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인수봉 북벽에 ‘쉬나드’ A, B길이 있다. 암벽 코스다. 산은 좋아 하나 암벽 타기엔 신체적 결함이 있어 직접 확인한 적은 없다. 다만 자료사진으로는 자주 봐 낯설지 않다. ‘쉬나드’ 길에 대한 사연 또한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쉬나드’ 길은 산악인들에게 낯익은 아웃도어 의류기업 ‘파타고니아(Patagonia)’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 이름에서 따왔다.

그렇다면 ‘이본 쉬나드’는 인수봉과 어떤 인연이 있었기에 영광스럽게도 인수봉 암벽에 그 이름을 남겼을까? 1963년, 프랑스계 미국인 청년이 주한 미군으로 배속되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국만리 낯선 땅에서의 통제된 생활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그로선 고역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눈에 북한산 인수봉이 들어왔다. 미끈한 인수봉 암벽이야말로 더할나위 없는 위안처라 생각했다. 입대 전 이미 등산 장비 제조에 흠뻑 빠져 암벽을 찾아 자신이 만든 등산공구를 직접 필드 테스팅할만큼 암벽 내공이 깊었던 터라 주말이면 버릇처럼 인수봉에 매달렸다. 177m에 이르는 암벽을 제대로 된 릿치화도 없이 한나절 만에 개척했을 정도로 암벽 등반 실력이 탁월했다. 그가 즐겨 오르내렸던 2개 코스가 바로 지금도 암벽을 즐기는 산꾼들이 보물처럼 아끼는 ‘쉬나드 A길과 B길’이다.

바로 이 루트를 개발한 청년이 본국으로 돌아가, ‘파타고니아’를 창업한 것이다. ‘파타고니아’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아웃도어 브랜드이다. 해외에선 명성이 자자하나 우리나라에선 이름 값을 제대로 못하는 편이다. 물론 전문 산꾼들 사이에선 인기 ‘짱’이지만.
한국에서는 일단 ‘파타고니아’ 매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 또한 비싼 몸값을 내세운 스타마케팅도 없다. 잘나가는 톱스타 내세워 홍보에 혈안인 아웃도어 브랜드들과는 섞이지 않겠다는 건지, 배짱인지, 아니면 한국 소비자 보기를 소 닭 보듯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어쩌다 광고한다는 것이 “don’t buy this jacket”(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또는 “buy less but used”(새 옷 사지 말고 헌 옷 사자)이니, 황당하기 그지 없다.
산길을 걷다가 ‘파타고니아’ 브랜드를 입은 산객을 만나기도 싶지 않다. 브랜드 로고를 눈에 잘 띄지 않는 위치에, 아주 작게 붙여 놓기 때문에 설령 스쳐 지나도 잘 모른다. 그런데도 미국 아웃도어 의류시장에서 ‘파타고니아’의 시장 점유율은 ‘노스페이스’에 이어 2위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그래서 온라인 서점을 뒤져 책 한권을 샀다. 책제는 ‘리스판서블 컴퍼니 파타고니아’다.
역시 연녹색 책 표지에도 자사 재킷 사진과 함께 ‘Don’t buy this jacket’이란 문구가 실려 있다. 2011년 뉴욕타임즈에 실린 광고다. 자사 최고 인기 상품인 이 재킷을 사지 말라니, 이를 본 누구든 황당할 수밖에 없다. 사지 말아야 하는 설명을 덧붙였다.

“첫째 이 재킷을 만들기 위해 135리터의 물이 소비된다. 이 양은 45명이 하루 3컵씩 마실 수 있는 양이다. 둘째 이 제품의 60%는 재활용되어 생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20파운드의 탄소배출이 되었는데, 이는 완제품 무게의 24배나 되는 양이다. 셋째 이 제품은 완성품의 2/3만큼의 쓰레기를 남긴다.”

재킷이 제품화되기까지 환경에 얼마나 해악을 주고 있는지 공개한 것이다. 그러면서 중요한 사실은 빠트리지 않고 전달했다.

“60%가 재활용된 이 폴리에스터 재킷은 높은 기준을 적용해 한땀한땀 바느질 되었다. 다른 여느 제품보다 견고한 퀄리티를 가졌다고 자부한다. 그렇기에 당신은 이 옷을 가능한 오래 입어야 한다. 자주 새 옷으로 바꿀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 제품은 오래 입어도 새 것처럼 튼튼하다. 만약 도저히 지겨워 못 입겠다 싶으면 재활용해서 다시 새 옷처럼 입을수 있도록 우리가 도울거다. 그러니 꼭 필요하지 않은 이 옷을 새로 구매하지 말아 달라.”

지구 보호를 위해 자사 제품을 사지 말라고 광고하는 이가 ‘이본 쉬나드’다.
파타고니아는 남아메리카의 최남단, 아르헨티나 남부에 위치한 산이름이다. 이 산은 지상낙원을 떠올리게 할만큼 원시 상태로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에코브랜드를 추구하는 파타고니아社의 이미지가 딱 들어맞는다. 바로 창업자, ‘이본 쉬나드’의 독특한 경영 철학은 ‘환경’에서부터 출발한다.

파타고니아는 환경 보호 기업을 목표로 유기농·친환경 원단만 쓴다. 하청업체 복지까지 꼼꼼히 살피다 보니 가격도 다른 브랜드에 비해 훨씬 비싸다. 적자가 나는 해에도 매출의 1%는 환경 기부금으로 낸다. 환경 기준을 어기는 협력업체는 원가가 아무리 싸더라도 협력사 명단에서 배제시킨다.
‘착한 기업’을 고집하면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수익성 악화에 빠지기 쉽다지만 이를 뛰어 넘었다. 연평균 35%씩 성장하며 세계적 브랜드로 자리매김 했다.

‘파타고니아’는 매장을 럭셔리하게 꾸미거나 값비싼 위치를 고집하지 않는다. 지구환경에 대한 깊은 배려를 전면에 내세운 디자인으로 단순함과 실용성, 그리고 재활용을 원칙으로 한다. 허름한 건물에 재활용 제품들로 인테리어하여 사용한다. 그것이 ‘이본 쉬나드’의 정신이다.

그런 ‘파타고니아’가 지난달 초 국내 합작법인을 설립, 진출했다. 대표 매장인 강남점은 쇼핑객이 넘쳐나는 논현역과 교보타워 사거리 중심에 둥지를 틀었다. ‘이본 쉬나드’의 철학과 다소 배치된다. 연 4조 원에 달하는 국내 아웃도어 시장이라 예외규정을 둔 것일까, 그것이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