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겨울나무, 박종해

겨울나무



박종해



슬픔을 딛고 가는 사람은


기쁨의 나라에 닿는다


고통을 딛고 가는 사람은


즐거움의 나라에 닿는다


나무는 눈보라치는 겨울을 밟고


무성한 잎과 꽃을 거느린


봄나라에 이른다



[태헌의 한역]


冬樹(동수)



踏悲去人到歡國(답비거인도환국)


踏苦去人到樂國(답고거인도락국)


樹木黙經風雪冬(수목묵경풍설동)


終及葉花滿春國(종급엽화만춘국)



[주석]


* 冬樹(동수) : 겨울나무.


踏悲去(답비거) : 슬픔을 딛고 가다. / 人(인) : 사람. / 到(도) : ~에 이르다, ~에 도착하다. / 歡國(환국) : 기쁨의 나라.


踏苦去(답고거) : 고통을 딛고 가다, 괴로움을 딛고 가다. / 樂國(낙국) : 즐거움의 나라.


樹木(수목) : 나무. / 黙(묵) : 묵묵히.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經(경) : ~을 겪다, ~을 지나다. / 風雪冬(풍설동) : 눈보라치는 겨울.


終(종) : 마침내.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及(급) :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에 이르다. / 葉花滿春國(엽화만춘국) : 잎과 꽃이 가득한 봄의 나라.



[한역의 직역]


겨울나무



슬픔을 딛고 가는 사람은


기쁨의 나라에 닿고


고통을 딛고 가는 사람은


즐거움의 나라에 닿는다


나무는 눈보라치는 겨울을


묵묵히 겪고


마침내 잎과 꽃 가득한


봄나라에 이른다



[한역 노트]


한 해의 시작을 언제로 보아야 할까? 또 우리는 언제까지 양력설과 음력설에 번번이 새해 인사를 해야 하는 걸까? 우리가 늘 비슷한 내용의 덕담을 건네는 이 두 개의 ‘설’과는 별도로 명리학(命理學)에서는 입춘을 설로 간주하고, 역학(易學)에서는 동지를 설로 삼고 있다. 역자는 개인적으로 음력설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해라는 개념은 태양의 회전을 근거로 만든 것인데 반해, 음력은 달의 회전을 근거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음력설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개의 설은 모두 양력이다.


세 개의 양력설 가운데 원리로 따진다면 동지를 설로 삼는 게 가장 과학적인 접근이 아닐까 한다. 주(周)나라 때 만들어진 24절기는 동지로부터 다음 동지 전날까지를 24등분한 것인데, 동지 이후에는 낮이 길어지고 밤이 짧아지는 확연한 변화가 있어 한 해의 기점으로 삼는 데 그리 손색이 없다. 이 때문에 옛날에는 동지를 작은설[亞歲]로 칭하고 할머니들이 이 시기를 전후하여 토정비결을 보러 다니기도 하였다. 고증에 의하면 고려 충선왕(忠宣王) 이전에는 우리도 동지를 설로 삼았던 것처럼 보인다.


역자가 다소 장황스럽게 ‘설’ 얘기를 먼저 꺼낸 이유는 어제가 절기상으로 동지였기 때문이다. 동지절에 이 시를 감상하게 된데다 시에서 마침 ‘봄’을 얘기하고 있음에, 상징적으로 봄의 출발을 의미하는 ‘설’에 대해 언급한 것이 그리 생뚱맞지는 않을 듯하다. 중국 사람들은 음력 정월 초하루를 오늘날 ‘춘절(春節)’로 칭하고 있다.


역자에게 위의 시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역자는 주저 없이 ‘봄’을 들 것이다. 나무의 봄이 잎과 꽃이 무성한 것이라면, 사람들 마음[감정]의 봄은 기쁨이고 몸[육신]의 봄은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얘기한 기쁨과 즐거움은 결국 ‘봄’이라는 단어 하나로 귀결되는 셈이다.


슬픔도 고통도 견디기 힘든 일이라 누구나 피해가고 싶겠지만, 이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 또 우리네 인생이다. 그 어떤 권력이나 재물을 가지고 있는 자라 하더라도 평생토록 기쁨만 맛보고 즐거움만 누릴 수는 없다. 세상의 일만 부침(浮沈)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상에 따라 사람의 일 역시 부침하는 것이어서, 영속(永續)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종의 여건이나 상황에 의해 거저 주어진 기쁨과 즐거움이 어찌 직접 슬픔과 고통을 딛고 얻은 그것들과 같을 수가 있겠는가! 그 깊이와 맛은 물론 가치 또한 당연히 다를 것이다. 이 시가 얘기하는 기쁨의 나라와 즐거움의 나라는 바로 그러한, 스스로가 직접 도달하게 된 일종의 경지(境地)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사람은 누구나 기쁨을 맛보고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산다. 적어도 그런 경지에 이르기 위하여 슬픔과 고통을 감내하며 산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일이든 공부든 여기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 무엇이든 우리에게 슬픔만 맛보게 하고 괴로움만 줄 뿐이라면 우리가 여기에 애정을 쏟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우리가 기쁨을 맛보고 즐거움을 누릴 우리의 봄나라는 어디쯤에 있는가? 우리가 가야할 봄나라가 아직은 멀리 있다 하여도, 우리는 우리의 봄나라를 향해 가야만 한다. 나무가 혹독한 겨울을 밟고 봄나라에 이르듯이, 우리도 코로나와 같은 혹한을 딛고 우리의 봄나라로 가야만 한다. 이것이 신(神)이 이 시대 우리에게 부여한 숙제가 아니겠는가!


연 구분 없이 7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역자는 4구의 칠언고시로 재구성하였다. 한역시는 제1구와 제2구, 제4구에 동자(同字)인 ‘國(국)’으로 압운하였다.


2020. 12. 22.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