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도 자신을 투명인간으로 착각하거나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수치심조차 못 느끼는 유력인사들이 상당하다. 의뭉한 저능아나 치매노인 같기도 한 이들의 공통분모는 공부 열심히 하여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고 주요 직책에 있다가, 법을 만드는 자리에 이르기도 했다는 점이다. 실정법에 의하여 처벌받지 않았더라도, 대부분 본인이나 자식들이 병역기피, 탈(세)테크, 이중국적, 부정입학, 부당임용 같은 의혹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사회발전의 혜택을 많이 받고도 나라에 대한 의무는 외면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인사들이다.
  이 "많이 배운 인사들의"의 비인간적 행각과는 반대로 오히려 배운 것이 없는 사람들이 「인간의 도리」를 더 굳건히 지키는 경우가 많다.

   # 위안스카이(袁世凱)에 이어 중국 총통 자리에 오른 차오쿤(曹錕)은 무명시절 장터에서 허름한 차림으로 앉아 있는 류펑웨이(劉鳳威)를 우연히 만났다. 관상쟁이는“그녀가 하녀 차림을 하고 있지만 고관대작 부인들이 고개를 조아릴 귀인의 상이다.”라고 했다. 우직한 차오쿤은 큰돈을 들여 그 거리의 여인을 부인으로 맞았다.
  세월이 흘러 차오쿤은 중국민국의 총통까지 올랐다가 실각하고 다시 건달이 되자, 화북지방을 점령한 일본군이 괴뢰정부의 수반으로 옹립하겠다고 꼬드겼다. 그러자 부인 류펑웨이는“굶어 죽어도 일본 놈들의 꼭두각시는 되지 말라”며 차오쿤을 격려하였다. 그 차오쿤이 세상을 떠나자 장개석은 왜구의 위협과 회유에 굴복하지 않았다며 상훈을 추서하고 거액의 위로금을 보냈으나 류펑웨이는 받지 않았다. 한낱 "청루의 하녀"였던 류펑웨이 덕분에 차오쿤은 만주국 황제가 된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 처럼 「쓸개 빠진 개」라는 이름을 후세에 남기지 않게 되었다.

  # 안후이성 장군이었던 스충빈(施從濱)의 딸 스구란(施谷蘭)은 아버지가 군벌 쑨촨팡(孫傳芳)에게 포로로 잡혀 조롱당하고 살해당하자 복수를 결심했다. 혼란시대에 교육을 받지 못한 그녀는 오빠가 복수 해줄 것을 고대하였으나 출세한 오빠가 “인간은 용서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얼빠진 이야기를 하자 남매 관계를 청산하였다. 대신 복수해주겠다는 말을 믿고 결혼한 남편이 시간이 흐르면서 흐지부지하자, 두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스구란은 쑨촨팡을 직접 심판할 계획을 세우고 천신만고 끝에 아버지의 원수를 톈진의 한 절에서 찾아냈다. 1935년 스산한 겨울날, 옛날의 연합군사령관 쑨촨팡은 염불을 하다 스구란이 쏜 3발의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나야 했다. 재판정에서 “나의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전사했다면 쑨을 원수로 여길 까닭이 없다. 포로가 된 아버지를 놀리다가 목을 자르고 시신을 모욕한 죄를 용서할 수 없다. 나는 쑨과 같은 하늘아래 살 수 없었다.”며 스구란이 당당하게 외치자 사람들은 박수갈채를 보냈고 1년 후에 사면되었다.

  # 중국의 대문호 후스(胡滴)의 부인 장둥슈(江冬秀)는 안후이의 명문거족 출신이었지만 전족을 하고 뒤뚱거리는 문맹이었다. 장듕슈는 당시 중국인들이 신붓감으로는 꺼렸던 호랑이띠라 시어머니가 반대하였지만 사윗감에 반한 친정어머니가 사주쟁이를 동원하는 등 집념과 노력 끝에 「세기의 결혼」이 성사되었다. 백화운동(白話運動)을 제창하고 신문화 운동을 주도하며 일찍이 전국적 인물로 부상한 후스는 중화민국 4대 미남으로 불릴 정도로 용모가 준수했다. 내외국인 여자들이 따라다녀 연애편지를 수없이 주고받았지만, 부인이 까막눈이라 그런지 몰라도 불화는 없었다.
  단 한번 유식한 후스가 이혼하자고 말을 꺼내자 무식한(?) 쟝둥수는 머뭇거리지 않았다.“좋다. 그러나 헤어지기 전에 할 일이 있다”며 주방에 들어가 식칼을 들고 나왔다.“애들도 죽여 버려야 우리관계가 깨끗이 정리된다.”며 두 아들이 자는 방으로 향했다. 기겁을 한 후스는 바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위의 세 삽화는 김명호의 "중국근현대" 참조)

   배운 것이 많아도 정신이 썩은 먹물과 반대로 보고 들은 것은 없어도 정신 상태는 말짱한 까막눈이를 견주어 볼 때, 교육이란 무엇인지 회의를 품게 된다. 지식수준이 높아지면 명예욕, 권력욕, 재물욕도 함께 커지기 때문에 사람이 타락하는 것일까? 가진 것, 아는 것이 많아도 사람의 도리를 외면하는 까닭은 그들 부모들이 물질과 출세만을 가르쳤기 때문만은 아닐지 모른다. 식민지배, 남북분단, 독재정치 같은 질곡의 역사가 낳은 사회병리현상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사회가 혼란스럽기 때문에 지식(knowhow)과 지성(intellect)이 엇갈리는 것일까? 아니면 지식이 높을수록  지성이 쪼그라들기 때문에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일까? 어쨌든 인격 없는 지식이 올곧은 행동의 바탕이 되는 지성을 압도하면 사회는 불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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