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이른 아침 북한산 대남문을 거쳐 보현봉에 올랐다가 형제봉 자락까지 내려와 다리쉬임을 할 때였다. 땀방울을 흘리며 올라가는 대부분 등산객들에게서 이런저런 냄새가 났다. “오장육부 깊이 쌓인 노폐물이 땀으로, 호흡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올라갈 때는 서로 느끼지 못했는데, 땀을 흘릴 대로 흘려 내 속의 노폐물이 다 빠져나갔는지, 비지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쉬는 어떤 사람에게서는 고약한 냄새가 나기도 했다. 운동하며 흘리는 땀은 처음에는 끈적끈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맑아지고 기분도 상쾌해진다. 육신의 찌꺼기, 마음의 찌꺼기가 몽땅 날아 가버리는 기분이다. 만약 헬리콥터를 타고 산 정상에 내린다면, 한걸음, 한걸음 디디며 흘리는 구슬땀이 주는 그 희열을 어떻게 맛 볼 수 있겠는가?

  재물을 쌓아 놓고, 높은 지위를 차지한 데다, 이름까지 얻은 지도층(?) 인사들의 뒷모습을 보면 뜻밖에도 안절부절못하며 진땀을 흘리는 경우를 꽤 보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며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많은데, 무엇이든 “하면 된다”며 밀어붙이다보니 주변사람들과 사회를 피곤하게 하고 자신도 속이게 되는 때문인가? 무리수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얼토당토아니한 논리를 펼쳐 거짓을 참인 것처럼 꾸미려다 보니, 말 바꾸기를 밥먹듯 하게 된다. 이들이 툭하면 거론하는 의리는 진정한 사람의 도리가 아니고, 변칙과 불법으로 특혜를 받기 위한 일종의 비선조직(秘線組織)을 의미한다.
  이 세상 하고많은 시행착오(試行錯誤)와 이에 따른 불신풍토, 무질서는 대부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며 중간 과정을 무시한데서 비롯된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을 쫓다보니, 잘잘못을 가리려고 하면, 오히려 불평불만이거나 능률을 해친다고 비난하는 풍조도 무시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의 잘못은 덮어두고 남의 잘잘못만 지적하니 갈등과 대립이 움트게 된다. 어쩌면 괄목할 경제성장과 동떨어지게 우리 사회 행복지수가 크게 낮은 사실도 이러한 사고방식의 부산물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신예 피아니스트가 혼을 다하여 연주하는 감동적 모습을 가까이서 보는 기회가 있었다. 그 여류는 그가 누리는 명성 같은 결과보다는 연주의 순간마다에 진정한 기쁨과 영광을 느끼는 듯 했다. 인간의 내면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그 자체가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절대적 보상이 아닌가? 잘은 모르지만 순간, 순간에 쏟는 끝없는 열정이 약관의 나이에 정상에 다가서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짐작이 간다.
  옛것을 익히고 새 것을 깨우치는 과정에서 얻는 그 환희는 자신이 누리고 그 결과는 사회에 공헌하여도 매우 수지맞는 장사가 된다. (사실, 쉽지 않은 세상에서 공부만 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의지와 두뇌가 있다는 그 자체가 축복받은 일이다.) 그런데 만약 논문 데이타를 조작하거나 베낀다면, 무엇인가 새롭게 터득하는 성취감은 사라지고, 가슴속에 걸려 있을 가시와, 비밀이 누설될까 두려워 사후에도 마른땀을 흘려야 하니, 하나 밖에 없는 인생에서 치명적으로 밑지는 장사를 하는 셈이다.

졸고, 논문표절과 명예박사 참조

   오늘날 우리사회를 어지럽게 하는 사건들 가운데는, 순간의 판단 잘못으로 앞길이 창창하게 보이던 인사들이 미래를 그르치는 안타까운 장면을 종종 보게 된다.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은 구슬땀을 흘리지 않고 얻은 부귀공명(富貴功名)이 언젠가는  식은땀을 흘리게 하는 직간접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삶은 「순간과 순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어느 순간이 다른 어느 순간에 비하여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도 그리고 미래의 어떤 순간도 모두 순간, 순간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세상살이에서 모든 행동의 동기(動機)와 과정과 결과를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젊은 사자들」이 자랑스러운 미래를 그려 가려면 매 순간 순간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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