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나라님도 구하지 못한다.”는 우리 속담이 있지만, 빈곤은 개인의 능력부족 때문인가 아니면 그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인가? 소득수준이 절대적으로 낮은 아프리카에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사람이 둔하고 게으른 탓인가? 허드렛일 임금이 “품위 있는 일”에 비해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스웨덴에서 잘 살지 못하는 것이 사회가 잘못되었기 때문인가? 

  각 개인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자체가 조직과 사회 발전의 바탕이 되고, 역으로 조직과 사회가 성장하고 발전하면 개개인에게도 그 과실이 두루두루 돌아가는 경제적 틀이 동기양립(動機兩立)이다. 예컨대, 돼지사육자가 기술혁신을 통하여 고급 삼겹살을 더 싼 값으로 더 많이 생산하면 사회의 후생복지가 그만큼 늘어난다. 사육업자는 신바람 나게 일하며 돈도 벌고 고용도 늘리며, 사회의 후생 증대에 이바지하는 거룩한 일을 한다. 이처럼 사익과 공익이 합치되어 너도나도 맡은 일에 자부심을 가지면 일국의 경제적 성과도 커지는 동시에 경제정의도 정립되어 사회적 갈등과 대립도 줄어든다. 건강한 시민정신도 자연스럽게 생성되고 누가 강조하지 않아도 애사심, 애국심도 저절로 형성된다.
  반대로 불공정거래, 부정부패, 유해상품생산은 개인의 이익이 그 몇 배로 부풀려져 사회적비용(social cost)으로 전가된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남모르게 히로뽕을 생산하여 유통시킨다면 밀조업자는 수지맞을지 모르지만, 마약에 중독되는 당사자와 그 주변사람들은 치명적 상처를 입는다. 이처럼 사익과 공익의 상충이 빈번해지면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조직과 사회는 흔들리기 쉽다. 하청업자 허리 분지르기, 독과점(獨寡占), 불공정거래가 성행하면 경제성장의 과실이 소수에게 집중된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편중되는 환경에서는 사람들이 맡은 일에 열중하기 보다는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려 한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와 기술이 있어도 사회 환경이 좋아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소비수요가 있어야 상품을 팔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사회의 혜택을 받지 않고 홀로 부자가 되기는 불가능하다.) 

  나라 살림은 어렵고 대다수 사람들은 곤궁한데 특정 소수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면, 모리배(謀利輩), 폭력배들이 들끓게 되어 국가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여러 가지 민생범죄가 늘어나고 치안이 불안해지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역사의 경험에서도 부의 집중과 크고 작은 범죄 발생은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히로뽕 제조자는, 「커넥션」 유지비용, 발각되면 형벌을 받아야 하는 위험부담까지 생각하면, 막대한 생산비를 들이는 셈이다. 그와 같은 노력들을 정상적 생산 활동에 투입한다면 어떤 상품을 생산하더라도 최고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이나 조직에서 가장 유능한 인재들에게 비리를 저지르게 하고, 이를 은폐하거나 억지로 정당화시키는 작업을 하도록 하는 일이 있는데, 이는 개인의 비극이자 사회의 막대한 손실이다. 이에 따르는 은폐와 밀고, 협박과 무마에 따른 유발범죄가 발생할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숨어서 히로뽕을 제조하기보다, 자랑스럽게 삼겹살을 만들도록 하는 유도하는 일은 공동체가 무엇보다 최우선적으로 추진하여야 한다.

  나라가 부강해지는 국리(國利)와 대다수 시민들의 삶도 유복해지는 민복(民福)이 조화를 이루어야 지속적 성장과 발전이 가능해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경쟁력 즉 총공급능력 향상은 결국 동기양립(Incentive compatibility) 시스템 구축과 직결되어 있다.
  국리민복의 길은 무엇보다 먼저 동기양립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강자나 약자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공정한 법질서 확립은 동기양립 사회의 필요조건이다. 법이 권력의 창이 되거나 부자들의 방패가 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소위 지식인 내지 지도층 인사들의 의식구조가 달라져야 하는데, 갈 길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인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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