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6월 29일, 편법의 수치를 드러낸 부끄러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501명의 생명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입니다. 이미 건물의 구조적 결함이 있었고, 사고 당일 눈에 띄는 붕괴조짐이 감지됐는데도 직원들과 쇼핑객을 대피시키지 않은 ‘인재(人災)’였습니다. 처참한 잔해 속의 구조장면을 TV로 보며 한 생명이라도 더 구조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건 저 뿐만이 아닐 겁니다. 기적같이, 열흘이 넘도록 생명의 끈을 붙잡고 구조된 3명의 생존자들은 영웅으로 보였습니다.



 사고 후, 생존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인터뷰가 이어졌습니다. 깜깜한 어둠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온 그들의 많은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말’이 하고 싶었다는 한 생존자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습니다. 잔해 속에서 열흘 넘게 견뎌야 했던 건 두려움과 배고픔만이 아니었던 겁니다. ‘말’이 뭐 길래.



 인간은 끊임없이 말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말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전달 받으며, 말이 통하는 사람과 친해지고, 말로 신뢰를 쌓아갑니다. 말 많은 사람은 비호감으로 찍히지만, 말 잘하는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때론 수많은 말이 오고 가는 가운데 씻기 어려운 상처를 주고받으며 말의 수위를 넘습니다. 분명, 말은 소통의 큰 역할을 하지만, 자신과 상대의 인격을 깎아 내리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본전도 못 찾는 말보다, 침묵을 택하는 게 나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수도사에게 한 여인이 찾아와 “남편과의 다툼 때문에 살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수도사는 물이 담긴 병을 하나 주면서 “이 물은 신비로운 물입니다. 남편과 다투기 전에 이 물 한 모금을 입에 물고 삼키지 마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여인은 남편과 다툼이 일어날 때 마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자 가정이 조용해지고 화목해졌습니다. 여인이 수도사를 찾아가 정말 신기한 물이라고 감탄하자 수도사가 말했습니다. “그 물은 평범한 물입니다. 다만 침묵이 신비로울 뿐입니다.”



 1914년 파나마 운하가 건설되기 전, 건설을 맡은 총책임자는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팠습니다. 지리적으로 불리한 여건과 악천후를 이겨야 하는 한편 “운하는 완공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여론과 맞서야 했습니다. 그는 온갖 비난과 모략 속에서도 침묵을 지키며 성실히 일을 추진했습니다. “왜 그런 모함을 듣고도 침묵하십니까?” 주위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며 물을 때마다 그는 “때가 되면 하지”라고 답했습니다. “그 때가 언제 입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운하가 완공된 후!”라고 말했습니다.



 2011년 애리조나 총기사건의 희생자 추모식. 추모식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명연설로 백악관에 기록됩니다. 비통함으로 슬픔을 얘기하던 대통령이 51초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합니다. 이 장면은 “51초의 침묵”이라며, 최고의 연설로 미국을 감동시켰습니다. 인도의 위대한 지도자 ‘마하트라 간디’가 남긴 “생의 순간순간 마다 침묵이 최대의 웅변일 때가 있다”라는 말도 기억할 가치가 있습니다. 
 
 요즘은 좀처럼 듣기 어려워진 ‘침묵은 금(金)이다’라는 말에 한 표 던집니다!

<김윤숙 coool6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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