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사동 주점에서 옛 친구와 저녁을 먹다가 그 친구로부터 성철 스님의 휘호를 받고 세 가지 생각에 잠겼다. 

  먼저 그 휘호의 내용이 “너 자신을 속이지 마라”(不欺自心)로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속여 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보통사람이 남을 속일 때는 자기의 행동과 말이 어긋남을 스스로 알 수 있어 자신을 제어하려 든다. 그러나 허황된 생각이나 그릇된 신념에 차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속이는 일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도 불기자심은 큰 스님의 말씀을 모은 “자신을 바로 봅시다.”를 한마디로 축약한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다음 그렇게 귀한 휘호를 선뜻 나에게 주다니 보통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한 때 잘나갔던 그 친구의 지금 형편으로 보아 그 값진 작품을 나에게 주지 말고 팔아서 용돈으로 써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휘호가 진품이 아니고 복사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스쳐갔다. 선량한 친구의 후의(厚意)를 모독하는 못난 나는 그 말씀을 눈 앞에 두고 나 자신을 속이려 들지 않는가? 얼른 반성하는 마음으로 두루마리 족자로 표구해 뒀다가 가끔 펴보고 교훈으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하여간 스님의 참 뜻이 이 미련한 자에게도 뻗혔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낀 바로는 선진사회의 특징 중의 하나는 공공 인물의 거짓말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지도자의 경우, 거짓말의 내용보다 먼저 거짓말 자체를 금기로 여긴다. 예컨대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을 부끄럽게 하였지만, 그 처리 절차와 결과에서는 진정한 미국의 힘을 보여주었다.

  반대로 후진사회에서는 고관대작이 설사 거짓말을 했더라도, 으레 그러려니 하면서 이것저것 사정이 어려운데 시간이 없다며, 흐지부지 하다가 그냥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큰일 하는데 조그만 잘못은 덮어두어야 한다며... 

  그러나 생각해보자.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거짓말일수록 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그 높은 책임만큼 커지게 마련이다. 가장의 거짓말은 한 가정을 망치고, 조직 책임자의 거짓말은 조직을 흔들리게 하고, 고위 공직자의 거짓말은 나라를 멍들게 한다. 

  # 누구나 알다시피 조선은 임진왜란 2년 전에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하였다. 서인인 정사 황윤길은 일본이 많은 병선을 만드는 것으로 보아 조선 침략을 준비하는 것이 틀림 없다고 보고하였다. 반대로 동인인 부사 김성일은, 무려 1년간 일본의 정세를 갖가지로 살피고도, 풍신수길이 조선 침략 야욕도, 능력도 없는 인물이라고 거짓 보고하였다.  
  그래서 전쟁 준비를 하려다만 조선은 무방비 상태로 백성들이 마구잡이로 유린당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라보다는 파당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그는 임란 이후에도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 6·25 동란 직전, 국토방위에 하등의 문제가 없고 "만약 북괴가 남침하면 단박에 끝내주겠다"고 허황된 말을 하다가 막상 전쟁이 터지자 고위층부터 피했다. 또 서울을 고수하겠다고 호언장담하다 높은 사람들 먼저 도망친 뒤 느닷없이 한강다리를 폭파하여 죄 없는 생명들이  부지기수로 파편에 맞아 죽고, 물에 빠져 죽었다. 찌그러진 철탑꼭대기에, 부서진 난간에 새까맣게  매달려 한강을 건너려는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이 라이프에 실려 전세계에 구경거리를 제공하였다. 이듬해에는 이 사진이 플리쳐 상을 수상하였다.

  # 경제사회에서 거짓말은 잘못된 신호를 시장에 보내 불특정 다수인에게 큰 폐해를 끼치는 것은 물론 비효율적 자원배분의 원인이 된다. 예를 들어 분식회계는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여 사람들의 투자판단을 그르친다. 이는 멋모르는 투자자의 손실을 불러오고 비정상 기업, 부실기업으로 자금을 흐르게 한다. 거기에 시장을 불신하게 하는 부작용 또한 시장경제체제에 무시 못 할 해악이 된다.  

  거짓말은 누가 하는가?  “선한 사람은 마음속에 쌓인 선으로 선한 말을 하고, 악한 사람은 마음속에 쌓인 악으로 악한 말을 한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기 마련이다. (누가복음 6장 4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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