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도사진 역대 대상 수상작을 잘 정리해놓은 포스트를 올려놓습니다.


퍼온 블로그 주소는 http://photohistory.tistory.com/2569


 


세계보도사진의 가장 큰상은 퓰리처상과 오늘 소개할 세계보도사진(world press photo)상입니다.
전세계의 포토저널리스트들의 노고를 기리는 세계보도사진전은  세계보도사진재단(World Press Photo Foundation)이 매년 한해동안의 최고의 보도사진에게 상을 수여합니다.

사진을 넘어 인류에게  커다란 메세지를 전달하는 한장의 보도사진
1955년부터 2007년까지 대상을 받은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사진을 보는 방법은  굵은 글씨가 순서대로
사진작가,국가,보도매체를 나타내고 두번?줄은 촬영장소와 촬영날짜를 나타냅니다.





1955년


Mogens von Haven, Denmark.


Volk Mølle racecourse, Randers, Denmark, 28 August 1955.

덴마크의 모터싸이클 경기에서 일어난 사고입니다. 선수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선수의 높이든 다리가 사고당시의 충격을 말해주는듯 합니다


1956년




Helmuth Pirath, Germany, Keystone Press.


West Germany, 1956

독일 패망의 결정적인 이유였던 독일과 쏘련의 독소전에서  포로로 끌려갔던 독일군 아버지가 어린 딸과 재회하고 있습니다. 저 아이는 아버지를 첨본것은 아닐까요?
이게 56년도 작품이니 2차대전이 끝난지 10년이 자난 시기네요. 



1957년



Douglas Martin, USA, The Associated Press.


Charlotte, North Carolina, USA, 4 September 1957

저 가운데 있는 흑인 여학생 이름은 도로시 가운츠입니다.  그녀는 흑인 최초로
일반고등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바로 아이젠하워대통령의 인종차별 철폐정책때문에
그녀는 하딩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사진처럼 저런 모욕적인 모습과 돌팔매질을
당합니다. 도로시 가운츠양의 화난 표정과 왼쪽 백인학생의 흘겨보는 표정 뒤로 히히덕거리며  악마의 뿔을 그리는 모습이  그 당시의 모든것을 담아놓은듯 합니다.
세상은 많이 변해서 이젠 첫 흑인대통령이 나올지도 모르게 되었네요.


1958년


Stanislav Tereba, Czechoslovakia, Vecernik Praha.


Prague, Czechoslovakia, September 1958.

프라하 vs 슬라바키아의 경기입니다. 진눈깨비가 흔날리는 악천후속에서도 경기는
진행됩니다. 뒤의 관중들의 모습이 인상깊네요


1959년 수상작 없음


1960년




Yasushi Nagao, Japan, Mainichi Shimbun.


Hibiya Hall, Tokyo, Japan, 12 October 1960.

일본 사회당 당수 이네지로 아사누마를 한 극우파 대학생이 단상에 올라 칼를
휘두르고 있습니다. 지금도 일본은 극우파들이 나라를 운영하고 있지만 너무 우로만
가는 일본의 모습에 불안스럽기만 합니다.



1961년 수상작 없음



1962년



Hector Rondon Lovera, Venezuela, Diario La Republica.


Puerto Cabello naval base, Venezuela, 4 June 1962.

베네주엘라의 해군기지에서 총을 맞은 병사가  신부님에게 매달려 있습니다.
신부님은 총은쏜(총소리가 난)곳을 바라보며 원망어린 시선을 보냅니다.
마치 쓰러지는 예수를 부축하는 피에타의 모습까지 연상시키네요. 군인은 강하지만
그들도 인간입니다. 그들도 죽기전에는 어머니를 찾습니다. 2차대전에서
그 악마같은 독일군들이 죽기전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엄마를 외치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1963년



>Malcolm W. Browne, USA, The Associated Press.


Saigon, South Vietnam, 11 June 1963.

63년 6월 11일 남베트남에서 한 승려가  정부의 종교탄압에 항의 하기 위해 분신을 하고 있습니다.



1964년




Donald McCullin, UK, for The Observer, Quick, Life.


Ghaziveram, Cyprus, April 1964.

그리스와 터키도 종교문제로 심한 분쟁을 일으키는 나라입니다.
지중해의 섬 사이프러스의 그리스계 주민과 터키계 주민사이에 분쟁이 일어났고
남편을 잃은 여인이 울부짖고 있습니다.



1965년



Kyoichi Sawada, Japan, United Press International.


Loc Thuong, Binh Dinh, South Vietnam,

1965년는 미국이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공산주의자들과  아시아의 정글속에서 전쟁을
합니다. 미군의 폭격을 피해 강을 건너는 모정이 잘 나타났네요. 어머니의 표정에서
치가 떨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1966년




Kyoichi Sawada, Japan, United Press International.


Tan Binh, South Vietnam, 24 February 1966.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베트콩의 시신을 묘지로 운반하고 있습니다. 정말 비 인륜적이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싸우는 사람에게 저런식으로 화풀이 하면 안될텐데. 전쟁이
사람을 비인격적으로 만드나 봅니다. 몇일전 이라크주둔 미군병사가 강아지를 절변에
떨어뜨리는 동영상을 봤는데   전쟁이 사람을 저렇게 만드나 봅니다.




1967년




Co Rentmeester, the Netherlands, Life.


South Vietnam, May 1967.

1967년도 역시 베트남전 사진입니다. 탱크안의 병사가 포 조준을 하고 있습니다.
응시하는 눈이 기억에 많이 남게하는 사진입니다.


1968년




Eddie Adams, USA, The Associated Press.


Saigon, South Vietnam, 1 February 1968

이 사진은 베트남전을 종식시키는  반전여론을 미국에서 불러일으킨 사진입니다. 이 사진만 보면
베트콩을 길거리에서 즉결처형하는 베트남장교의 모습이 보입니다. 너무나 잔인스러운 모습이죠.
그런데 이 사진의 뒷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 베트콩청년은 옥상에서 저격총으로 베트남군인을 2명이상을
사살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군이 그 건물을 포위하자 항복하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동료와 부하가 죽은 모습을 베트남장교는 용납을 하지 못했죠. 그래서 즉결처형을 했고
이 사진과 영상은 전세계에 퍼저 나갑니다. 실제로 2차대전?  다른 적군들은 항복이 용이했지만
저격수들은  항복을 잘 안받아주었습니다.  분노하고 화난 병사들에게 즉결처형을 당합니다.




1969년



>Hanns-Jorg Anders, Germany, Stern.


Londonderry, Northern Ireland, May 1969.

영국과 북아일랜드는 종교때문에 잦은 충돌을 일으킵니다. 그 IRA라는 아일랜드해방군
은 영국에 수차례 테러를 가하고 영국군에 의해 보복을 당합니다. 얼마전에 칸느영화제
에서 상을 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영화에서도 소재로 다루어졌죠.  두 나라는 구교(카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와  신교(성공회)를 믿는 영국사이의 전쟁입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IRA가 앞으로 폭력적인 테러를 안하겠다고 하는데 그 약속 잘 지켜주었으면 좋겠네요.영국또한 종교적 탄압 그만해야겠지요


1970년 수상작 없음

1971년




Wolfgang Peter Geller, Germany.


Saarbrucken, West Germany, 29 December 1971

독일 자아르브뤼켄에서 발생한 은행강도 사건입니다.


경찰과 은행 강도 사이의 총격전이벌어졌네요




1972년




(Nick) Ut Cong Huynh, Vietnam, The Associated Press.


Trangbang, South Vietnam, 8 June 1972.

Phan Thi Kim Phuc 라는 9살난 베트남 소녀가  미공군의 네이팜탄 공격에  온몸에 화상을 입고
뛰쳐 나오는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보고 미국인들은 경악을 하게 되었죠. 10년전인가 이 소녀가
자라서 언론에 잠깐 나오던데  이 사진이 없었다면  베트남전쟁은 지금의 이라크전쟁처럼 언제끝날지
모를 수렁에 빠졌을지도 모르겠네요.




1973년


Orlando Lagos, Chile, for The New York Times.


Santiago, Chile, 11 September 1973.

칠레에도 우리와 비슷한 과거가 있습니다.  민주적인 절차로 뽑은 알렌데 대통령이
쿠테타에 의해 대통령궁에 갖히게 됩니다. 그 군사쿠테타에는 세계적인 기업인 네슬레가 지원했다는 소리가 많습니다.  이 알렌데 대통령이 칠레의 어린 아이들이 먹을것이 없어서 굶어죽는것을 너무 가슴아파서 일정나이가 될?까지 아주 싼값에  분유를 공급하기로 했는데 네슬레가 반대를 했습니다.  자기들 이익이 줄어드니까요.  
결국 알렌데대통령이 만들어 갈려고 했던 세상은 탱크와  전투기 폭격에 의해 처참히
무너졌고  철모를 쓰고 경호원들과 함꼐 대통령궁을 빠져 나오다가 저격수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이로써 칠레의 봄은 살아지고 철권통치가 계속 됩니다.


1974년




Ovie Carter, USA, Chicago Tribune.


Kao, Niger, July 1974.

1974년에  나이지리아엔 대 가뭄이 찾아옵니다.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하늘아래서
어린아이가 기근에 시달리다 엄마품에 안겨 있네요.  아프리카는 하늘도 도와주지
않지만  하늘이 도와줘도 썩어빠진 정부관리와 야만스런 착취자들이 많아서
쉽게 기근에서 벗어나기 힘들듯 합니다. 요즘 곡물값도 국제적으로 많이 올라서 우리도
아우성을 치지만  기근이 대물림이 된느 아프리카 사람들에겐 생명의 위협까지
받을것 같습니다.


1975년



Stanley Forman, USA, The Boston Herald.


Boston, USA, 22 July 1975.

보스턴에서 있던 화재로 두 모녀가 소방사다리가 무너지는 바람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1976년



Francoise Demulder, France, Gamma.


Beirut, Lebanon, January 1976. Palestinian

레바논 베이루트도 분쟁지역이었지요. 뭐 최근에도 분쟁이 일었났었구요.
베이루트에서 히잡을 쓴 여인이 총든 사람에게 뭔가 하소연을 하는 모습입니다.




1977년



Leslie Hammond, South Africa, The Argus.


Modderdam, Western Cape, South Africa, August 1977.

남아프리카 서부 모데르담에서  집을 철거하는데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어딜가나 철거민들은 고달프네요.



1978년




Sadayuki Mikami, Japan, The Associated Press.


Tokyo, Japan, 26 March 1978.

지금은 나리타공항이 일본의 대표공항이지만 그 건설과정은 순탄치 않았네요.


나리타공항을 짓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의해 한사람이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1979년




David Burnett, USA, Contact Press Images.


Sa Keo refugee camp, Thailand, November 1979.

태국의 피난민 수용소에서 배급을 기다리는 캄보디아 여인이 아이를 보고 있습니다.





1980년



Mike Wells, United Kingdom.


Karamoja district, Uganda, April 1980.

선교사와 우간다의 굶주린 아이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으로 인해 아프리카의 기근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죠. 80년대 초반에 미국과 영국 아티스트들이 모여서   We are world를 부르던 것이 생각나네요
사진작가 마크 웰스는 이 사진을 사진전에 출품 안한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남의 고통을 팔아서
상을 안받겠다고 했는데  출품을 했네요. 그리고 대상까지 받았습니다.




1981년


Manuel Perez Barriopedro, Spain, Agencia EFE.


Madrid, Spain, 23 February 1981.

스페인도 독재정치가 있었던 나라입니다. 쿠테타를 일으킨 군인과 경찰이 마드리드 의사당을 점령했습니다





1982년



Robin Moyer, USA, Black Star for Time.


Beirut, Lebanon, 18 September 1982.

우리나라야 종교전쟁이 없지만 서양의 역사 특히 중동은 종교가 전쟁의 큰 원인이 됩니다.
지금까지 죽은 사람들중 자신의 종교때문에 죽임을 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위의 사진은 레바논의 기독교우파와 이스라엘군의 총에 의해 사망한 팔레스타인계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1983년




Mustafa Bozdemir, Turkey, Hurriyet Gazetesi.


Koyunoren, Eastern Turkey, 30 October

터키동부의 Koyunoren라는 곳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한꺼번에 다섯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통곡을 하고 있습니다.








1984년




Pablo Bartholomew, India, Gamma.


Bhopal, India, December 1984.

1984년에는 지금도 회자되는 인도 보팔시에서 화학공장의 폭발로 독가스가 유출 되었습니다.
죽은 아이의 검은 눈이 세상을 원망하는듯 합니다. 


산업화에 희생되는 생명들  환경문제는 인류의 문제를 넘어 이제 지구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1985년



Frank Fournier, France, Contact Press Images.


Armero, Colombia, 16 November 1985.

사진작가들은 피사체앞에서 갈등을 할때가 많습니다. 사진을 찍느냐 아니면 그 시간에 소녀를
구하느냐.  이 사진은 콜롬비아의 화산폭발로 건물이 무너졌구 그 건물더미속에서 12살 먹은
소녀가 구조를 바라는 눈빛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60시간이 지나도 구조는 되지 않고
소녀는 죽게됩니다. 이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에 대한 원망이 전세계적으로 많았지요.
하지만 사진작가도 최선을 다했구 소녀가 의식을 잃지 않게 곁에서 말을 계속 걸었지만
그 노력은 꺼져버렸습니다.  보도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들많이 가지는 큰 딜레마이자  큰 공격을 받는
화두이기도 합니다. 사진한잔에 모든 진실이 담기지 않습니다. 대안이 있다면 연속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연속촬영된 사진보단 그냥 한장의 사진만을 더 즐겨 보고 그런것에 익숙합니다.




1986년



Alon Reininger, USA/Israel, Contact Press Images.


San Francisco, USA, September 1986. Ken

80년대 중반에 추적60분같은 프로그램에서 인류대재앙이 온다는듯이 에이즈를 다루는것을 많이
봤습니다. 그 어떤 치료약도 없이 죽음을 기다리던 AIDS환자.  에이즈는 동성애자가 많이 걸린다고
하여 기독교단체들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성애자만이 많이 걸리진
않습니다.   에이즈에 걸린 환자가 병원에서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고 있습니다.



1987년




Anthony Suau, USA, Black Star.


Kuro, South Korea, 18 December 1987.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죠.  한국이네요.  87년은 제가 중학교 3학년때인데  그때 노태우대통령이
당선되는 선거가 있었습니다.많은 대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투표용지가 있는 구로구청을 점거
했습니다. 아직도 그 살풍경이 생각나네요. 


87년 서울의 하늘은 희뿌연 최루가스가 떠돌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시위대에 참가했다가 체포되는 대학생 아들을 둔 어머니의 절규입니다.
20년이 지났지만 이런 풍경은 빈도수만 적어졌지 아직도 우리주변에 있습니다.  언론들은 피터지는 과격하고 선정적인 사진만 담기 바쁘고 왜 그들이 저런 행동을 하는지 잘 담지 않습니다. 





1988년




David Turnley, USA, Black Star/Detroit Free Press.


Leninakan, USSR, December 1988.

구소련지역이었던 아제르바이젠의 큰 지진에  17살된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절규입니다





1989년



Charlie Cole, USA, Newsweek.


Beijing, China, 4 June 1989.

소련의 붕괴가 가속화 되는 과정에서 중국에도 봄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봉기는 탱크앞에
무참히 쓰러집니다.  천안문앞은 피바다가 되고  그 탱크를 막는 용감한 시민을  호텔방에서 사진작가가 찍습니다.  덧글을 보니 이분은 망명을 해서 살아계시다고 합니다





1990년




Georges Merillon, France, Gamma.


Nogovac, Kosovo, Yugoslavia, 28 January

코소보가 얼마전에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이 사진은 유고군이 코소보에 공격을 가했구 그 공격으로
가족의 죽음을 본 코소보 주민들이 분노와 울음을 터트리네요.  이 사진도 종교가 문제네요




1991년




David Turnley, USA, Black Star/Detroit Free Press.


Iraq, February 1991.

군인도 사람입니다. 세계 최강의 군인인 미군이 오발사고로 죽은 동료병사의 주검을 보고
펑펑 웁니다.  91년도 이라크전장에서의 사진입니다.




1992년




James Nachtwey, USA, Magnum Photos, USA for Liberation, France.


Bardera, Somalia, November 1992

소말리아의 기근으로 죽은 아이의 주검을 하얀 천에 싸서 묘지로 옮기고 있습니다.
너무나 작은 아이이지만 그 아이들 드는 어머니는 힘겨워 보입니다. 





1993년



Larry Towell, Canada, Magnum Photos.


Gaza City, Palestinian Territories, March 1993

얼마전에 다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피의 보복이 시작되었습니다.  왜 이리 종교싸움이 많을까요. 문제는 어느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자기종교를 남에게 강요하는 극진주의자들이 문제인듯 합니다.
그들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수장으로 있는한  예루살렘의 평화는 소원하기만 합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아이들이 장난감총을 들고 놀고 있습니다



1994년




James Nachtwey, USA, Magnum Photos for Time.


Rwanda, June 1994.

클린턴대통령의 자서전에 보면 자신의 재임기간중에 가장 잘못한 일로 부끄러운 과오로
이 르완다 인종청소극을 막지 못한것을 적고 있더군요.  르완다의 후트족의 극우민병대에 의해
잔인하게 고문을 받은 투치족의 청년입니다. 두 종족간의 전쟁은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자세한 내용은 호텔 르완다에 담겨 있습니다.



1995년



Lucian Perkins, USA, The Washington Post.


Chechnya, May 1995.

체첸도 화약고죠. 러시아 원유수송관이 지나가고 있는 체첸 그들은 줄기차게 독립을 요구하지만
다른 나라의 독립은 용인하면서도  체첸의 거점적인 그리고 원유때문에 독립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체첸전때문에 피난을 가는 피난민의 차량입니다





1996년




Francesco Zizola, Italy, Agenzia Contrasto.


Kuito, Angola, 1996.

이 아이들은 앙골라 내전으로 인해 지뢰피해를 받은 아이들입니다. 오른쪽의 아이는 다리가
없네요. 인구 150명당 1명이 대인지뢰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지뢰도 문제지만 미국이 공중에서
광범위한 지역을 공격할려고 만든 확산탄도 문제더군요.  확산탄은 공중에서 작은 자폭탄으로
흩어지는데 수백개의 자폭탄이 다 터지면 좋지만 몇개는 항상 불발탄으로 떨어집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폭탄을 장남감인줄 알고 가지고 놀다가 많이 다치고 사망했습니다.


1997년




Hocine, Algeria, Agence France-Presse.


Algiers, Algeria, 23 September 1997.

알제리의 대학살 사건이 있었구 그 학살된 사람의 가족이 오열하고 있습니다




1998년




Dayna Smith, USA, The Washington Post.


Izbica, Kosovo, Yugoslavia, 6 November 1998.

코소보 해방군을 남편으로둔 아내가 남편의 장례식에서 오열하고 있습니다.






1999년



Claus Bjørn Larsen, Denmark, Berlingske Tidende.


Kukes, Albania, April 1999.

세기말을 앞둔 지구촌이지만  코소보전쟁은 멈추질 않았습니다. 이 코소보내전도 종교전쟁입니다.
이슬람을 믿는 코소보주민들과  카톨릭쪽인 세르비아 정교를 믿는 세르비아인들과의 전쟁입니다.
클린턴의 적극적인 개입과 나토군의 개입으로 인정청소전쟁은 멈추고 평화유지군이 들어갑니다.




2000년



Lara Jo Regan, USA, for Life.


Texas, USA, 2000.

미국에 불법이민온 멕시코 가족입니다.  작가는 이들의 마음이 열릴때까지 이 허름한 집에서
계속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마음이 열어지고 사진작가를 신뢰하는 감정이 생겼을때
이런 사진을 찍습니다.  우린 ?로 가난한 사람들을 측은지심에서 카메라에 담고 있을?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진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지 그 가난한 사람을 위한 사진은 아닙니다.
그래서 어느사진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찍을때는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 합니다



2001년



Erik Refner, Denmark, for Berlingske Tidende.


Jalozai refugee camp, Pakistan, juni 2001

파키스탄의 난민캠프에서 탈수증으로 숨을 거둔 아이의 사진입니다. 아이의 표정이 마치 잠을 자는듯
합니다. 힘겨운 삶을 뒤로하고 천국으로 간듯하네요.  아이의 표정이 너무나 역설적으로 보이네요





2002년



Eric Grigorian, Armenia/USA, Polaris Images.


Qazvin Province, Iran, 23 June 2002.

이란은 전쟁도 많은 나라지만 지진도 많은 나라입니다. 1991부터 지금까지 1천회의 크고작은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영화 내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로 유명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감독은  그의 영화에서 지진으로 폐허가 된 이란의 모습을 담기도 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지진으로 아버지를 잃고 아버지의 단하나의 유산이자 유품인 바지를 안고서


슬픔에 잠긴 소년의 모습입니다. 




2003년




Jean-Marc Bouju, France, The Associated Press.


An Najaf, Iraq, 31 March 2003. Iraqi man

개인적으론 이 사진이 가장 가슴에 아프네요.  이라크전쟁당시 나자프시에서 포로가된
이라크저항세력인데  4살난 아들이 겁에 질려 울자 달래주고 있습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한장면 같네요. 머리에 씌워진 검정봉투가  가슴을 울리게 합니다.


2004년



>Arko Datta, India, Reuters, 2004.


Cuddalore, India, Tamil Nadu, 28 December 2004

2004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강력한 쓰나미가 인도네시아와 인도를 강타햇습니다.
쓰나미에 죽은 친지들을 보면서 한 여인이 오열하고 있습니다.  농담이라도 쓰나미라는 단어는
시기적절하게 썼으면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쓰나미라고 하던데  저런 희생자들을 위한다면
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2005년



Finbarr O''''Reilly, Canada, Reuters.


Mother and child at emergency feeding center, Tahoua, Niger, 1 August

아프리카 중서부에 있는 니제르라는 나라의 한 비상급식소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가 엄마의 입을
막고 있습니다.  아기의 손이 애처로워 보이네요


2006년



Spencer Platt, USA, Getty Images.


Young Lebanese drive through devastated neighborhood of South Beirut, 15 August

이게 무슨 사진인것 같으세요? 
이 사진은 레바논의 베이루트의 외곽지역이  이스라엘의 포격과 폭격에 의해 잿더미가 된 마을입니다. 하지만 레바논의 부유층의 자제들인듯한 한무리의 절은이들이  냄새가 난다는듯 보고 있네요.
어딜가나 돈많은 부유층 자제들은 철이 없나봅니다.   옆에 있었으면 계란이라도 던지고 싶어지네요




2007년




Tim Hetherington, UK for Vanity Fair.


American soldier resting at bunker, Korengal Valley, Afghanistan, 16 September

이 사진은 얼마전 소개한 사진이네요.  아프카니스탄의 Korengal계곡 전투에서 한 미군병사가
전쟁에 넌더리가 난다는듯한 표정으로 쉬고 있습니다.  미국은 아프카니스탄도 그렇고  이라크도
그렇고 평화를 목적으로 그곳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총평 :  사진들을 옮기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지난 50년간의 지구촌에서는 수많은 분쟁과 학살 자연재해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분쟁의 대부분은 종교전쟁이 많군요. 특히 지난 50년은 이슬람과 기독교(천주교,개신교를 다 포함한)의 분쟁의 역사였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슬람과 기독교는 믿는 신이 똑같습니다. 다만 자기들의 교본인(코란, 성경)이 다를뿐이죠.

만약 지구라는곳에 종교라는것이 없었다면 아니  종교가 하나였다면  이렇게 까지 서로를 미워하면서
싸웠을까요?  그리고 20년전의 우리나라 구로구청의 시위모습은  아직도 변하지 않은듯해 보입니다.
앞으로 시위를 하면 즉결심판에 전기총까지 쏜다고 하는데  그런것보단 왜 그들이 시위를 하는지
세상이 많이 듣고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저 또한 시위하는것 좋아하지 않고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시위대를 손가락질 했지만 생각해보니 그들이 뭘 주장하는지 제대로 전해주는 언론이 거의 없다는것과 내가 찾아서 볼려고 하는 노력이 없었음을 반성합니다.


사진및 자료출처 : http://www.worldpressphoto.org/index.php?option=com_photogallery&task=blogsection&id=15&Itemid=115&bandwidth=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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