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처음 신입으로 여의도에 첫발을 들여 부동산금융/ 대체투자 본부에 입사했을 때, 이름만 들어도 어려운 조직 내외의 다른 부서명에 대해 궁금한 것이 무척이나 많았다. 스왑 (SWAP) 딜링, 퀀트 차익거래 (Quant arbitrage), 고유 PI (Principal Investment)부서 등 영어 약자 등으로 구성된 어려운 이름들이 각 증권사 혹은 자산운용사마다 붙어있었는데, 팀 이름들만 봐서는 각 팀들이 아주 대단한 일을 하는거 같아 보였다. (실제 본인이 입사했던 부동산금융 본부도 AI 본부 (alternative investment) 로 불렸었다.)

필자 또한 한 운용사의 부동산금융, 대체투자 펀드 운용/관리 역으로 입사했으니 분명 부동산은 기본이고 전체적인 금융투자 메커니즘에 대해 많이 배울 듯 하였다. 아니, 상식적으로 부동산을 투자하든 선박 혹은 항공기에 투자하든 최소 향후 수년간 내가 투자할 산업 군이 유망할지 아닐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단, 이러한 필자의 기대와 희망은 입사 후 얼마 안 돼 아주 금방 무너진 바 있다.

당시 본인이 담당했던 주 업무인 오피스 빌딩 등에 대한 향후 가격예측에 대한 것도 ‘그건 신의 영역인데 어떻게 가격흐름을 전망해.. 그냥 딜 자체에 문제가 없는지- 계약/서류 등 페이퍼에 구멍이 없는지 등 꼼꼼히 관리만 하면 된다. 그 이후는 신의 영역이니, 자고로 운용사는 딜 관리만 잘해서 운용 수수료만 잘 받으면 돼‘ 라는 식이다. 정말 그렇다보니 한국 최고의 수재, 전문가 들이 모인다는 여의도 제도권 내의 투자 관행은 과열된 시장, 즉 매번 꼭지에서 진입하는 개미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예상외로 대다수의 기관 투자자들은 흐름을 예측하여 좋은 시점, 좋은 가격에 진입하고 시장이 버블일 땐 위험을 헷징 하는 등의 전문적인 투자를 하지 않는다. 시장이 과열되어 기관 및 개인들의 목돈이 펀드로 밀려올 때- 즉 물 들어올때 노 젓는 묻지마 투자야말로 한국 기관투자 문화의 핵심이다.

거기에 더해, 같은 조직내 어렵고 다양한 부서명이 무얼 뜻하고 어떤 일을 하는 부서인지, 또 그들은 무엇으로 수익을 창출하는지에 대한 지식을 함유하거나 궁금해 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한국 특유의 군대 문화인 ‘그거 알아 뭐하게’ 라는 핀잔과 시키는 일이나 잘하라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조직을 지배하는데, 이는 당시 필자의 회사뿐이 아닌 한국의 제도권내 모든 기업과 부서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출처: 픽사베이)

필자는 이런 답답함을 견디지 못해, 얼마 안가 글로벌 파생상품을 다루는 기업으로 이직하는데- 이직하여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사실 해외, 글로벌 파생상품을 다룬다는 것은 거의 모든 투자자산 (주식, 채권, 원자재, 통화) 등을 모니터링하고 다룰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개부서는 중개 관련 실무만, 운용(투자)부서는 여러 자산중 특정 상품 딱 하나만 골라 해당 상품만 운용하는 부서 여러 개로 나누어 업무를 한다. 즉, 한국 고유의 “밥그릇 챙기는” 문화가 이직한 기업에도 똑같이 존재했는데, 이는 해당 기업뿐이 아닌 여의도 모든 기업 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자고로 모든 자산, 통화, 상품 하나하나는 모두 촘촘히 연결되어 이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능력이 없는 한 ‘전문적인 예측’을 기반으로 한 선진화된 투자를 결코 할 수 없다. 이러한 후진적인 한국의 금융 생태계의 중심에는 이러한 고질적인 병폐가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 한국 제도권의 구조로는 결코 진정한 '전문가'를 외국처럼 양성 시킬 수 없다. 레이 달리오가 운영하는 브릿지 워터, 혹은 빌 애크먼 등이 운용하는 퍼싱 스퀘어처럼 다가오는 사이클을 예측하고 여러 자산에 능동적으로 치고 빠지는 진정한 헤지 펀드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자산들을 종합적으로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 있는 인력의 양성이 필요하다. 다만, 아쉽게도 현재 한국에는 이런 능력을 보유한 하우스 자체가 전무하다.

한국의 오래된 병폐인 '밥그릇 지키기' 문화는, 여의도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되어왔다. 밥그릇 지키기에만 급급하니 타 부서가 무얼 하는 부서인지, 남들이 운용 혹은 중개하는 다른 자산의 로직은 무엇인지 관심조차 없다. 주식부서는 주식만 (그 안에서도 영업부서는 영업만, 운용부서는 운용만), 채권 팀은 채권만, 부동산부서는 PF 혹은 수익형 부동산만, 외환부서는 각종 외환만, 다루는 게 암묵적인 룰이고 조직 내 규율이다. 그 누구도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거나 궁금해 하지 않는다.

필시 한국 금융업계의 선진화를 위해선, 각종 규제의 완화로 창의적인 에너지를 불러올 필요가 있다. 단, 폐쇄적인 여의도의 문화는 아직 규제완화를 논할 처지도 안될 만큼, 진정한 금융투자 전문가의 양성을 방해하는 한국식 “단절 문화”부터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부서 간 소통과 교류를 장려하고, 인력 간 지식 교류와 더 나아가 조직 내 통폐합 과정을 통해 촘촘히 연결 되어있는 여러 자산들의 움직임과 관계를 해석할 수 있는 부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이가 빠른 시간 내 시행되지 않으면 한국 금융업의 미래는 결코 밝아질 수 없으며, 문제가 극심한 민간의 투자문화 선진화를 위해서는 국내 제도권부터 하루 빨리 바뀌어야 한다.

이선철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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