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한옥마을을 구경한 김에 한옥이 남아 있는 곳을 더 들러보기로 했다.
퇴계로에서 종로 3가까지 걸었다.
번화한 큰 길에서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오래된 한옥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마치 30여년 전 살았던 ‘우리동네’와 같은 모습을 보는 듯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고향을 만났다. 

함석판 빗물받이, 타일로된 담벼락, 엉켜 있는 전깃줄--시간이 멈춰 있었다. 

이곳은 보존지역이 아니라 주거지역이다. 
그리고 재개발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지역이다.
전통적인 한옥구조가 아닌 소규모 개량한옥들이다.
내부는 볼 수 없었지만, 담…대문들을 보면서 잠시나마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다.
살펴보는 시간은 짧았지만 참으로 긴 여행이 되었다. 

대문에 스테인리스 장식을 활용 --주로 숭례문 같은 형태를 많이 차용한다.

덧칠한 대문  (오른쪽 고리는 많이 써서 떨어져 있는 것이 공통점)

 

옛날 개량한옥은 담벼락을 타일로 장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콘크리트 담에 기하학적인 무늬를 넣어 장식(타일보다는 저렴)

 그곳에서 낙원상가 쪽으로 방향을 돌리니,
서울에 이제 몇 곳 남지 않은 ‘전통한옥 유흥술집’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일반술집에서 느낄 수 없는 풍류라는 것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 쩝.  

대문에서 이 집의 관록을 엿볼 수 있다.(쪽문이 이채롭다 --영업용이다 보니 그런듯) 

또 이까지 왔다면 운현궁을 들러줘야 한다는 지인의 제안에 선뜻 발걸음을 이어나갔다.
여기서 가까운 창경궁, 비원(창덕궁)에는 어렸을 적에 소풍형태로 많이 가봤으나 이곳은 처음 와보는 것이었다.

운현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규모가 큰 한옥이다.
흥선 대원군의 저택이자, 고종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며 명성황후가 시집살이 내지 왕비수업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규모가 임금이 살던 궁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지만,
다른 세도가들의 저택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고 아름답다.  

 

운현궁엘 들어서면 꽃담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이곳 벽들에도 처마그늘이 예쁘게 내려 앉았다.

꽃담에도...

 

나무 그림자가 꽃담의 운치를 더하고...

물이 아직 고여 있을 듯한 우물...

겨울햇살이 담밑 정원에 스미고...

구석진 곳까지 내려 앉았다.

 

아름답고 단아한 굴뚝 (한옥의 담과 지붕을 모티브)

봄을 기다리는 꽃망울

 어렸을 때… 툇마루 너머 마당에 후두둑 하고 비라도 쏟아질라치면,
흙냄새와 콘크리트 냄새가 섞여 야릇하게 후각을 자극했던…
그 냄새가 문득 떠올랐다.
그 땐 따뜻한 아랫목에서 만화책을 읽고 싶었는데,
지금 그런 상황이라면 빈대떡과 술 한 잔이 떠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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