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상 행위를 돌이켜 보라. 불법을 빙자하여 ‘나다’, ‘남이다’하는 상(相)을 내고, 명예와 이익만을 쫓으며, 욕망의 풍진 속에 빠져 도와 덕은 닦지 않고 옷과 밥만 축내고 있으니, 이런 그대들이 어찌 출가자라고 할 수 있으며, 출가의 무슨 공덕이 있겠는가? -보조국사 지눌-

최근 tvN ‘온 앤 오프’에 출연하여 삼청동 집을 공개한 혜민스님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급기야 ‘푸른 눈의 수행자’로 알려진 현각스님은 건물주 논란을 불러온 혜민스님을 향해, “부처님 팔아먹는 기생충” 이라는 날 선 비판이 더해진 상황이다. 논란의 중심이 된 혜민스님은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출가 수행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상에 불법을 전하려고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 많은 분들께 불편함을 드렸다. 승려의 본분사를 다하지 못한 저의 잘못이 크다"

慾(욕심 욕)= 欲(바랄 욕) + 心(마음 심)

欲(바랄 욕)= 谷(골짜기 곡) + 欠(하품 흠)

慾(욕)은 欲(바랄 욕)에 心(마음 심)이 붙은 글자다. 欲(바랄 할 욕)은 골짜기를 뜻하는 곡(谷)과,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하는 흠(欠)이 합해진 것으로, 골짜기를 가득 채울 만큼 입을 크게 벌리고 바란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더하여 마음을 뜻하는 심(心)이 합해지면서 욕심 욕(慾)이 완성된다.

욕심은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채우고 또 채워도 부족한 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때문에 멈춰야 할 때를 놓치면 반드시 화를 입는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슈들 대부분은 더 채우려는 욕심이 과해서 빚어지는 일들이다. 오히려 비워서 문제가 된 일은 본 적이 없다. 더 가지기 위한 행동은, 채우고 또 채우려는 욕심으로 향하지만, 오히려 가진 것을 덜어서 나누는 사람들은, 자기를 비우는 선행으로 행복을 느낀다. 문제는 정도다.

“법정스님께서 무소유가 가능했던 것은 책 인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도나 주지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해도 살 수 있어야, 그리고 또 어느 정도 베풀 능력이 되어야 아이러니하게도 무소유도 가능해진다"

혜민스님이 과거에 자신의 SNS에 올렸던 글이다. 진위 여부를 떠나 있는 그래도 해석하면 법정스님이 말했던 무소유는 책 인세가 있었기 때문이란 말이다. 즉 가진 것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무소유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법정스님은 30여 권의 책을 펴내면서 발생한 인세 수십억 원을,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인세가 들어올 때마다 족족 기부하다 보니 본인 계좌에는 돈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폐암에 걸려 삼성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땐, 병원비 6,000여만 원이 없어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씨가 대납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렇다면 혜민스님이 생각하는 무소유는 어느 정도를 가지고 있어야 가능해지는지 궁금해진다.

욕심이란 이름표엔 선한 가치가 자리할 공간이 없다. 그 이유는 욕심의 끝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다. 때문에 자신이 옳다고 믿는 만큼, 욕심의 크기가 자란다. 하지만 계영배(戒盈杯)의 의미를 알고 있다면, 망신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계영배 밑은 분명히 구멍이 뚫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이나 술을 부어도 절대 새지 않는다. 하지만 7할 이상 채우면 문제가 발생한다. 더 담기지 못하고 쏟아지기 때문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지나친 것보다 미치지 못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즉, 미치지 못하는 것은 덜 채워진 것으로 넘칠 것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나치다는 것은 이미 다 채웠기 때문에, 더 넣으려고 애써도 담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히려 넘친 것들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화를 입히기 일수다.

“승려의 본분사를 다하지 못한 잘못이 크다”

출가는 “번뇌에 얽매인 세속에서의 인연을 버리고 재가 생활(在家生活)을 떠나 오로지 불교 수행에 힘쓰는 것”을 이른다. 그렇다면 승려의 본분사를 다하지 못한 잘못이란, 불도로서 출가의 본질을 훼손한 면이 있다는 뜻일까?

욕심을 버리라고 말할 순 있어도 욕심을 온전히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욕심은 생존을 위한 수단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는 욕망이다. 그렇다면 믿고 따라야 할 가치는 사라진다. 특정 종교를 떠나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종교인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부디 종교가 추구하는 본질을 외면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목탁이나 십자가 뒤에 숨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가진 것도 지키지 못할 테니 말이다.

이종범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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