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6.25 전쟁이 발발한지 60년 되는 날이다. 환갑이다.

기념하고 싶진 않아도 기억해야 할 비극적인 날이다.

 

아버님은 이 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하셨다.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10년이 훨씬 지난 오늘

생전에 쓰신 글(돌아가시기 1년 전 쯤)을 문득 찾아보게 됐다.

무수한 수류탄 파편을 몸에 지니고 평생을 사셨던...

 

블로그 개설 취지와 안맞지만, 이 글을 옮겨놓는다.

 

 

아버님이 참전하셨던 포항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 ''''포화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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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5 전쟁이 발발 한지도 어언 46년이 지났다.  그 때 겪었던 일 중 잊혀지지 않는 몇 가지 적어볼 충동을 느껴 여기에 적는 바이다.

 1. 비 상 소 집

  1950년 8월 2일 중학교 5학년 때의 여름 방학 중이라,  소집 연락을 받고 학교에 갔다. 학교장과 배속장교의 훈시를 받았다. 그들은 시국의 위급함을 알리고 모두 인솔하여 초등학교에 집합시켰다. 그리고는 군복을 갈아 입히고 우리를 대기시켰다.

  8월 4일 대구 농림 중학교로 가서 입대했다. 일주일 동안 총기 분해·결합, 수류탄 투척, 로켓포 쏘는 훈련 등을 배웠다. 그리고 일주일 되는 날 저녁, 캄캄한 밤에 집합하여 군번을 받았는데, 한 사람씩 이름을 부르더니 구두로 군번을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즉석에서 암기해버렸다. 970 - 3322, 소속은 3사단 25연대라고 들었다. 그리고는 포항을 향해 출동했다. 기차를 탔다.

 

 2. 포위망을 뚫다.

  포항에서 출발, 영일군 어느 뒷산에 올랐다. 밤이 어두웠다. 나는 밤중에 불침번을 섰다. 총소리가 나면 모두 깨우라는 지시를 받았다.  얼마 후, 모두가 잠들어 있는데, 가까운 곳에서 11중대 다 모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손들어, 손들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참병이 모두를 깨웠다. 자기를 따르라고 해서 우리 소대원 모두가 따라 갔다. 산 아래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아주 캄캄한 밤이다. 2km쯤 내려가 보니, 거기에 아군들이 모여 있었다.

재배치하고 있는 중에, 뒤에서 옆에서 총소리가 났다. 모두 흩어졌다. 밤이 새기 직전의 어둑어둑한 때였다. 그때 같이 빠져 나온 동료가 6명 있었다. 동네가 보였다. 콩밭을 지나는데 총알이 수없이 날아왔다. 콩알이 무수히 떨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무사했다. 동네 가운데 바짝 마른 개울이 있고 다리가 있는데, 다리 옆에 인민군 전차가 한 대 보였다. 도로 가에는 아군 트럭이 보이고, 같이 왔던 선임하사와 아군 병사 두 세 명이 손을 들고 잡혀가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도로 앞에는 과수원이 있었다. 우리는 포위 당했음을 알고, 탈출을 시도했다. 과수원 철망 높이가 키를 훨씬 넘었다. 한 사람씩 뛰어 넘었다. 총알이 날아온다. 그러나 우리 모두 무사히 넘었다. 운동선수 이상이다. 다시 포항 쪽을 향해 뛰었다. 총알이 빗발 같이 떨어져도 모두 맞지 않았다. 도중에 도로의 다리 밑 개울에는 피난민들이 남녀 노소 울부짖으며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포항에 도착했다. 낮은 산 위에 아군 해병 포대가 있었다. 그곳으로 갔다. 전황을 물어보니 포항을 내려다보라고 한다. 완전히 불바다였다. 교회 십자가 하나만 보였다. 갈 곳이 없다. 부득이 영일만의 바다로 탈출하기로 했다. 바닷가에 갔는데 배가 없다. 조금 있으니 조그만 돛단배가 멀리 가고 있었다.

공포탄을 쏘았다. 손짓을 했더니 가까이 왔다. 해병들과 같이 조그만 배에 11명이 탔으니 물이 넘칠 지경이다. 인민군 박격 포탄이 몇 발 날아 왔다. 그러나 맞지 않았다. 꼼짝하면 배가 뒤집힐 지경이다. 중간쯤 갔을 때 또 조그만 돛단배가 지나가는 것을 손짓하여 오게 해서 분선(分船)을 했다. 그리고는 건너 오천 비행장 쪽으로 향했다. 갖고 있는 총대는 짠 물결에 하얀 총이 되었다.

 우리 일행 6명은 구룡포로 갔다. 경찰서장을 만나 점심 잘 얻어먹고, 감포 헌병대로 갔다. 거기서 하룻밤을 새웠다. 갖고 있던 무기는 모두 반납했다. 패잔병은 무기가 필요 없다는 거다. 우리는 그 길로 울산을 거쳐 경주로 향했다.

길가에는 피난민이 줄을 지어 남하하고 있었다. 그 때, 지게를 진 한 사람이 줄을 이탈해 가는데, 우리가 탄 군용차가 받아 버리고 지났다. 그 사람은 언덕 밑 논바닥으로 날아갔다. 차는 그대로 달렸다. 경주 헌병대로 갔다.

반기는 군인이 있었다. 바로 첫 전투 때의 우리 대대장이었다. 자기도 연락병과 함께 사복입고 피난민 속에 끼어 겨우 빠져 나왔다는 것이었다. 흩어진 대원을 3일 기다려도 30명밖에 모이지 않았다. 다시 제 29연대에 편입되었다. 재생 소대라고 명명했다.

 

 3. 눈앞에서 총살을 하다.

어디쯤인지 모르겠다. 연대본부에 도착했다. 어느 콩밭 도로 가에 우리를 집합시켰다. 장교 2명 사병 몇 명 정도 보였다. 연대장이 훈시를 한다. 조금 있으니 손을 뒤로 묶인 군인 하나가 끌려나온다.

장교에게 지시한다. 총살하라는 명령이다. 콩밭에 세워놓고 권총 1발을 가슴 쪽으로 쐈다. 휙 돌아간다 뒤에서 또 한 발 쐈다. 고꾸라졌다. 다른 사병 둘이 연발로 확인 사살한다. ''''쿡''''하고 죽어 버렸다.

연대장이 말한다. "너희들은 절대 도망갈 생각하지 마라."

 

 4. 344 고지를 점령하라.

안강으로 갔다. 어느 부잣집에 우리 소대가 들어갔다. 인민군들이 소를 잡아 뜯어 먹다 간 흔적이 있다. 파리가 왕 하고 들끓는다. 창고에 꿀단지가 있었으나 혹시나 하고 먹지 못했다.

마침 돼지 두 마리가 사람을 보고 찾아 들었다. 큰놈과 새끼다. 한쪽에서는 장작으로 큰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한쪽에서는 쌀로 밥을 짓는다. 물이 끓자 돼지를 잡았다. 털을 벗겼다. 여러 쪽을 나누어 옆의 소대에도 주었다. 모두 한 토막씩 들고 먹는 중 집합 명령이 내려졌다.

밥은 못 먹고 그대로 행군이다. 도로 양쪽으로 행군 도중 어떤 군인은 혼자 길 복판으로 가다 다시 제 위치에 온다. 어떤 군인은 길가 개천에 빠졌다 올라온다. 모두 잠이 부족해서였다. 인민군을 3일이나 포위했었기 때문이다.

전세가 위급하여 특공대를 구성했다. 50여명이다. 344고지를 점령하라는 명령이다. 그 고지 밑 고지에 올라갔다. 산 위에는 시체가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다. 어떤 장난꾸러기가 시체를 호 안에 세워놓고 바지를 반쯤 벗겨 놓은 것도 보인다.

능선을 넘어 호를 파기 시작했다. 총알이 날아온다. 겨우 팠다. 실탄이 보급되었다. 1,800발 박스를 옆에 놓았다. 밤중에 사격 개시다. 잠시 중지한 뒤 또 쏘았다. 날이 새었다. 그리고는 아래 고지인 344고지로 돌격이다. 낮은 고지 3개 중 마지막 능선에서 꼼짝을 못했다. 인민군이 344고지에서 바로 내려다보고 쏘니, 총알이 빗발같이 날아온다. 부득이 철모만 의지하고 고지 방향으로 일직선으로 엎어졌다. 꼼짝하면 또 쏜다. 팔다리가 저린다. 때로는 바로 옆에 총알이 박히기도 한다.

얼마 후에 주위에 구름이 끼이더니 비가 쏟아진다. 안개도 끼인다. 고지도 잘 안보인다. 해가 지는 것 같다. 가까이 신음 소리가 들린다. 위생병을 찾는 소리인가 보다. 위생병은 없다. 이때 나는 344고지 밑으로 돌진했다. 거기에 모인 아군은 20여명뿐이었다.

마침 밥이 왔다. 징용된 일반인 차림으로 지게에 나무로 된 상자에 주먹밥을 갖고 왔으나 비에 맞아 전부 물밥이 되어 있었다. 모두 손으로 조금씩 요기를 했다. 그리고는 고참병 한 사람이 인원 배치를 시작했다.

그때 전투가 벌어졌다. 한참 총격전이 벌어졌으나 역부족이었다.  부득이 계곡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옆에서, 뒤에서 총알이 날아온다. 발 옆에 총알이 박힌다.

''''삐융'''' 하고 귀 옆으로도 총알이 날아간다.  내려가다 보니 아군 중기관총, 경기관총 등이 버려져 있었다, 대대 본부쪽으로 내려갔다. 가보니 대대본부도 포위되어 있었다. 남쪽에서, 서쪽에서, 북쪽에서 ''''뚜루룩 뚜루룩'''' 총알이 수없이 따라온다.

 할 수 없이 동쪽으로 빠져 나갔다. 겨우 능선하나를 넘었다. 거기에는 무선 안테나를 높인 채 지키고 있는 두 명의 통신병뿐이었다. 갈 곳이 없다. 모퉁이 세 개 넘으면 연대 본부가 있다고 해서 그 쪽으로 갔다. 거기에는 지프차 2대, 화물차 3대, 작전장교 몇 명, 연대장뿐이었다. 기다려도 병력이 30여명밖에 안 보인다. 명령이 내려졌다. 최 일선이 무너지면 큰일나니 3개의 고지에 분산해서 올라가라고 한다. 연대장은 절대 사수하라, 후퇴는 없다. 그 자리에서 죽어도 버티라는 것이다. 건빵 한 봉지씩 갖고 1개 분대씩 올라갔다.

 

 5. 최후의 결전

   산 위에는 조용했다. 마침 호가 이미 파여져 있었다. 그러나 개인 호인데 8 개뿐이고, 사람은 9명이다. 전원이 신병인데, 내가 분대장을 맡았기에 가운데 호에 두 명이 겨우 기어 들어갔다. 전라남도 순천에 사는 누구라고 하는데 이름은 잊었다. 밤이 되었다. 갖고 온 건빵을 먹었다. 하룻밤을 새웠다. 이튿날이 되었다. 그래도 조용했다. 총소리도 안 들린다. 또 하룻밤을 새웠다.

해가 돋았다. 해가 산 위에 올라왔을 때다. 앞의 높은 산에서 1개 중대 가량의 인민군이 흩어져 내려온다. 직선 거리가 200미터 정도이다. 산 중허리에 내려 올 때다. 이때다 하고 나는 사격개시를 명했다. 총알이 무수히 교차된다.

우리는 소총뿐이다. 상대는 기관총도 있었다. 우리는 호 안에서 무차별로 쏘았다. 나는 그 때 실탄이 64발밖에 없었다. 거의 다 쏘았을 순간이다. 왼쪽 뒤 옆에서 고함 소리와 함께 인민군 장교 하나가 수류탄을 내가 있는 호에 던졌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의식을 잃었다.

시간이 얼마가 지났는지 모른다. 옆에 있는 전우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상하다 싶었다. ''''나는 죽었는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 저 놈 살았다."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탄알 장전 하는 소리가 ''''딸깍딸깍'''' 나더니 내 옆에 있는 전우에게 ''''쾅쾅'''' 두 발을 쏘았다. 몸이 들썩들썩 하더니 ''''쿠-ㄹ''''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분명히 살아 있음을 알았고 다음은 내 차례임이 틀림없다고 느끼면서 손을 들었다. "왜 진작 손을 들지 않았느냐?" 하길래 "아니, 손 들 틈이 없이 맞았다."고 했다. 일어서라고 한다. 그 때는 중환자는 죽이고, 경환자는 데리고 가곤 했을 때다. 있는 힘을 다해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뒤로 쓰러진다. 뒤에는 제법 큰 바위가 있어 거기에 기대었다. 조금 있다 일어나겠다고 했다. 인민군은 계속 전진하는 소리가 들린다. 곧 아군의 들것이 올 테니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눈을 떴다. 아무 것도 안 보인다. 모든 것이 뿌옇게 보였다. 조금 있으니 풀잎이 보인다. 인민군도 보인다. 17세 정도 되는 아이들이 많았다. 머리와 몸에 위장을 하고 있었다. 나는 눈을 뜨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호 안에는 피가 질퍽하고, 옆에 있던 전우는 꼬부라져 있었다.

내가 차고 있던 수류탄 2개와 M1 소총도 없어졌다. 배와 위쪽 부분은 다치지 않은 것 같았다. 양쪽을 보니 전우들은 모두 호 안에서 죽어 있었다. 인민군은 다 지나가고 사방이 조용했다. 바람소리만 들린다. 아픈 느낌도 모른다.

또 인민군 소대가 지나간다 그 중 한 놈이 "저놈 쏘아 버릴까?" 한다. 옆에 있던 놈이 "총소리 내지 마라. 그냥 가자."고 한다. 또 조용하다. 조금 있으니 앞 산 넘어서 인민군 둘이 들것을 들고 온다. 그러나 나를 지나고 그냥 가버린다. 또 조용하다. 정신을 차려 본다. 물이 먹고 싶다. 몸을 움직여 보았다. 잘 움직이지 않는다. 풀과 나무를 잡고 호를 겨우 빠져 나왔다.

산 아래쪽으로 미끄러지며 거꾸로 내려갔다. 어디서 물소리가 ''''쨀쨀'''' 들린다. 겨우 찾아 손바닥에 물을 모은다. 그러나, ''''부상당하고 물을 먹으면 죽는다''''는 말이 문득 생각났다. 물을 입가에 발랐다. 그리고 또 미끄러져 내려갔다. 걷지는 못한다. 또 물이 제법 쫄쫄 내리는 곳으로 갔다. 이젠 물을 머금고 도로 뱉어 놓았다. 또 내려간다. 이제는 산과 산 사이에 도랑으로 물이 많이 흐르고 있었다. 목이 말라서 죽을 지경이다. 물을 보니 견딜 수가 없다. 죽더라도 물을 먹어야 되겠다 싶었다. 죽을 각오하고 실컷 먹어 버렸다. 시원하다.

해는 저문다. 피로가 온다. 엎어진 채로 잠을 잤다. 밤은 캄캄하다. 상처가 아프기 시작한다. 또 물을 먹었다. 겨우 잠을 이루었다. 동쪽이 밝아온다. 또 도랑을 타고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오줌을 누었더니 반 핏물이었다.

몇 미터 가다가 쉬고, 또 몇 미터 가다 쉬고 하면서 내려간다. 마침 큰 바위에 쉴 자리가 좋았다. 거기서 잠을 잤다. 조금 있으니 ''''부스럭 덜컥'''' 하는 소리가 들린다. 뒤를 쳐다보니 인민군 한 놈이 장총 끝에 칼을 꽃은 채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내려온다. 가까이 온다. 그러나 나를 못 봤다. 겁이 났다.

저 칼로 쑤시면 어쩌나? 차라리 총을 쏘아 죽여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앞에 왔다 손을 들었다.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다." "오!" 하더니 내 옆에 앉는다. 완전 피투성이가 된 나를 보고 "왜 진작 손 안 들었느냐?" 하고는 깔때기가 있는지 묻는다. 머뭇거리니 성냥 있느냐고 묻는다. 없다고 했다.

대화를 한다. 자기도 학도병으로 왔는데, 남한이 어떻고 북한이 어떻고 하며 혼자서 지껄인다. 나는 어쩌면 좋으냐고 물으니, 아래쪽으로 내려가라는 것이다. 인민군은 떠났다. 그러고 보니 그는 인민군 낙오병이었다.

나는 또 풀과 돌을 당기며 아래로 내려갔다. 논두렁이 보인다. 논들이 보인다. 낯이 익은 곳이었다. 언젠가 머리가 터진 전우 한 명을 데리고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이젠 살았다. 그 밑에 부락이 있고 거기에 가면 지형을 알 수 있다. 힘을 내어 또 내려갔다. 동네의 위 쪽 외딴집이 보인다. 이 집이 목표다.

 

 6. 생과 사

도랑을 따라 조금씩 내려간다. 그 외딴집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길을 가려면 도랑에서 약 1미터 높이를 올라가야만 한다. 오르는데 아마 30분 이상 걸렸을 것이다. 올라가니 길가에 목화밭이 있었다.

열매가 맺혀 있다. 겨우 들어가 몰랑몰랑한 것 하나씩 따먹었다. 건빵 한 봉지로 3일을 버티고 나니 배가 고팠다. 정말 맛이 좋다. 조금 따먹고 있는데, 내가 지나온 계곡 위쪽에 아군 포탄이 떨어진다. 슈슈슈꽝.(인민군 박격 포탄은 슝, 흉 소리가 난다) 조금 있으니 중간쯤에 또 떨어진다. 겁이 난다. 다래 따먹던 것을 중지하고, 길로 올라갔다.

  그때다. 바로 위쪽에 ''''슛, 푹'''' 하고 포탄이 떨어졌다. 이때의 급박한 상황은 모든 것을 초월할 정도다. 이틀 동안 손으로 풀만 당기며 내려왔는데, 순간적으로 정강이로 기었다. 내 육체와 생명이 가진 힘의 총동원이다. 젖 먹은 힘까지 나온 모양이다. 초능력이다. 그러나 그래 봐야 불과 2미터도 못 갔다. 그대로 엎어졌다. 꼼짝을 못했다. 이젠 죽었구나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기한 일이다. 포탄 터지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불과 8 - 10미터거리다. 불발탄이었다.

 해가 저문다. 민간인 집까지는 30미터 정도다. 뛰어가면 3~4초 거리밖에 안 되는 거리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갈 수가 없다. 캄캄해졌다. 이윽고 사력을 다해서 그 집 울타리에 도착했다. 솔가지로 만든 울타리를 뚫고 들어갔다.

 불도 없고 인기척도 없다. 겨우 기역자 집의 중간쯤 들어갔다. 모기 만한 소리로 주인을 찾았다. 두 번, 세 번 불러도 대답이 없다. 조금 있으니 "누구요?" 하는 소리가 났다 "살려주십시오. 군인입니다." 라고 했다. 그래도 말이 없다.

조금 있으니 노인이 문을 열고 나왔다 누구냐고 또 묻는다. 국군이라고 했다. 먹을 것 좀 달라고 했다. 없다고 한다. 정말 국군이냐고 또 묻는다. 그렇다고 했다. 아래채에 디딜 방앗간이 있었다. 여기에 나를 끌어다 놓았다.

나는 나무 바가지를 베고 잠이 들었다. 얼마 후, 주인이 나를 깨웠다. 불을 피울 수 없어 화로 불에 밥을 만들었다고 한다. 집에 있는 쌀 전부를 갖고 도시락 그릇에 밥을 지었는데 위에는 생쌀, 밑에는 밥이 되어 있었다. 된장, 고추장을 고추와 함께 갖고 왔다. 물을 달라고 하여 순식간에 먹었다. 정말 고마웠다. 방앗간과 소 마구간 사이에 사랑방이 있었다. 좀 옮겨 달라 하니 도저히 안되겠다 하여 방앗간에서 그대로 잤다.

밤중에 인민군 포탄이 동네 복판에 떨어졌다. 주인이 쫓아 나가 보았다. 사태가 심각한 모양이다. 할머니를 불렀다. 두 노인이 달려 왔다. 나를 마구간 옆방에 겨우 들어올려다 놓고, 대단히 미안하다고 했다. 피난을 가야 되겠다는 거다.

그렇다면 먹을 것만 좀 달라고 했다. 보리밥이 담긴 소쿠리와 반찬, 홍시 한 소쿠리와 물을 갖고 왔다. 그리고 주인은 밤중에 피난을 갔다. 소 마구간 옆방은 방이 뜨끈뜨끈 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조금 있으니 만신이 아프기 시작했다. 생살이 찢어지는 아픔이다. 정말 죽을 지경이다. 꼼짝도 못하고 누워서 오줌을 쌌다. 헤매다가 겨우 잠을 이뤘다.

한참 있으니 사람 소리가 들린다. 피난 간 주인이 되돌아 왔다. 밑에 내려 가다가 많은 아군들을 만났는데, 걱정 말고 집에 가 있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날이 샜다. 그래서 주인에게 부탁을 했다. 아군에게 연락 좀 해달라고 사정했다. 종이, 벼루와 붓을 갖고 왔다. 상처가 썩어가니 긴급히 구조를 바란다고 써서 주인을 보냈다.

그리고는 잠을 잤다. 조금 있으니 몸이 아팠다. 노인 둘이서 나를 들것에 싣고 있었다. 편지를 받더니 빨리 데리고 오라는 모양이다. 실려 내려가니 십자기를 꽂아 놓고 위생병 둘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실려서 밑의 동네에 갔다.

부상병이 몇 명 있었다. 우선 응급 조치를 받았다. 대퇴부에 박힌 큰 파편 두 개를 뜯어냈다. 절단된 엄지발가락 속에는 큰 구더기 한 마리가 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달전동 본동 어떤 집 사랑방으로 옮겨졌다. 아군 두 명이 찾아 왔다. 고생했다고 하며 홍시를 한 소쿠리 갖고 왔다.

밤이 되었다. 총소리가 아주 심하게 난다. 내가 있는 옆방으로 총알이 지나간다. 겁이 났다. 이때 처음으로, 총알에 맞으면 어쩌나 하는 의식적인 공포감이 느껴졌다.

  새벽이 지나고 나자 조용했다. 아침에 헌병 둘이 찾아왔다. 밥을 갖고 왔다. 밤에는 인민군이 침입했다가 물러갔다고 한다. 이 동네에는 노인들만 피난 안 가고 남아 있었다. 헌병은 한 노인에게 나를 아랫동네로 옮기라고 명했다. 그 노인은 사람을 찾다가 못 찾자, 혼자서 나를 지게에 올려 밑의 동네까지 단숨에 지고 갔다. 너무 고마웠다.

얼마 후 개울가 큰 버드나무 밑에 내려졌다. 조금 있으니 지프차 1대에 우리 연대장과 장교 2명이 왔다. 연대의 전부였다. 수고했다고 하면서 사과를 주었다. 맛이 좋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또 즉결 총살하는 것이 보였다. 도망병인 것 같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트럭 한 대가 왔다. 부상자가 몇 명 실려 있었다. 나도 같이 실려 도구동 야전 병원으로 옮겨졌다.

부상자가 많았다. 이틀쯤 지난 것 같다. 잠자고 있는데, 또 들것에 실려 가는 느낌이었다. 잠을 깨어 보니, 널찍한 창고 속 같은 데에 들것에 실린 부상병이 꽉 차 있었다. 여기가 어딘가 물었더니 병원선(船)이라고 한다. 구룡포 항이라 한다. 이제 부산으로 간다는 것이다. ''''이제는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부산 육군 제 5 육군 병원에 옮겨졌다. 부두에서 내리면서 바라다보니, 전쟁하는 나라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평온해 보였다. 병원 X-Ray를 통해 발에 박힌 큰 파편을 빼냈다. 마취도 하지 않고 빼내니 너무 아팠다.

병원 3층으로 옮겼다. 내 옆에 있는 환자는 눈도 없고, 팔도 못 쓰고, 입과 콧구멍만 보이는 큰 화상을 입은 사람이었다. 나는 손이 성하였으므로, 끼니마다 그 사람에게 밥을 먹여 주었다. 그 뒤 눈을 떴을 때 나를 보고 너무 고맙다고 했다.

  소식을 들으니 인천 상륙작전이 있었다고 한다. 입원한 지 3개월쯤 되었을 때다. 옆의 사람을 붙들고 일어섰다. 처음으로 부산항을 내려다보았다. 감개무량했다. 상처가 거의 나았다. 그리고는 육군 제 839 부대 제 1대대로 옮겼다. 남선 여고 자리이다.

 

 7. 눈알이 마루에 구르다 

내무반에서 있었던 일이다. 식사당번이 밥을 층계 차에 싣고 지나갈 때, 각자가 한 그릇씩 내리게 되어 있었다. 그 때, 한 다리 없는 병사가 밥 한 그릇을 훔쳤다.

이것을 본 식사병이 그 병사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자빠져 쓰러졌는데 그의 눈알이 마루에 떼굴떼굴 굴러갔다. 그 때 이것을 한쪽 다리 없는 중대장이 보았다. 갖고 있던 목발로 그 식사당번을 후려쳤다. 또 때렸다. 비참한 광경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눈알은 진짜 눈알이 아닌 의안이었다.

 그 뒤 1951년 1월에 1차 명예 제대자를 상신(上申)하기 위해 명단을 작성했다. 그러나 자기 군번을 모르는 사람이 상당수 있었다. 나는 내무업무 때문에 1951. 2. 28 제 2차 명예 제대를 했다.

 

 8. 46년을 되돌아본다

  전쟁! 누구를 위한 싸움이었던가?  세계 열강 속에서 힘없는 민족의 서러움을 뼈아프게 겪어야 했고, 동족간의 이념 차와 독재자의 개인 욕심으로 빚어진 6.25의 쓰라린 전쟁!

 오손도손 살아야 할 이 땅에 무슨 원수 진 일이 있는가! 독재자 측근의 극히 소수가 살아 남기 위해 그 수많은 대다수의 국민을 희생시키고, 우리가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런 일부 무리들로 인해 희생당한 무수한 사람들의 아픈 영혼은 누가 치유해 줄 것인가?

  이제 내가 겪은 6.25 의 일부를 주마간산 식으로 서투르게 적어보았다. 새삼 생각나는 것은 영일군 달전면 달전동 뒷 계곡에서 포탄의 불발탄이 떨어질 때다. 그때의 동작은 본능적이었지만 생의 애착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느꼈고, 특공대에서 내려와 다시 띄엄띄엄 떨어진 산 위에 1개 분대씩 배치되어 우리 분대가 절대 사수하다 몰사했는데, 그 때 내가 만약 아군 미제 수류탄을 맞았다면 팔, 다리는 다 달아났을 것이다. 내가 맞은 수류탄은 소련제 중 가장 약한 것이었으므로 살아 남은 것이었다.

  때로는 이 끈질긴 생명의 존속이 오히려 후회될 때도 있었다. 아직 몸 속에는 파편이 11개나 남아있다. 엄지발가락이 절단되면서 큰 마디가 완전 곪아 버리고, 둘째 발가락도 곪아 제대로 못 걸으면서 살아가려 하니 정말 힘든 일이다. 때론 한쪽 다리가 저려서 꼼짝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불구의 몸이긴 하지만 조국을 위해 싸웠다는 긍지는 남아있다. 세월은 흘러 칠순이 가까우니 그래도 나는 제법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먼저 간 전우들의 명복을 빌며, 지금도 고통 받고 있는 부상 전우들의 쾌유와, 행운을 기원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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