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겨울 소백은 천상설원이요, 여름 소백은 산상화원입니다.

바람이 스치고 지난 능선에 들꽃 향기가 번집니다.
지그시 실눈을 뜨고 초원을 응시합니다.
어디선가 도레미송이 들려오는 듯 하지요.
초원 저편에서 마리아의 손을 잡은 일곱 남매의 모습도~
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여름 소백 능선에 오르면 고교 시절 단체관람 했던 추억의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의 아름다운 영상이 오버랩 됩니다.
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죽령에서 천문대까지는 7km로 콘크리트 길이지요.
일반 차량은 드나들 수 없습니다.
죽령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해 연화봉을 오르는 길은 이처럼
흙길이 아닌 포도라서 조금은 지리한 편입니다.
그런데 용케도 천문대로 들어가는 국립공원 출입차량을 얻어탔으니~
이를 두고 ‘천우신조’라 하겠지요.

애초 계획은 비로봉, 비로사(풍기 삼가동)로 하산하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7km를 空으로 챙겼겠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내친김에 국망봉, 초암사(순흥 배점리)까지 고고씽~ 할겁니다.
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천문대를 2.7km 앞둔 제2연화봉(1,357m) 강우레이더관측소에 잠시 들렀습니다.
원주형 건물이 괴물처럼 버티고 서있지요,
문명의 이기를 위해선 꼭 필요한 시설물이긴 하겠으나
백두대간이 지나는 길목, 정수리에 거대 말뚝을 박아 놓은 모양새라 씁쓸합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명산의 정기를 끊겠다며 산 정수리에 박아놓은
쇠말뚝이 연상되는 건…글쎄 너무 억지인가요.
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관측소에서 건너다 보이는 천문대와 연화봉은 운무와 숨바꼭질 중입니다.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모습을 펼쳐보이느라 용을 씁니다.
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소백산 천문대에서부터 본격 걷기에 나섰습니다.
200m를 걸어 연화봉에 올랐습니다. 전무후무한 기록일 겁니다.
달랑 5분 걸어 해발 1,383m에 이른 것 말입니다.
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잿빛 구름이 잔뜩 드리워져 있어 땡볕 걱정은 덜었습니다.
주말인데도 불구, 산객 발길이 뜸합니다.
아마도 연분홍 철쭉이 만개했을 지난 6월초엔 밀려든 산객들로
소백산 전체가 몸살 앓았을 것입니다.
배려 깊은 산객들이 치유의 시간을 갖도록 한 것일까요?
아니면 여름 소백의 고약한 땡볕능선을 기억해서일까요?
어쨌거나 산자락을 통째로 전세 낸 기분이었습니다.
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제1연화봉(1,394m)을 오르는 깔딱계단에 멈춰 서서 뒤돌아 봅니다.
운무가 걷히면서 초록 산자락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지난 겨울 걸었던 도솔봉 능선도 희미하게 가늠됩니다.
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비로봉에 이르는 동안, 잠시 나를 잊었습니다. 무아지경이지요.
소백의 품은 이렇듯 미혹한 중생도 기꺼이 끌어안아 줍니다.
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그렇게 무념무상으로 비로봉(1,439m)에 섰습니다.
이곳은 이름모를 온갖 야생화가 지천인 산상화원입니다.
싱그런 풀내음이 골바람에 업혀 사방으로 번집니다.
한겨울 이곳은 눈보라와 독한 칼바람 때문에 잠시 머물기 조차 힘들지요.
그러나 여름의 비로봉은 여유만만입니다.
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어떤 이는 산상화원에 달떠 실시간 영상을 전하느라 바쁘고,
또 어떤 이는 ‘소백의 여름’을 문자로 열送 중입니다.
잿빛 구름사이로 파란하늘이 설핏 모습을 드러냅니다.

다시 국망봉을 향해 걸음을 옮겨 보지만 쉬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일망무제의 조망이 놓아주질 않기 때문이지요.
비로봉에서 국망봉 방향으로 400m를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갈림길에서 백두대간을 버리면 충북 단양 어의곡리로 내려섭니다.
어의곡리는 여러 ‘산악회’들이 들머리로 즐겨 찾는 곳이지요.

소백의 너른 초원을 뒤로하고 다시 오롯한 숲길로 들어섰습니다.
숲길에선 새소리와 숲내음이 초원을 벗어난 아쉬움을 달래줍니다.
숲그늘이 주는 안온함은 절로 사색을 이끌어 내지요.
그렇습니다. 숲속에 들면 누구나 시인이고 철학자이지요.
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다시 숲길이 열리면서 사방이 탁 트였습니다.
국망봉이 코 앞에 바짝 다가섰구요, 그 뒤로 상월봉도 낯이 익습니다.
이곳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순흥 초암사 방향입니다.
곧장 300m를 더 진행하여 국망봉을 찍은 다음, 이곳으로 유턴하여
초암사 방면으로 내려설 것입니다.

마음 같아선 대간길을 이어 걸어 고치령으로 내려서고 싶으나
하산지점인 순흥 배점리에 동향 동문들이 얌생이파티?를
준비해놓고 있기에 절대로 삐딱선을 탈 수가 없습니다.
실은 오늘은 모임참석이 주이고, 산행은 덤으로 얹은 것이지요.
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천문대를 출발, 놀며 쉬며 7.2km를 걸어 국망봉에 닿았습니다.
거뭇거뭇한 바윗덩이 아래, 얌전히 놓인 정상표시석엔
‘小白山 國望峰 1,420m’라 음각되어 있네요.
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왕건에게 나라를 빼앗겨 명산 대찰을 떠돌자,
왕자인 마의태자가 신라를 회복하려 나섰지만 실패했지요.
결국 왕자는 엄동설한에 베옷 한벌 걸치고서 망국의 한을 달래며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이곳 봉우리에 올라 옛도읍인 경주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지었다 하여 ‘國望峰’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물론 다른 ‘說’도 있으나, 이 이야기가 감성적으로 와 닿기에…^^
순전히 제 취향대로 옮겨다 놓은 겁니다.

국망봉을 벗어나 서둘러 초암사 갈림길로 유턴하여 능선을 내려섰습니다.
갈림길에서 산아래 초암사까진 3.8km.
모임 약속시간 보다 족히 두시간은 오버하게 생겼으니….
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국망봉 아래 명물, 돼지바위의 넉넉한 미소를 보며 소원했습니다.

산 아래서 기다리다 지친 후배님들 주둥이가 댓발은 나왔을 터이지만
저 돼지바위처럼 넉넉한 미소만큼은 잃지 말아 달라고…

돼지바위를 보며 소원한게 효험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땀범벅의 후줄근한 꼬락서니로 뒤늦게 나타난 꼴통 선배를
돼지바위 미소보다 더 환하게 맞아주었으니…
그렇게 다음날 아침까지 ‘同門之情’을 두터이 하였습니다.
산상화원, 여름 소백능선을 걷다.
죽령에서 천문대(차량 이동…녹색 원 표시)
천문대-연화봉-비로봉-국망봉-초암사(산행 11.3km, 청색 원 표시)
초암사에서 순흥 배점리(차량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