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와 나귀


 

권영상


 

해 지기 전에


한 번 더 만나 줄래?


하루살이가 나귀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저녁은 안 돼.


내일도 산책 있어.


모레, 모레쯤 어떠니?


 

그 말에 하루살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섭니다.


 

넌 너무도 나를 모르는구나.


 

[태헌의 한역]


蜉蝣與驢子(부유여려자)


 

予復欲逢君(여부욕봉군)


暮前能不能(모전능불능)


蜉蝣問驢子(부유문려자)


驢子卽答應(여자즉답응)


今夕固不可(금석고불가)


明日有逍遙(명일유소요)


明後始有隙(명후시유극)


君意正何如(군의정하여)


蜉蝣含淚轉身曰(부유함루전신왈)


爾汝全然不知予(이여전연부지여)


 

[주석]


* 蜉蝣(부유) : 하루살이. / 與(여) : 연사(連詞). ~와, ~과 / 驢子(여자) : 나귀.


予(여) : 나. / 復(부) : 다시. / 欲(욕) : ~을 하고자 하다. ~을 하고 싶다. / 逢君(봉군) : 그대를 만나다, 너를 만나다.


暮前(모전) : 저물기 전, 해 지기 전. / 能不能(능불능) : ~을 할 수 있나 없나?, ~이 될까 안 될까? 의문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問(문) : ~을 묻다, ~에게 묻다.


卽(즉) : 즉시, 곧바로. / 答應(답응) : 응답하다, 대답하다.


今夕(금석) : 오늘 저녁. / 固(고) : 진실로, 정말로. 한역(漢譯)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不可(불가) : 불가하다, 안 된다.


明日(명일) : 내일. / 有逍遙(유소요) : 산보(散步)가 있다.


明後(명후) : 모레. 명후일(明後日)을 줄여 사용한 말이다. / 始(시) : 비로소. 아래의 ‘有隙’과 함께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有隙(유극) : 틈이 있다, 짬이 있다.


君意(군의) : 그대의 생각, 너의 생각. 아래의 ‘正’과 함께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正(정) : 정히, 바야흐로, 막. / 何如(하여) : 어떠냐?, 어떠한가?


含淚(함루) : 눈물을 머금다, 눈물을 글썽이다. / 轉身(전신) : 몸을 돌리다, 돌아서다. / 曰(왈) : ~라고 말하다.


爾汝(이여) : 너. / 全然(전연) : 너무도, 도무지, 전혀. / 不知予(부지여) : 나를 알지 못하다.


 

[직역]


하루살이와 나귀


 

“내가 다시 너를 만나고 싶어.


해 지기 전에 될까?”


하루살이가 나귀에게 묻자


나귀가 바로 대답합니다.


“오늘 저녁은 정말 안 돼.


내일은 산책이 있어.


모레 비로소 틈이 있는데


네 생각은 어떠니?”


하루살이가 눈물 머금고 돌아서며 말합니다.


“너는 나를 너무도 모르는구나.”


 

[한역 노트]


역자가 이솝 우화나 안데르센 동화, ≪걸리버 여행기≫ 등이 일종의 풍자 문학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20대 이후의 일인 듯하다. 언제부턴가 역자는 우화나 동화는 물론 동시(童詩)에도 풍자성이 적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 이를 아이들의 전유물로만 보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역자로서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역자는 위와 같은 ‘동화적’인 ‘동시’를 감상하면서 주인공들이 왜 하필이면 하루살이와 나귀일까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시는 일차적으로 극소(極小)의 존재인 하루살이와 극대(極大)의 존재인 나귀가 어느 순간에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준다. 대개 끼리끼리 모여 어울리기 마련인 생명계의 특성에 비추어 보자면, 극과 극이 아무리 통한다 해도 ‘극소’와 ‘극대’가 친구가 된다는 것은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이렇게 설정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루살이는 자기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친구가 된 나귀에게 “한 번 더 만나 줄래?”라고 하였을 것이다. 설령 하루살이가 하루밖에 못산다는 것을 나귀가 깜빡했다거나 전혀 몰랐다 하더라도, 둘이 사귄 당일에 또 다시 보자고 했다면 나귀 입장에서는 “왜?”, “무슨 일인데?”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야 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나귀는 정작 자기의 스케줄을 얘기한 뒤에야 친구의 사정이 어떤지를 물었다. 역자가 보기에 이것은 친구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이 시는 결국 ‘극대’가 오히려 ‘극소’의 심사를 헤아리지 못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덩치가 크다고 마음까지 넓은 것은 아니라는 뜻을 강조한 셈이다.


역자는 이 동시 역시 일종의 풍자시로 파악하여, 하루살이를 미약한 존재인 민초(民草)로 보고, 나귀를 유력한 존재인 위정자(爲政者)로 본다. 나귀가 얘기한 ‘모레’의 만남은 어쩌면 민초들에게는 너무나도 요원한 미래의 일이다. 하루하루가 살기에 바빠 거의 내일이 없는 거나 진배없는 민초들에게, 언제일지도 모르는 미래의 약속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하여 하루살이는 나귀에게 “넌 너무도 나를 모르는구나!”라는 말을 던지며 돌아서게 되었던 것이다. 위정자가 민초를 헤아려주지 못하니 민초가 위정자에게서 등을 돌린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쯤에서 역자는 나귀가 약속한 ‘산보’가 수평적 관계와의 일인가, 아니면 수직적 관계와의 일인가가 궁금해진다. 수평적 관계라면 또 다른 위정자나 상당한 유력자(有力者)와의 약속이겠지만, 수직적 관계라면 나귀 위에 있는 존재, 곧 위정자를 부리는 실세(實勢)와의 약속일 공산이 크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나귀의 대답은 ‘산보’라는 선약을 위하여, 목숨이 경각에 달린 ‘하루살이’의 간절한 애원 정도는 뒤로 미룰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 된다. ‘나귀’가 설혹 본인은 몰랐다고 강변하더라도 말이다. 그리하여 ‘모레’라는 말이 그저 허망하게만 들린다. 하루살이에게는 내일도 없지만 모레는 더더욱 없다.


4연 10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역자는 오언 8구와 칠언 2구로 구성된 10구의 고시로 한역하였다. 각 짝수 구에 압운하였는데 제6구에서 한 번 운을 바꾸었다. 이 시의 압운자는 ‘能(능)’·‘應(응)’, ‘遙(요)’·‘如(여)’·‘予(여)’이다.


2020. 7. 7.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