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웃음의 힘, 반칠환

웃음의 힘



반칠환



넝쿨장미가 담을 넘고 있다



현행범이다



활짝 웃는다



아무도 잡을 생각 않고 따라 웃는다



왜 꽃의 월담은 죄가 아닌가



[태헌의 한역]


笑之力(소지력)



攀緣薔薇今越牆(반연장미금월장)


身犯惡事破顔愷(신범악사파안개)


人人忘捕皆隨笑(인인망포개수소)


花朶踰垣何非罪(화타유원하비죄)



[주석]


* 笑之力(소지력) : 웃음의 힘.


攀緣薔薇(반연장미) : ‘攀緣’은 (다른 물건을) 잡고 기어오른다는 뜻이고, ‘薔薇’는 장미꽃이다. 역자는 ‘攀緣薔薇’를 넝쿨장미의 뜻으로 한역하였다. / 今(금) : 이제, 지금.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越牆(월장) : 담을 넘다.


身犯惡事(신범악사) : 몸이 나쁜 일을 범하다, 곧 몸이 죄를 범하다. 이 네 글자는 “현행범이다”라는 시구를 역자가 나름대로 풀어서 표현한 것이다. / 破顔愷(파안개) : 웃는 얼굴이 즐겁다, 활짝 웃다.


人人(인인) : 사람들, 사람들마다, 누구나. / 忘捕(망포) : 체포하는 것을 잊다, 잡는 것을 잊다. / 皆(개) : 모두, 다. / 隨笑(수소) : 따라 웃다.


花朶(화타) : 꽃이 핀 가지, 꽃. / 踰垣(유원) : 담을 넘다. ‘越牆’과 같은 뜻이다. / 何非罪(하비죄) : 왜 죄가 아닌가, 어째서 죄가 아닌가?



[한역의 직역]


웃음의 힘



넝쿨장미가 지금 담을 넘고 있다


몸은 죄 범하는데 웃는 얼굴 즐겁다


누구나 체포 잊고 다 따라 웃는다


꽃의 월담은 어째서 죄가 아닌가



[한역 노트]


금전의 힘, 권력의 힘, 지식의 힘, 사랑의 힘, 웃음의 힘…… 심지어 힘의 힘까지 온갖 종류의 힘들이 세상에 넘쳐나도 사랑의 힘과 함께 웃음의 힘만큼 그 힘이 아름다운 것도 별로 없는 듯하다. 이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웃음에 대한 예찬이 하도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웃음의 효능을 의학적으로 규명한 연구 결과를 굳이 들여다보지 않고도 우리는 그 힘의 위대함을 실감하면서 살고 있다. 그리하여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와 같은 이는 “사람은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 “왜 꽃의 월담은 죄가 아닌가”는 말 자체가 묘하여 죄가 된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고, 죄가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설령 죄가 된다는 뜻으로 읽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시인의 역설(逆說)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사람의 월담은 죄가 되는데 꽃의 월담은 왜 죄가 아닐까? 꽃은 월담을 했더라도 일단 훔치는 것이 없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꽃은 자기가 뿌리 내린 집에서 바깥세상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주거침입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가령 주인집 아들이 대문을 통하지 않고 담을 넘어 나왔다고 해서 죄를 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그것이 도둑의 행위처럼 보였더라도 말이다.


꽃이 월담하면서 웃는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기쁨 혹은 즐거움을 준다는 뜻이므로, 사람들이 “따라 웃는다”는 것은 실없는 행동이 아니라 그런 감정의 적극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역자는 이 대목에 이르러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는 과학 용어를 떠올려보았다. 나비의 날개 짓 하나가 지구 반대편에서 폭풍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작은 미소 하나가 세상을 천국으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웃음 하나가 천국도 만들 수 있으련만, 정작 우리는 잘 웃지를 못한다. 흐리기 십상인 하늘 아래서 그 하늘만큼이나 흐린 색깔의 건물에 살거나 일하면서, 흐릿한 미래를 바라며 세월의 잎사귀를 지워가고 있을 뿐이어서, 우리는 웃을 일이 그다지 없다. 그리하여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건강하게 웃는 한 송이의 꽃조차 우리에게는 소중한 존재가 된다. 시인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울밑에 넝쿨장미라도 심어 이름 모를 행인들에게까지 기쁨을 나누어주는 삶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우리가 꽃처럼 예쁜 웃음을 늘 선사하며 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고소(苦笑)와 냉소(冷笑)를 초래하며 살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나의 말과 행동이 천고소단(千古笑端:영원히 남을 웃음거리)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 이것이면 벌써 인격은 그만큼 여문 것이 되지 않겠는가! 코로나와 장마 등으로 웃음을 잃어버린 날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음에, 유쾌한 웃음 한 자락이 맑은 가을바람처럼 간절하게 기다려진다.


행별(行別)로 연을 달리 한 5연 5행의 원시를 역자는 4구의 칠언고시로 한역하였다.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愷(개)’·‘罪(죄)’이다.


2020. 8. 18.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