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밤기차, 안상학

밤기차



안상학



칠흑 같은 밤 그대에게 가는 길


이마에 불 밝히고 달리는 것은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멀리서 기다리는 너에게


쓸쓸하지 말라고


쓸쓸하지 말라고


내 사랑 별 빛으로 먼저 보내는 것이다



[태헌의 한역]


夜間列車(야간열차)


漆黑夜中向君路(칠흑야중향군로)


額上架燈力飛馳(액상가등력비치)


此決非是路不熟(차결비시로불숙)


君在遠處待人兒(군재원처대인아)


唯願吾君不蕭索(유원오군불소삭)


先送愛心以星煇(선송애심이성휘)



[주석]


* 夜間列車(야간열차) : 밤기차, 야간열차.


漆黑夜中(칠흑야중) : 칠흑같이 어두운 밤중에. / 向君路(향군로) : 그대에게 가는 길.


額上(액상) : 이마 위. / 架燈(가등) : 등을 달다. / 力飛馳(역비치) : 힘껏 나는 듯이 달리다.


此(차) : 이, 이것. / 決(결) : 결코. / 非是(비시) : ~이 아니다. / 路不熟(노불숙) : 길이 익숙하지 않다, 길에 익숙하지 않다.


君在(군재) : 그대가 ~에 있다. / 遠處(원처) : 먼 곳. / 待人兒(대인아) : 나를 기다리다. ‘人兒’는 친애하는 사람에 대한 애칭으로 흔히 애인(愛人)에 대하여 쓴다.


唯(유) : 오직, 그저. / 願(원) : ~을 원하다, ~을 바라다. / 吾君(오군) : 그대. / 不蕭索(불소삭) : 쓸쓸하지 않다.


先(선) : 먼저. / 送(송) : ~을 보내다. / 愛心(애심) : 사랑하는 마음. / 以星煇(이성휘) : 별빛으로.



[직역]


밤기차



칠흑 같은 밤에 그대 향해 가는 길


이마 위에 등 달고 힘껏 달리나니


이는 결코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대 멀리서 나를 기다리는 때문


그저 그대 쓸쓸하지 말길 바래


사랑의 맘 먼저 별빛으로 보내는 것



[한역 노트]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여행을 할 때마다 늘 3등 열차를 이용하였는데, 그의 조수가 이상히 여겨 그 이유를 물어보자, 친구를 사귀기가 쉽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적어도 스마트폰이라는 문명의 이기(利器)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면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친구처럼 얘기를 나누는 일이 흔했지만, 그 시절에도 침대칸이 없는 야간열차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였다. 열차의 둔중한 소음 속에서 좌석에 기댄 채 불편한 잠을 자는, 아니 자야만 하는 사람들이 많아 지인과의 대화조차 죄스러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위의 시는 침묵이 미덕으로 간주되는 야간열차에 몸을 실은 시인이, 열차를 의인화시켜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달려가는 심사를 노래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일만큼 신명나고 설레는 것이 또 있을까? 이 시에서 핵심 소재(素材)로 다루어진 ‘불’은 바로 그러한 시인의 밝은 심사를 대변하는 시어(詩語)이기도 하다.


열차가 그런 ‘불’을 달고 그리움의 행선지를 향해 나는 듯이 달려가고 있어도, 기다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먼 길은 필연적으로 긴 기다림을 불러왔을 것이다. 긴 기다림은 그 기다리는 사람의 빈자리 때문에 때로 고통에 가까운 쓸쓸함을 수반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너’가 쓸쓸하지 않기를 바라서 사랑의 마음을 먼저 별빛으로 보낸다고 하였다. 사랑한다는 말 천 마디보다 더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사랑의 표현이다. 짐작컨대 이 시의 최초의 독자였을 ‘너’는 이 시를 읽으면서 얼마나 행복해 하며 미소를 지었을까? 사랑 받는 이의 미소만큼 아름다운 미소는 또 없을 듯하다.


연 구분 없이 7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역자는 6구의 칠언고시로 재구성하였다. 한역하는 과정에서 원시에는 없는 시어를 더러 보태기도 하였으며, 원시의 표현과는 약간 달리 하기도 하였다. 짝수 구 끝에 압운한 이 시의 압운자는 ‘馳(치)’·‘兒(아)’·‘煇(휘)’이다.


2020. 7. 28.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