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을 수 있는 "인문 예술의 힘"

“얘야, 법대를 가서 변호사가 되거라. 그래야 부자가 된단다.”

아버지 말씀을 명심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화실로 갔다. 붓을 닦고, 종이를 펼쳐 놓고, 청소를 하면서 화가를 도우며 심부름을 했다. 화가가 퇴근한 후에 화실에 남아, 그림을 그려보았다. 그럴 듯 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그렇게 화가가 되었다.

 

“아우들아, 가진 재산 없으나, 싸우지 말고 잘 나누어 갖거라. 형이 먼저 가서 미안하다.”

청력을 잃은 30대 초반의 베토벤은 죽기로 하고 유서를 썼다. 듣지 못하는 귀를 갖고 작곡을 하고, 연주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써 놓고 며칠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마음이 바뀌었다.

“아니야. 그까짓 거. 듣지 못하면, 보면 되지. 박수 치는 거 보면 알아. 피아노, 바이올린 모두 듣지 않아도 작곡할 수 있고, 연주할 수 있어. 내가 누군데?”

그로부터 27년을 더 살면서 베토벤은 최고의 음악을 작곡했다.

그건 악성(樂聖) 베토벤의 “운명”이었다.

 

“남편을 죽일까? 동생을 죽일까? 누구를 죽이는 게 좋을까?”

태어나면서부터 여러 가지 질병으로 시달린 그녀는 수십 번씩 수술을 하고, 힘들게 살았다. 시장을 다녀 와서 보니, 남편이 동생과 침실에 누워있었다. “누구를 죽일까?”

한참 고민을 하다가 자신이 죽기로 결심을 했으나, 죽는 일은 용서보다 힘들었다.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삶이다.

 

세탁소에서 일을 할 때, 가장 힘든 일은 병원에서 맡기는 빨래를 세탁기에 구분해서 넣는 일이다. 팔뚝으로 기어 올라오는 구더기를 떨어내며 글을 썼다.

스티븐 킹의 이야기다. 그는, “글을 쓸 때, 형용사 부사를 쓰지 않아야 하고, 수동태는 힘이 없다.”고 말한다. 글을 쓰면서 굳이 꾸밀 필요가 있는가? 그냥 생각과 사실을 쓰면 글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인간의 모든 삶이 통째로 바뀌면서, 예측할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며,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우울한 마음으로 짜증을 내면서, 분노를 억제하지 못할 때 바로, "인문학과 예술(Humanitas and Arte)"이 힘이 된다.

“그들도 견디었고, 그렇게 살았으니, 나도 참을 수 있고, 견딜 수 있다.”

지금이 뭐가 힘든가? 6.25 전쟁에서도 살아 남았고, 일제 시대 36년도 견디었는데, 지금이 뭐가 그리 힘들다고 야단인가?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참고 견디고 버틸 수 있다. 인간이니까.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것처럼, 건강하면 못할 일도 없다.”

몽테뉴의 말이다.

홍석기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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