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지역 감정론
[홍석기 칼럼] 이해할 수 없는 지역감정론
미국 차기 대선 후보 조 바이든(Joseph R, Biden, 77세)은 런닝메이트(Running Mate)로, 인도계 미국인(Indian-American), 카말라 해리슨 상원의원(Senator, Kamala Harris, 55세)을 지명했다. 전 오바마 대통령에 이어 흑인 부통령이 탄생할 거라고 미국은 떠들썩하다.

그리 검지도 않은 여성에게 백인이 아니라고 흑인이라고 하는 듯 하여, 나는 마땅치가 않다. 탈북민이나 미국계 한국인이 우리나라 대통령에 출마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필자는 2019년 2월 14일자, 어느 경제신문에, “파벌 가르는 한국사회, 선진국 벽 못 넘어”란 주제로 “독자의견”을 게재한 바 있다. 만나기만 하면 고향 묻고 나이 따지고, 학벌로 줄을 세우는 게 못마땅했다. 글로벌 경쟁 시대, 200만 명 이상의 외국인들이 한국에 거주하거나 왕래하고 있다.

옛날부터 노론 소론, 동인 서인, 남인 북인, 양반 상놈으로 구분되었다는 인종차별과 지역 감정에 대해서 필자는, 그 역사적 사실이나 배경을 정확히 알지 못해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는 게 아쉽다. 영국이나 미국, 일본이나 러시아 등도 도시와 지역에 따라 또는 흑인과 백인에 대해 인종 차별을 해 왔다는 사실도 최근의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한 폭동으로 어렴풋이 알게 되었으며,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아직도 선거 때마다 큰 이슈로 작용하는 인종문제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듯 하다.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등은 국토가 넓어서 그럴 수 있다고 해도, 한반도 지도를 펼쳐 놓고 지역을 구분하니, 손바닥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작은 나라이다.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수백 년 동안 지역감정으로 들끓고 있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다.

정치인들이야 원래, 자기에 밥그릇 싸움하느라 국민의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표 장사를 하는 사기꾼들”이라는 걸 인정한다고 해도, 국민들 마저 그들의 희롱과 농락에 휘둘리며 부화뇌동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 조선시대나 60년대 자유당시절에는 국민의 민도(民度)가 낮아서 그랬다고 해도, 지금은 국민 대부분이 휴대폰을 갖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지식과 정보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지고, 잘못한 실수는 언제든지 주워담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때마다 또는 어떤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할 때마다, 과학적인 근거보다는 지역적인 친분 또는 친밀감, 오랫동안 연대해 온 의리에 따라 무조건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 과연 21세기를 살아 가는 현대인에게 맞는 논리인지, 정의로움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선거나 투표가 있을 때마다 몰표가 나오고, 지역에 따라 확연한 색깔론으로 정파가 갈리는 게 옳은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찌하여 그 지역은 어떤 주제의 정책이 나오더라도, 무조건 정파나 사람에 따라 찬성 또는 반대로 몰려다니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 정책이나 전략이 아니라 사람과 인맥에 의해 찬반을 결정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정치인들의 당리당략에 따라 주장하는 제안과 의견이 어떠하더라도, 정치적으로 또는 의리와 우정으로 쫓을 게 아니라,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로 판단해 결정하고 따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똑똑해야 하고 지혜로워야 한다. 어느 신문 논설위원이 주장한 “한국의 3류 정치 C급 독재의 국가”에서 3류 국민으로 살고 싶지 않다.

정치가 과학을 넘어서거나 파벌이 도덕을 앞지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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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기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