둬도 열 자식이 한 부모 못 거둔다.’는 말이 있다. 15년 후면 우리나라도 초 고령화 사회에 접어 들것이다. 유엔 기준,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20% 이상인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당장 우리 집만 해도 70넘은 노모님이 두 분이다. 세월이 좋아 건강은 그만 하시지만 외로움은 어쩔 도리가 없다. 시골에 사시는 노모님은 그나마 수십 년 함께 지낸 벗들이 계셔서 다행이지만, 서울에 계시는 노모님은 고향을 떠나 살다보니 오랜 지기도 모두 세상을 떠나고 거의 대부분이 큰 정이 없는 나그네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계신다. 아무리 자식이 돌보아 드린다 해도 한계가 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공표해 놓았지만 사실 내 가정, 내 자식만 해도 학업으로 직장으로 모두 나가 살다보니 가족의 형태가 해체된 지도 오래된 것이 현실이다.

잘 지내려니, 잘 있겠지, 믿는 마음으로 사는 도리밖에 없다. 앞으로 이러한 형태의 가족해체는 더욱 심각할 것이다. 사람들은 더욱 서구적으로 변해 갈 것이고, 바쁜 일상에서 나 자신의 건강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상황으로 더욱 더 내 몰리게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의 인식도 떨어져 사는 것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렇게 인정해야 변화에 대한 그 다음의 대책이 강구될 수 있다. 하지만 대가족 사회를 살아 온 우리의 부모님은 다르다. 아직은 자녀 된 우리가 내 부모님들을 좀 더 세심히 돌보는 방법 밖에는 다른 대책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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