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내린 서까래를 밟고 서서 멍하니 안마당을 응시했다.
주인 손길이 그리웠을 목련은 그새 꽃을 다 떨구었고
살아천년 죽어천년이라는 주목 또한 대접 못받긴 매한가지인듯
볼품없이 웃자라 산발(散髮)을 하고 있다.

웃음소리 가득한 집이었는데, 이젠 먼 옛날 이야기일 뿐,
되돌릴 수 없는 과거는 설움의 화석이 되어 이젠 미동 조차 없고
무채색 일변인 눈앞 광경은 괴괴하기 이를데 없다.
과수원집- 단상(斷想)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인지상정인가, 가족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그 무엇이 울컥 치민다.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는가 싶더니 이내 시야가 흐릿해 왔다.
복작거리며 지지고 볶던 어린 시절이 오버랩 되어 온다.

반공일(토요일)이 되면 누나와 난 밀창 닦기에 나섰다.
까치발을 딛고 팔을 뻗쳐 닦았다. 목침을 딛고 올라서기도 했다.
유리창 맨 윗부분을 닦기 위해선 사각 나무통(재봉틀용 의자)에 올라야 했다.
내가 나무통에 올라서면 누나는 양손으로 나무통을 붙잡아 주었다.

해져 못 입게된 난닝구(런닝셔츠)를 손에 감아쥐고서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빠득빠득 문질렀다.
물론 스스로 집안 일을 거들만큼 기특했던 건 결코 아니었다.
형이 시키면 마지못해 움직였을 뿐이다.

유난히 깔끔을 떨던 형 등쌀에 쉬는 날은 어김없이 사역에 나서야 했다.
공일(휴일)이 되면 형은 두 동생 부려먹을 건더기를 어김없이 챙겼다.

마루바닥은 초를 칠해 파리가 미끄러져 낙상할 만큼 반질반질하게,
유리창은 새가 날아와 머리를 박을 정도로 없는 것처럼,
닦고 또 닦도록 두 동생을 닦달했다.

총채를 손에 든 형은 건성으로 먼지를 털고 다니며 구석구석을 지적했다.
총채는 그렇게 지시봉처럼 쓰였다.
그런 형의 주문에 누나와 난 순둥이처럼 복종했다.
실은 면종복배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건 언감생심 하극상은 꿈도 못꾸었다.

매의 눈으로 꼼꼼히 청소상태를 확인하던 형의 모습이,
입이 댓 발 나와 식식거리며 유리창을 닦던 누나의 잔상이
안마당에 어른거린다. 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렇게 열심히 닦았던 유리창엔 세월이 덕지덕지 붙었다.
반질거리던 마루바닥은 맨 흙바닥인 ‘봉당’으로 변했다.

거짓말처럼 그때로 되돌아 갈 수만 있다면 반공일 뿐 아니라
온공일(일요일)을 통째로 반납하고라도 군말없이 유리창도 닦고
무릎팎이 다 까지거나 말거나 마루바닥을 기어다니며 초 칠도 하겠는데…

그랬던 형은 60대 중반이, 누나와 난 50대 중반을 넘어섰으니
세월은 유수와 같고 쏜살처럼 지나갔다.

각자 호구를 해결하느라 뿔뿔이 흩어져 산지 오래다.
집안 대소사가 아니면 얼굴 보기도 어렵다.
가뜩이나 뜨뜻미지근한 동기간 정이 점점 더 실낱같아 안타깝다.
과수원집- 단상(斷想)
폐가를 뒤로하고 과수원길을 따라 동네어귀를 벗어나는 동안
흐드러지게 핀 사과꽃이 눈을 맞춰 잘가라 배웅한다.

무리를 이룬 사과꽃에서 언뜻 부모님 모습을 보았다. 활짝 웃고 계셨다.
사과꽃으로 환생하여 못난 자식을 보러 오신게다.

하얀 사과꽃이 이토록 가슴 저미게 할 줄은,
하얀 사과꽃이 이토록 서럽게 다가 설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과수원집- 단상(斷想)
고갤 젖혀 하늘을 올려다 봤다.
먹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빠꼼히 내비친다.



2013. 05.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