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 자란 시골마을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었다.
죽령을 넘어온 삭풍이 늘 매섭게 몰아쳤기 때문이다.
혹한의 겨울밤, 거친 바람소리는 흡사 귀신 울음소리와 같았던 걸로 기억된다.
어스름 새벽녘, 이빨을 덜덜 떨며 뒷간에 나앉아 볼일이라도 볼라치면
뼈속까지 한기가 스며들었던 기억, 그리고 양철지붕은 금새 떨어져나갈 듯
어찌나 쿵쾅거렸던지.. 문고리에 손이 쩍쩍 들러붙을 만큼 독하게 추웠다.

시골마을 서쪽으로 백두대간 능선이 하늘금을 그으며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바깥마당에서 바라다 보이는 도솔봉, 연화봉,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소백 고봉들은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하얀 고깔모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삭풍은 소백능선의 눈을 만나 명품? ‘칼바람’으로 변신했다.

눈알갱이를 탑재한 거친 바람이 몰아치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볼살을 에는 느낌에 더해 아예 툭툭 터져나가는 느낌이다.
눈은 뜰 수가 없고 중심을 잡고 서 있기 조차 힘들다.
바로 이런 것이 오리지널 소백 칼바람의 매력이기도 하다.
1년에 한두번은 칼바람의 진수를 맛봐야 겨울을 난 것 같은 느낌이 들기에
매년 겨울, 소백능선을 찾는다.

소백산 연화봉에서 도솔봉으로 이어지는 대간 길목에 말안장처럼
잘록하게 안부를 이룬 곳, ‘죽령’이다.
어릴적 나는 이곳을 ‘바람의 문’이라 믿었다.

그 바람의 문, 죽령을 찾았다. 도솔봉 구간 대간길을 걷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기대했던 바람이 실종됐다.
소백산의 존재감, 칼바람은 꼭꼭 숨어버렸다.
칼바람과의 맞짱을 위해 중무장을 하고 찾아 왔더니 지레 겁먹고 꼬릴 내렸나!
칼바람 없는 겨울 소백은 안꼬없는 찐빵인데…

죽령은 충북 단양과, 경북 풍기를 경계하고 있는 소백산의 허리이자,
구절양장을 닮은 오르막 30리, 내리막 30리 길의 쉼터이기도 하다.
그러한 연유로 예로부터 무수한 길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4분만에 죽령을 관통하는 중앙고속도로가 뚫리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국도를 이용해 죽령을 거쳐가는 차량은 가뭄에 콩나듯 해졌다.
고갯마루는 의구한데 길손은 간데 없다고나 할까.
길 건너 주막에서 흘러 나오는 늘어진 노랫가락을 뒤로 하고 산으로 든다.

도솔봉 방향 등로는 목조누각인 ‘죽령루’ 우측 산허리를 끼고 나있다.
죽령루 아래로 난 오솔길은, 산아래 소백산역까지 이어진다. 이름하여 ‘죽령옛길’이다.
도솔봉 방면은 쌓인 눈이 발걸음에 다져져 길이 또렷하나 ‘죽령옛길’은 눈밭 그대로다.

초입이라 산객들의 복장은 둔중하다. 한결같이 중무장 한 탓이다.
1km도 채 못 가 한꺼풀 씩 벗어젖히게 될테지만…
눈이 얼어 붙은 산허리를 따라 줄지어 걷는 산객들의 모습이 비장하다.
마치 ‘혹한기 행군’에 나선 장병들 처럼.
아이젠의 뾰족날이 얼음눈에 박힐 때마다 ‘사각사각’ 거린다.
아이젠의 쇠사슬도 얼음바닥에 끌리며 ‘촤알촤알’ 소리 낸다.
줄지은 산객들의 아이젠 소리가 차디찬 겨울 숲을 깨운다.
어쩌면 미물들의 겨울잠을 방해하는 천둥소리일 수도 있다.

가뿐 숨 몰아쉬며 고도를 높이자, 잔가지 사이로 서서히 기운 찬 소백 준령이
모습을 드러낸다. 흐린 날씨인데도 가시거리는 좋다.
저멀리 구름바다 위로 산봉우리들이 두둥실 떠다니고…
두터운 방한재킷을 벗었다. 너나없이 한꺼풀 씩 벗느라 멈춰섰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새어 나온다.
“결코 실망시키지 않아, 겨울설산은 역시 소백능선이야”
“칼바람 없어도 소백산, 살아~ 있네~”

삼형제봉에 올라 뒤돌아 보니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이 의젓하다.
어릴 적, 저 고봉들을 올려다 보며 호연지기를 품었었다.
초,중,고 교가에도 늘 등장했던 ‘소백산’이라 감회가 남다르다.

삼형제봉을 뒤로 하고 까칠한 나무계단을 내려섰다.
죽령에서 예까지 오는 동안 처음 만난 나무계단이다.
계단은 암릉의 협소한 공간에 옹색하게 설치되어져 있다.
무척 가파른데다가 층계 마저 높아 등에 멘 배낭 하부가 뒷계단에 걸려
앞으로 꼬꾸라질 질 것만 같다. 바닥면 또한 야박스레 좁다.
커브진 계단의 바닥면은 11자로 딛질 못하고 一자로 디뎌야 할 정도.

5.4km를 걸어왔고 도솔봉까지 700m를 남겨놓은 너른 안부에 자릴 폈다.
십시일반 먹을거리를 꺼내 놓으니 산중 뷔페나 다름없다.
소진된 원기를 충분히 충전한 후, 걸음을 서둘렀다.
날머리로 잡은 단양 절골(사동리)까지는 7km나 남았다.

정상을 쉬 허락하는 산은 없다. 山頂은 늘 이런저런 통과의례를 요구한다.
도솔봉도 예외없다. 도솔봉은 육산이지만 정상부는 암봉이다.
막바지 계단을 기진맥진한 상태로 올라서자, 산은 보답이라도 하듯
황홀경을 펼쳐 놓았다.

백두대간 도솔봉(兜率峰, 1,314.2m)
‘兜率峰’이 음각된 정상표시석 앞에서, 사바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찾아올 미래불,
미륵이 머물고 있다는 ‘兜率天’을 떠올리며 잠시 상념에 젖는다.
주변산군을 호령하는 소백 고봉의 기세등등함에 그 위용이 느껴진다.
구름바다 위를 유영하는 산봉은 그대로가 그림이다.
소백산을 찾는 산객 대부분은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을 오른다.
도솔봉은 소백산의 서자 마냥 변방에 외로이 우뚝 서 있다.
그러나 도솔봉에 올라 장쾌한 소백능선의 품에 안겨 보지 않고,
또 첩첩산군의 일망무제에 빠져 보지 않고서 감히 소백산을 이야기 할 순 없다.
누군가 그랬다. ‘도솔봉은 소백산의 완결편’이라고. 절대공감!

도솔봉 정상은 펑퍼짐하게 너른, 다른 소백산봉에 비해 협소한 암봉이다.
추락방지를 위해 나무난간도 설치되어 있으나 고르지 않은
바닥 암면에 눈이 얼어붙어 방심은 금물이다.

암봉을 내려서면 곧바로 헬리포트다. 이곳에도 정상표시석을 올려 놓았다.
이정표는 죽령 6km, 사동리 6.3km를 가리킨다.
절반을 걸어온 이곳에서 다시 절반을 조금 더 걸어야 한다.
남은 절반은 하산길이긴 하나 얼어붙은 눈길이라 긴장을 늦출 순 없다.

앞서 걸어간 산행대장으로부터 무전이 왔다.
애초 계획했던 코스가 통제되어 그냥 직진하라는 전갈이다.
도솔봉과 묘적봉 사이 안부에서 우측 사동리 방향으로 꺾어 내려가야 하는데
대나무 울타리로 출입자체를 봉쇄해 놓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묘적봉(1,148m)을 올랐다가 그 너머 묘적령에서 사동리로 빠질 수 밖에.
다시 봉우리 하나를 더 넘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맥이 풀린다.
‘피할 수 없는 거라면 즐겨라’ 했다.
묘적봉을 향해 막바지 숨을 토해 냈다.

소백산국립공원 최남단을 지키고 있는 妙積峰은 산이름 대로라면
묘(妙)한 무엇인가가 켜켜이 쌓여(積) 있을 것만 같다.

묘적봉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동쪽 발아래 풍광이 매우 낯익다.
어릴적 소꿉친구들과 뛰어놀던 시골 들판이다.
지금도 폐가와 사과밭 터가 그대로 남아 있는데… 가슴이 먹먹했다.
묘(妙)한 기분이 가슴 한 켠에 쌓여(積) 묘적봉(妙積峰)인가?

심설산이어도 대간길은 언제나 뚜렷하다. 대간꾼들 발품 덕분이다.
죽령에서부터 대간꾼들 발자국을 따라 8.8km를 걸어 묘적령에 닿았다.
묘적령에서 저수령, 벌재로 이어지는 대간길은 다음으로 기약하고
오늘은 묘적령에서 대간길을 벗어나 우측 사동리 방면으로 내려선다.

묘적령에서 내려서는 길은 얼어붙은 급사면이라
아이젠만 믿었다간 낭패보기 십상이다.
잔가지 휘어잡아가며 15분 가량을 엉금엉금 기다시피 내려서니
계곡물 소리가 졸졸거린다. 사동계곡의 계류가 발원되는 곳이다.
두터운 얼음장 아래로 아직은 이르지만, 봄이 흐르고 있었다.



죽령-삼형제봉-도솔봉(1314.2m)-묘적봉(1,148m)-묘적령-단양 사동리……….총 12.5km, 6시간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