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사랑은 빗속을 우산 없이 달리는 것!

<프롤로그>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우산 없이 걸어가도 마냥 설레고 행복한 것이 사랑이다. 하지만 이별 후엔 신호등이 빨간불인지도 모르고 그 사람과의 추억을 생각하며 무작정 걷는 것도 사랑이다. 한국 영화<클래식, 2003>에서 남녀 주인공의 애틋하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은 운명처럼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준다. 이들의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속으로 한 번 들어가보도록 하자.

<영화 줄거리 요약>
같은 대학에 다니는 지혜(손예진 분)와 수경은 연극반 선배 상민(조인성 분)을 좋아한다. 어느 날 호들갑스러운 수경이 상민에게 보낼 고백 편지의 대필을 지혜에게 부탁하고, 지혜는 수경의 이름으로 상민을 향한 자신의 감정을 고백한다. 지혜의 편지로 맺어진 수경과 상민이 가까워지면서 지혜는 괜한 죄의식에 상민을 멀리하려 하지만, 우연하게도 자꾸만 마주치게 된다.

하지만 오래전, 운명적인 사랑은 이미 시작되었다. 아빠를 일찍 여읜 지혜는 현재 해외여행 중인 엄마 주희와 단둘이 살고 있다. 다락방을 청소하던 지혜는 우연히 엄마의 비밀 상자를 발견하게 되고 엄마의 첫사랑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비밀 상자를 보면서 지혜는 엄마의 클래식한 사랑을 조금씩 알게 된다. 1968년 여름방학을 맞아 시골 삼촌 댁에 간 준하(조승우 분)는 그곳에서 성주희(손예진)를 만나, 한눈에 그녀에게 매료되고 그런 주희가 자신에게만 은밀하게 ‘귀신 나오는 집’에 동행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흔쾌히 수락한 준하는 흥분된 마음을 가까스로 누르며 주희와의 약속 장소에 나간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나 배가 떠내려가면서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이 일로 주희는 집안 어른에게 심한 꾸중을 듣고 수원으로 보내진다. 작별 인사도 못 하고 헤어진 주희를 향한 준하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게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온 준하는 친구 태수에게 연애편지의 대필을 부탁받는데, 상대가 주희란 사실에 깜짝 놀란다. 하지만 태수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태수의 이름으로 자신의 마음을 담아 주희에게 편지를 쓴다. 이렇듯 운명이 던져준 또 한 번의 편지를 대신 써주며 사랑이 깊어간 엄마와 자신의 상황이 묘하게도 닮아 놀라게 된다.

<관전 포인트>
A. 사랑의 감흥이 흐르던 장면은?
상민과 빗속을 함께 뛰면서 생긴 사랑의 야릇한 감정을 알게 된 지혜는 상민도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해 준 ‘특별한 우산’을 가져다주기 위해 비를 맞으며 캠퍼스를 달려가게 되는데, 이를 본 학군단 제복을 입은 학생들은 그녀의 씩씩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경례하고 이에 지혜도 경례로 답을 하는 모습이 싱그럽다.

B. 준하가 베트남전에 자원한 이유는?
정략결혼을 위해 아버지에게서 압박을 받던 자신의 절친 태수가 자살을 기도하자 준하는 죄책감과, 주희에 대한 사랑을 잊기 위해  베트남전 참전을 위한 입영 열차를 탄다. 그때 주희가 달려와 사랑의 징표인 자신의 목걸이를 준하에게 건네준다. 훗날 준하는 전쟁터에서 폭탄 사고로 인해 눈을 다쳐 돌아오게 된다.

C. 준하가 눈먼 사실을 숨긴 이유는?
준하는 주희가 자신에 대해 죄책감으로 부담을 느낄까 봐 주희와의 만남 하루 전에 레스토랑에 미리 와서 동선을 살펴보면서 자신이 눈먼 사실을 숨긴다. 하지만 주희는 그 사실을 알아채고 눈물을 흘린다.

D. 준하와 주희의 안타까운 미래를 예고하던 것은?
주희의 피아노 경연날 찾아온 준하는 그녀가 베토벤<소나타 8번 비창, 2악장>을 연주하는 것을 듣고 슬픔의 미래를 직감한다. 이 음악은 1982년 영국 가수 루이스 터커(Louise Tucker)가 비창 제2악장의 멜로디에 가사를 얹어 <Midnight blue>라는 음악으로 재해석해 부르기도 했다.

E. 순수한 사랑을 흠뻑 느끼게 해주는 OST는?
비가 억수같이 오던 날 평소 지혜를 좋아하던 상민은 자신의 우산을 매점 점원에게 선물하고, 비가 오는 길을 자신의 코트로 지혜와 함께 쓰고 간다. 이 장면에서 나오던 곡인 <너에게 난 나에게 넌(자전거 탄 풍경)>은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고, <고백>, <사랑하면 할수록>,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과 같은 아름다운 곡들을 남겼다. 훗날 지혜는 상민에 대한 생각이 더욱더 깊어만 가다가 어느 비 오는 날 상민의 진심을 알게 되고 그와 운명처럼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에필로그>
어릴 적 읽은 황순원의 소설<소나기>에서 소년과 안타깝게 이별한 첫사랑 윤 초시네 증손녀처럼 뜨거운 사랑의 열병에 걸린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굵은 빗줄기가 가슴을 식혀줄 천사로 생각하는 것 같다. 영화<사랑은 비를 타고(Singin’In the rain), 1953>에서 진 켈리가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길거리에서 사랑에 겨워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과 까뜨린느 드니브의 뮤지컬 영화<쉘부르의 우산(The umbrellas of Cherbourg), 1964>에서 전쟁으로 인한 슬픈 이별에 내리는 눈은 사랑의 매개체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처럼 비 오는 거리를 우산 없이 걸어보는 정취는 또 다른 로맨틱한 시간을 만들어 줄 것이다.

서태호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