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은 가장 오랜 기간 정사를 펼쳤던, 그리고 조선시대 마지막까지 왕실과 운명을 같이 했던 궁궐이다.
그러나 서울에 있는 궁궐 중에서 구경하기가 가장 어려운 곳이 창덕궁이다.
시간을 정해 놓고 입장을 하고 들어가서도 안내원을 따라다녀야 하는 곳이다.
 
어렸을 적엔 비원(秘苑)이라고 불리었었는데,
봄, 가을에 소풍장소로 수없이 왔던, 창경원(궁)만큼이나 접근성이 좋았던 곳이었다.
약간의 불편함만 감수하면 되는데, 그것이 싫어서 20년 넘게 가보지 않은 창덕궁엘 ‘큰 맘 먹고’ 가보게 되었다.
 
비원이라는 말은 창덕궁의 후원(後苑;禁苑)을 일제가 바꾸어 칭한 것이어서 지금은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아직도 비원이라는 호칭에 더 익숙한 건 사실이다.  
현재 창덕궁을 관람하다 보면, ‘비원’ 전체를 관람할 수가 없다.
일부 지역은 별도의 시간을 내어야 한다.
 
궁궐 촬영 자체가 참 오랜만이어서, 돌아다니던 도중 많은 호기심을 발동시켰다.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없던 호기심도 생기게 된다.
 30분 간격으로 입장을 하는데도 휴일이라 안내원 한 명에 수백명이 따라붙었다.
사진을 찍다 보면 자연적으로 뒤로 처지게 되어 안내원의 설명을 들을 수가 없었다.
 사전 지식 없이 방문한 터라 약간의 답답함을 감수해야 했다.

 결국 촬영 후에 ‘공부’하여 지적 욕구를 충족시켰다.
조금이라도 평소에 관심이 있었으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을 만한 내용이다.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돈화문 추녀마루에 조그마한 형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잡상''''이라고 불리는데, 서유기의 등장인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맨 앞에 허리를 펴고 앉아 있는 것이 삼장법사(大唐師父). 보통 갯수가 홀수로 구성되어 있다.
 

 

처마 끝에는 용두로 마감을 하는네 주로 용머리나 물고기 머리로 장식을 한다.
이 역시 화재를 막기 위한 주술적 의미를 갖고 있다. 

독수리 얼굴 형상의 잡상

인정문, 인정전 용마루엔 배꽃 문양이 박혀 있다. 다른 궁궐에서는 보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이는 왕실의 문양이라고 설명이 되지만, 조선 왕조의 성씨(오얏 리)를 표현했다는 설도 있다. 

인정문과 정전(正殿)인 인정전 -- 처마 밑엔 새들이 집을 짓지 못하도록 그물이 쳐져 있다. 

인정전 앞마당에 있는 대신들의 서열별 좌석표(?)인 품계석 

인정전 앞 월대 모서리에 있는 ''''드므''''
--火魔가 왔다가 여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도망간다는... 

드므 반대편에 위치한 ''''부간주''''(모양이 틀리다)
--액운을 막는 의미로 설치한 것으로, 동지엔 팥죽을 여기에 끓였다는... 

많은 인파가 몰려 안내를 받기가 힘들었다.
왕비의 처소인 대조전 --큰 것(왕자)를 만든다는 의미 

대조전 지붕을 걸쳐 찍는데, 이 건물에 용마루가 없었다.  

용마루가 없는 이유는 용마루가 누르는 기운을 피하고 하늘의 정기를 받기 위함이라고. 

대조전 뒷 정원 -- 용마루가 없어 뭔가 허전한... 

대조전 뒷편 꽃담과 굴뚝 

희정당 복도 

희정당과 대조전 연결복도(행각)

부용정 

부용지의 비단잉어 

과거 시험을 본 곳이라는 영화당 

애련정 --- 이름과 달리 현재 연꽃은 부용지와 마찬가지로 연이 별로 없다. 

돌로 만든 불로문 

담 너머 규장각 

그리고 그밖의 창덕궁 이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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