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몸담았던 대학교 사진반 카페에 들어갔다가 흑백사진을 봤다. 디카로 찍어서 색을 발라낸 사진이 아니라 흑백필름으로 찍어서 현상 인화를 한 후 스캔해서 올린 사진이다. 후배들은 아직도 아날로그식 사진을 하고 있었다.
반가우면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스트푸드에 익숙한 친구들이 품과 비용이 많이 드는 필카 흑백사진을 하다니…
그러나 어떻게 보면 새삼스러울 건 없겠다. 선배들은 이것이 사진의 正道라고 가르쳤을 테고, 배우는 입장에 있는 후배들은 그것을 받아들였고, 그리고 그것이 계속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것뿐일 게다. 그러나 장담컨대 이들 대부분은 디지털 카메라로 갈아 타게 될 것이다.

흑백사진 하면 고등학교 시절이 먼저 떠오른다. 이른바 질풍노도의 시절에 나는 가장 사진을 열심히 했다.
고등학생 나이가 되면 외형적인 몸은 성인에 가까워지지만 인격적으로 덜 성숙해서, 사회나 환경이 요구하는 것과 자신의 생각과의 충돌로 사춘기를 겪기도 한다. 특히 남자들은 혈기왕성한 힘과 마음을 거침없이 행동으로 옮기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춘기를 사진과 함께 보냈다.
요즘은 고등학생을 속칭 ‘고딩’이라고 부르지만, 과거엔 ‘고삐리(고삘이?)’라 불렀다. 요즘 학생들은 은어를 만들 때 웬만해서는 2음절을 넘기려 하지 않는다.
과거 고삐리가 사진을 하려면 필카를 썼지만, 요즘 고딩들은 디카를 쓴다. 고삐리들이 현상액에 들어간 인화지에 입김을 불고 손으로 문지를 때(확대기에서 노광이 부족하여 상이 잘 안 나오는 부분이 있을 때 현상 촉진을 위해 행하던 행동  인화지가 아까워서), 그리고 암실에 처박혀 리스필름을 수백번 복사하여 암실기법사진 하나 만들어낼 때… 고딩들은 ‘뽀샵’에서 클릭 몇 번으로 끝낸다.
고삐리 때는 돈을 모아서 필름을 사고 인화지를 샀지만, 고딩들은 돈을 모아서 화소 수 많은 새 DSLR을 사려고 한다. 그게 또 가능한 시대이기도 하다. 요즘 현상 인화를 모르고 사진을 배우는 고딩들은 축복 받은 세대들이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불우한 세대일 수도 있다. 그 신기한 현상과정을 느끼지 못하니 말이다.
과거에 사진은 장비의 가격은 차치하더라도 인화지와 필름 같은 소모품비도 많이 들어가는 브루조아 취미였다. 그렇지만 많이 걷고 많이 다녀야 하는 노가다성 취미임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다만 요즘은 이동성이 좋아지기는 했다.



내가 사진에 심취했던 고삐리 시절엔 사진이 대중화된 취미생활이 아니었다. 30년 전 카메라 가격과 현재 카메라 가격을 비교하면 그 절대 금액의 반 가격 정도다. 물가는 20배 가량 오른데다, 소득이 적었던 당시 상황을 감안한다면, 카메라는 무척이나 비싼 물건이었다. 당시 내가 살던 한옥집(성북동)값이 500만원대일 때, SLR 카메라인 아사히펜탁스 KM을 23만원을 주고 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카메라는 우리집 재산목록 1호이었다. 그 당시 카메라가 있는 집은 거의 모두 그러했을 것이다.
카메라는 중고라도 높은 가격에 거래됐기 때문에 재산적 가치가 높았는데, 요즘 디카는 화소수 내지 기능이 계속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에 산 지 1~2년만 지나면 고물이 되어 값어치가 급락한다. 카메라가 소모품화된 것이다.
컴퓨터에 메모리나 저장용량 업그레이드 하듯, DSLR 카메라도 화소수만 업그레이드 하는 방법이 있다면 버려지는 카메라가 줄 것으로 생각되는데…카메라 제조회사에서 그렇게 할 리는 없을 듯.
고삐리 시절 사진을 배우려면 사진반 서클에 들어가서 ‘빠따’를 밥 먹듯이 맞으면서 버텨야 했다. 신입빠따에서 시작해서 암실공개 빠따… 사진 열심히 안 찍는다고 빠따, 예의 없다고, 선배들 소화 안 된다고 빠따… 그리고 카메라를 전당포에 잡혀가면서 전시회를 열고… 그렇게까지 하면서 사진을 했던 어린 날 그 열정이 제법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고딩들은 굳이 서클에 들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 좋은 사진 많이 보고 배울 수 있고, 얼마든지 대중에게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고 평가 받을 수 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검색해서 다 알 수 있다. 그리고 필름값, 인화지값 압박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요즘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큰 메리트다.



오랜만에 아날로그식 흑백사진을 보는 바람에 문득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사진은 우연성이 다분히 많이 작용하는 예술이라, 결과가 중요하긴 하지만, 사진을 하는 과정 속에서 배우고 느끼는 것도 사진의 매력이자, 그 깊이를 더 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요즘 인터넷을 둘러보다 보면, 사진이 디지털화 됨에 따라 아마추어 사진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과거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향상되어 있음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오래된 레코드(LP)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을, 원음 재생력이 좋은 CD에선 들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디지털식 사진에서는 아날로그식 사진에 있는 따뜻한 인간냄새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날로그식 삶을 살아왔던 나의 선입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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