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지만 정말 걱정스러운 일의 하나는 사회적 불안이나 갈등을 누그러트리는 허리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기관의 최근 자료에도 사회의 버팀목인 중산층이 엷어져 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통계적으로 ‘중산층(the middle class)’은 소득을 기준으로 중위수의 사람들을 가리키지만, 각 나라의 사회 문화 수준에 따라 개념의 차이가 있다. 예컨대, 프랑스에서는 하모니카라도 악기를 연주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요리를 만들어 즐기는 사람들을 중산층으로 여긴다고 한다.

  어느 사회이건 버팀목이 되는 중산층이 되기 위하여는 경제적 완충능력과 사회적 책임감 두 가지를 갖추워야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 먼저, 어떤 충격을 받고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완충능력이다. 
  이 세상 살아가다 뜻하지 않게 넘어지더라도, 일어나 툴툴 털고 제 길을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중산층이다. 중산층이라면 글자 그대로 허리가 강하여 웬만한 타격이 가해져도 버틸 수 있어야 한다. 갑자기 실직을 당하거나 판단을 잘못하여 손해보는 일이 있더라도 휘청거리지 않고 새 길을 개척할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많은 재물과 높은 지위보다는 근검절약과 자기관리에 충실한 이들이 오히려 중산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입장 내지 소득 수준에 맞는 합리적 경제행위와 미래를 대비하는 위험관리 능력이 바로 중산층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재물이 넉넉하더라도 낭비벽이 있고, 남의 빚보증을 서는 사람도 그렇지만 반대로 지나치게 인색한 사람도 언제 어디서 불의의 충격을 받을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다 높은 자리에 올랐다 하더라도 그 지위를 남용하는 사람 또한 언젠가는 낭떠러지로 떨어질 위험이 커서 중산층이라고 정의하기 어렵다.

  # 다음, 사회적 책임감 내지 자부심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 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개인의 특출한 혜안과 노력도 사회의 발전이 뒷받침되어야 빛나는 일이 될 수 있다. 쉬운 예로 으뜸가게 맛있는 호떡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돈이 없어 사먹지 못한다면 다 소요없는 일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어떤 누구도 사회발전의 토대위에서 성장하는 것이지 독불장군이 되어 남다른 부와 지위를 누리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주변 사람들이 무슨 고통을 당하는지, 사회가 어떻게 일그러지든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면서 외면한다면 결국 자신이 쌓아올린 공든 탑의 가치도 희미해지고 무너져 내릴 것이다.

  사회적 동물이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이룩한 부와 지위는 비가와도 걱정, 비가 안 와도 걱정되는 모래밭 강과 같다. 모래밭은 비가 조금만 와도 금방 범람하다가도, 비가 그치면 곧바로 메마르게 된다. 정당성 없는 지위와 부는 그 자체로도 근심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돌이키지 못할 재앙으로 돌변하는 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수 없이 반복된 역사의 교훈이다.

  사회적 책임이란 무엇인가? 우리들 불완전한 인간에게 독야청청하고 거창한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먼저 무질서, 부패, 탈세 같은 것을 예방하여 사적이익 추구가 공공의 손실로 연결되지 않도록 하는 소극적 일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배만 부르면 그만인 동물의 세계와 달리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추구하고 지켜야 할 다른 무엇인가 있다. 중산층이 간직하여야 할 그 자부심 같은 것을 뿌리친다면, 「배부른 돼지」나 「풀잎 위에 올라간 메뚜기」가 거들먹거리는 짓거리와 다를 바 없다.

  네루(J. Neru)는 그의 딸에게 쓴 편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굶주림 위에 호화생활을 하는 부르봉 왕조의 무책임하고 타락한 귀족들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부귀의 껍질을 한 겹 벗겨내면 한 번도 씻은 적이 없어 먼지와 때로 범벅이 된 몸과, 그 몸에 걸친 가발과 레이스 장식과 사치스러운 의상의 거짓 세계일뿐이다.”

  허리가 없는 상류사회와 하류계층의 이원화 구조가 부르봉 왕조를 송두리째 흔들리게 한 원인이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귀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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