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와 경제 환경의 변화

 

걷기와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

1. 비즈니스를 위한 걷기

“더 높게, 더 빠르게, 더 힘차게”는 올림픽 구호이다. 수렵 채집시대 원시인들의 생존 조건이었다. 빨리 달리고 더 높이 나무 위로 올라가고 힘이 센 사람이 생존에 유리했다.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는 바로 육체 노동이었고, 이 결과물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하여 옮기는 수단 역시 인간의 두 다리였다. 온전히 짊어지고 이고 걸어가서 부락까지 옮겼어야 했다.

수렵채집의 다음 시대는 농경시대였다. 수렵시대에는 사냥을 하기 위하여 1인당 평균 10평방 킬로미터의 토지가 필요했지만, 건조지 농경에는 1인당 500평방미터만 있으면 되었다. 멀리 돌아다닐 필요는 없었지만, 모든 생산활동은 자신의 부락 근처를 떠나지 않으며 농업도구와 추수한 곡물을 온전히 사람의 힘으로 옮겨야 했다. 그렇게 힘들게 300여만년을 지내고서야 인간은 비로소 바퀴를 발명하고 물고기의 유선형을 본뜬 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바퀴가 운송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한참이나 후인 BC2000년에야 인간이 끄는 수레가 나온다. 그러니까 최초의 운송수단은 육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수상에서 나온 배이다. 말을 길들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100년이다.우리나라의 전통 육상 수송 수단은 고구려 무용총의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용총의 벽화에는 다양한 용도의 수레와 수레 보관용 차고가 그려져 있어, 고구려 시대에 이미 마차 및 말 수레를 매우 광범위하게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9세기 말에 자동차가 운송수단의 주역이 되기까지 인간의 주된 운송수단은 사람의 보행과 더불어 말과 낙타를 이용하였다.

그러니까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마차와 배가 있기는 했지만 운송 가능한 무게는 말, 낙타가 움직일 수 있는 게 한계였고, 속도는 인간의 걸음 속도인 시속 5-6킬로미터, 하루 약 20킬로미터 정도의 이동이 한계였다. 아랍-페르시아 상인들의 신라 진출이 본격화되는 8-9세기경 콘스탄티노플에서 경주까지 9000km 거리를 이동하여 전달되는 고부가의 교역품 수송기간이 낙타를 이용한 육상실크로드와 바닷길을 통해서 6-7개월 정도 걸렸다. 또한 목화솜 두 개가 꽂힌 패랭이, 긴 지팡이를 짚고 봇짐을 멘 조선의 보부상들의 이동 속도도 비슷했다. 이들은 부피가 큰 짐은 등짐,작은 짐은 봇짐으로 갖고 다녔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자료에 의하면 "모시 생산으로 유명했던 충남 부여 · 한산 지역 보부상이 각 마을의 5일장을 돌아다닌 거리를 계산해 보면 한 달에 396.6㎞,1년이면 4,759.9㎞를 걸었으며 30년간 보부상 생활을 한다면 지구를 3.6바퀴 도는 셈"이라고 한다. 이러한 추세를 보면 길어야 최근 200년전까지만 해도 경제의 속도는 인간의 걷는 속도와 같았다.

그러나 운송수단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걷는 것은 전혀 경제적이지 않게 되었다. 시속 100km로 나르는 시대에 시속 5km의 보행은 비능률의 상징이 되었다. 시속 50km의 속도로 20여 만 톤의 화물을 운송하는 배와, 시속 1,000km의 속도로 100톤의 화물을 날려 보내는 비행기가 등장하면서 경제는 사람이 직접 만나고 만지면서 걸어가면서 하던 인간적 비즈니스는 사라졌다. 부산에서 낙타 30마리에 실릴 분량이 9톤의 상품을 보내기 위하여 배를 이용하면 한 달정도, 비행기를 이용하면 하루 밤이면 충분하다. 비용으로 따진다면 배를 이용할 경우 내가 했던 양말은 해상운송비가 전체 상품 가격의 5%내외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낙타를 이용하면서 6-7개월 걸린다면 운송비는 상품 가격에서 운송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적어도 50%이상이 되어야 한다. 심지어는 운송비를 더한다면 10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만큼 운송 수단의 효율화가 이루어졌다. 더 이상 걸어 다니며 사업을 영위할 이유가 없어졌다.

2.
걷기 위한 비즈니스

인간을 먹여 살렸던 두 다리는 두 손에게 그 역할을 넘겨주고 가능한 한 쓰지 않는 것이 사업성이 높은 사업이 되었다. 돈과 화물을 움직이는 것은 새로운 운송 수단에 넘겨주는 대신, 발보다는 손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하였다. 자동차 운전은 손으로 하고, 전 세계와 연결된 인터넷 커뮤니케이션도 손으로 하고, 비즈니스 상대와 대화도 얼굴보며 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쓴 글로 하기 때문이다. 시속 5km로 움직이던 인간은 이제 빛의 속도로 동·서양을 오가며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발로 하던 아날로그식 속도는 구태의연하다 못해 벗어 던져야 하는 낡디 낡은 외투가 되버렸다. 그리고 디지털시대에 걸맞는 정보의 흐름을 새롭게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것은 바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남들보다 빨라야 하는 파괴적 경쟁의 시작이었다. 세계화와 정보통신화가 진전되면서 다리를 많이 쓰는 직업일수록 하대 받았다.

그렇게 ‘보행의 종말’이 사라지던 와중에 ‘걷기를 위한 비즈니스’가 출현하였다. 걷기가 다시 경제적 행위가 되었다. 지나치게 빨라진 속도에 대한 인간의 피로감이 다시 ‘느림의 미학’을 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근본은 바뀌었다. ‘걷기를 통한 비즈니스’에서 ‘걷기를 위한 비즈니스’가 출현한 것이다. 과학과 교통 수단의 발전은 인간에게 늘 이롭지만은 않았음을 인간을 깨달았다.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에는 시속 5km로 사는 것은 뒤처진 것이고 게으른 것으로 치부되었다. 정보통신의 시대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적응해야 하는 시간은 더욱 더 빨라져 가기만 했다. 이러한 인간이 적응하기에 지나치게 빠른 변화와 속도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빠르고 능률적인 삶대신에 느린 삶을 추구하는 슬로우 라이프 (Slow life)를 추구한다, 이들은 여행을 갈 때도 시속 300km의 KTX를 타기 보다는 시속 60km의 무궁화를 타면서 주변 풍광의 변화를 즐긴다. 이제 걸어서 돈번다는 개념은 사라지고, 걸으면서 우아하게 돈을 쓴다는 개념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위한 비즈니스가 생겼다. 걷기를 위한 여행클럽, 걷기를 위한 인터넷 카페, 걷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여행 책의 발간 등등.

걷기는 남이 시켜서 하는 노동이 아니라 즐기고 사색하는 자발적 행위가 되었다. 걷기에 대한 관념과 의식의 변화가 ‘걷기를 위한 비즈니스’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푸트맥스는 ‘맨발 느낌으로 걷는 신발’로 새로운 비즈니스의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홍재화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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