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滿月)


 

윤지원


 

행여 이 산중에


당신이


올까 해서


석등(石燈)에 불 밝히어


어둠을


쓸어내고


막 돋은


보름달 하나


솔가지에 걸어 뒀소.


 

[태헌의 한역]


滿月(만월)


 

或如君來此山中(혹여군래차산중)


石燈點火掃暗幽(석등점화소암유)


新升一輪三五月(신승일륜삼오월)


至今方掛松枝頭(지금방괘송지두)


 

[주석]


* 滿月(만월) : 보름달.


或如(혹여) : 혹시, 행여. / 君來(군래) : 그대가 오다. / 此山中(차산중) : 이 산속(에), 이 산중(에).


石燈(석등) : 석등, 장명등(長明燈). / 點火(점화) : 불을 붙이다. / 掃(소) : ~을 쓸다. / 暗幽(암유) : ‘幽暗(유암)’과 같은 말로 ‘어둠’을 가리킨다.


新(신) : 새로, 막. / 升(승) : 오르다(=昇), 떠오르다, 돋다. / 一輪(일륜) : 한 둘레, 한 바퀴라는 뜻으로 달이나 해와 같은 둥근 모양의 물체를 가리킬 때 주로 쓴다. / 三五月(삼오월) : 보름날의 달, 보름달. 보통은 정월 대보름달을 가리키는 말로 쓴다.


至今(지금) : 지금. / 方(방) : 바야흐로, 막. / 掛(괘) : ~을 걸다. / 松枝頭(송지두) : 솔가지 끝.


 

[한역의 직역]


보름달


 

행여 이 산중에 당신 올까 해서


석등에 불 밝혀 어둠 쓸어내고


새로 돋은 보름달 하나


지금 막 솔가지 끝에 걸어 뒀소


 

[한역 노트]


이 시는 스님의 작품이다. 그러므로 석등이나 보름달 등을 불교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불자(佛者)가 아닌 일반인 역시 스님의 시를 얼마든지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관점에서 이 시를 보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이 역자는 불자도 아니고 불교 연구자도 아니므로, 불교적인 관점에서 이 시를 바라보는 것은 애초부터 곤란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부득이 일반인의 시각으로 이 시를 들여다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몇 마디 말로 역자의 무지(無知)와 천학(淺學)을 가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역자가 보기에 이 시의 핵심 키워드는 ‘당신’이다. ‘당신’은 불자일 수도 있고 도반(道伴)일 수도 있으며, 또 세속의 지인(知人)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산중의 스님인 시인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이다. 그 ‘당신’은 시인의 벗이 되어줄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예우가 매우 각별하다. 그러나 시인의 각별한 예우는 세상 사람들이나 방문할 당사자가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닌, 그저 마음뿐인 것이다. 가령 빗자루로 쓴 눈길과 같은 경우라면 누구나 그 ‘배려’의 뜻을 읽을 수 있겠지만, 요컨대 뜰에 밝힌 석등과 같은 경우는 얘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스님이 평상시에는 등을 켜두지 않는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던 방문객이라면 켜진 등 하나만으로도 배려심을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켜진 등이 방문객을 위한 것인지 수도(修道)를 위한 것인지 곧바로 알기가 사실상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작거나 보잘것없어도 진심(眞心)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법이다. 이것이 옛사람들이 얘기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한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 시의 핵심 소재는 석등과 보름달이다. 석등이 사찰 경내의 어둠을 쓸어내는 등이라면, 보름달은 산사로 오는 길을 밝혀줄 등이 되는 셈이다. 하늘에 저절로 있을 보름달을 시인이 솔가지에 걸어두었다고 한 것은 멋들어진 운치(韻致)이자 풍류이면서 동시에 따스한 마음의 투영(投影)이다. 그러나 그 등을 밝히고 내건 마음의 기저에는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다. ‘행여’라는 이 한 단어가 바로 그러한 심사를 가늠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시는 전체적으로 따스한 마음을 주제로 귀결시키면서도 구도자(求道者)의 ‘고독’을 은연중에 암시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가 구도자의 고독을 암시하고 있다 하여도 이 시에서 구현(具現)된 따스한 마음 자락은 사랑조차 물질로 재단(裁斷)하려는 이 시대의 어둠을 쓸어낼 등불로 삼기에 충분할 듯하다. 물질로 덮어버려 생겨난 내면의 어둠을 쓸어내면 우리들 마음자리가 보름달처럼 환하게 밝아질 수 있을까?


역자는 연 구분 없이 9행으로 된 시(조)를 4구의 칠언고시로 재구성하였다.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幽(유)’·‘頭(두)’이다.


2020. 10. 27.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