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서 매년 6월 1일은 ‘빤짜실라(Pancasila)’의 날이다. 원래는 국경일이 아니었는데 2016년 대통령령으로 이 날을 국경일로 지켜 기념하기로 결정하였다. (2017년부터 시행)

‘빤짜실라(Pancasila)’는 인도네시아 건국이념이다.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한 자바 고어로 ‘빤짜’는 숫자 5, ‘실라’는 원칙을 의미한다. 그래서 빤짜실라는 5개의 원칙이라는 뜻이며, 전능한 신에 대한 믿음, 인간애, 인도네시아의 하나됨, 합의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 사회정의를 포함한다.

흔히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에 300년 식민지배를 받았다고 말하지만 사실 네덜란드 지배 이전에 인도네시아라는 나라는 없었다. 오히려 네덜란드 식민지배 시절에 국내외에서 근대적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라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싹텄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지식인들은 인도네시아가 젊은 나라라고 말한다. 인도네시아는 그 이전의 문화적 유산은 계승하면서도 여러 민족과 문화, 종교를 아우르는 새롭고 젊은 국가로 태어났다. 민족도, 문화도, 언어도, 종교도, 이념도 다 다른 사람들을 품고 이전에 없던 국가를 형성해야 했으니 인도네시아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합의가 쉬울 리 없다. 1945년 독립선언을 하기 이전에도 그랬고 그 이후에도 인도네시아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논의는 지금까지도 계속되어 왔다.

빤짜실라는 이 논의에 대한 초대대통령 수카르노의 제안을 기반으로 제정되었다. 수카르노는 아직 인도네시아가 최종적인 독립을 이루기도 전인 1945년 6월 1일 독립을 준비하는 위원회에 빤짜실라의 초안을 제출하였다. 감동적인 연설과 함께. ‘빤짜실라의 날’은 이 날 6월 1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빤짜실라의 의미에 대해선 할 말이 많겠지만 우리 같은 국외자의 입장에서는 빤짜실라가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로 이루어진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다원성을 존중하는 국가 이념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물론 빤짜실라가 완벽하지는 않다. 예를 들어 첫번째 항목인 신에 대한 믿음은 종교를 가지지 않을 자유를 제한하고, 또 주요 6대 종교(이슬람, 개신교, 카톨릭, 힌두, 불교, 유교) 외의 종교나 소수종파의 운신의 폭을 제한한다. 빤짜실라가 반대파를 침묵시키는 도구로 사용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빤짜실라는 인도네시아가 다양성과 다원성 속에 통합을 추구하는 나라라는 최소한의 선언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러한 빤짜실라의 성격을 가장 잘 말해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빤짜실라의 초안 공유 이후 수정안으로 나온 소위 ‘자카르타 헌장’은 초안에서 순서가 다섯번째였던 신에 대한 믿음을 첫번째로 올리는 등 초안에서 변경이 있었다. ‘자카르타 헌장’에서 주목할 점은 첫번째 항목인 ‘전능한 신에 대한 믿음’에 덧붙여 ‘이슬람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샤리아를 실천할 의무’를 부과했다는 점이다. 이슬람 율법을 포함하는 개념인 샤리아를 준수할 의무를 부과한다는 이 표현이 최종안에 그대로 담겼다면 인도네시아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종안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빤짜실라 문안을 협의한 ‘9인 위원회’는 기독교(카톨릭 포함)세가 강한 동부 도서지역이 이 조항에 부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동부 지역이 이슬람 우위를 공식화하는 인도네시아 공화국에 참여하지 않고 다른 정치결사를 형성할 가능성까지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독립선언으로 공화국만 출범시켰지 네덜란드를 포함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군 측의 승인도 못받고 자리가 잡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국부들은 이슬람 이념을 고집하기 보다는 통일 인도네시아의 출범과 화합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9인 위원회’는 샤리아 실천의무를 빤짜실라 최종안에서 제외키로 하였다. 위원 아홉명 중 여덟명이 무슬림이었음을 감안하면 꽤나 놀라운 결정이다. 이 결정으로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국가가 아니라 무슬림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는 세속국가가 되었다.

인도네시아가 샤리아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결정은 두고두고 뼈아팠을 것이다. 이후에도 몇 차례 샤리아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모두 성공적이지 않았다. 특별 구역인 서부 수마트라 아체주만 예외이다. 이슬람 계열 정당이나 단체들도 대부분 빤짜실라의 틀 내에서 활동한다. 빤짜실라가 이슬람 신앙이나 샤리아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다. 이슬람 신앙과 샤리아의 정신이 빤짜실라와 헌법, 법률을 통해 인도네시아 민주주의 체계에 이미 구현되고 있다는 논리이다.

10년 전에 이와 관련한 인상적인 장면을 우연히 본적이 있다. 알-자지라 방송 대담 프로에서 인도네시아에 샤리아를 공식적으로 도입하자는 운동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샤리아 도입을 지지하는 패널들의 발언 끝에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지낸 압둘 라만 와히드의 딸이며 인도네시아 최대 이슬람 계열 정당인 국민 각성당(PKB)을 대표하는 예니 와히드의 발언 순서가 왔다. 예니 와히드는 ‘우리는 인도네시아에 샤리아가 도입되는 것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빤짜실라의 나라입니다. 인도네시아는 다문화, 다종교의 나라입니다.’ 라고 발언하였다. 이슬람 계열 정당 대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빤짜실라는 요즘 위기이다. 질문방식마다 조금씩 결과가 다르긴 하지만 신문에 실리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약 10% 정도는 인도네시아가 이슬람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모양이다. 질문에 따라 답이 다르긴 하지만 인도네시아에 샤리아가 적용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때로 50%에 가까운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한다. 대학교나 고등학교에서 설문을 해 보면 거의 25%에 가까운 학생들이 인도네시아가 이슬람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응답하는 결과도 있다. 나이가 더 어릴수록 이슬람 국가의 가치에 호응하는 경향이 보이는 것이다. 또, 정부기관이나 군대, 경찰에 소속된 사람 중에도 2~3% 정도는 인도네시아가 이슬람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답한다. 빤짜실라의 가치를 지켜내고자 하는 쪽에서는 이런 현상이 심히 걱정된다. 지금 당장의 수치보다도 2~30년 후가 더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빤짜실라가 제정된 후 70년이 지났지만 빤짜실라의 날이라도 만들어서 빤짜실라의 가치를 다시 새롭게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빤짜실라의 날이 지정된 해인 2016년 하반기에 당시 자카르타 주지사였던 바수키 짜하야 푸르나마(일명 ‘아혹’)의 발언이 신성모독이라는 주장에서 시작된 ‘이슬람 수호시위(Aksi Bela Islam)’도 중요한 이정표이다. 주지사의 처벌을 요구하며 발생한 몇 차례의 대규모 군중시위로 급진 이슬람 세력이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해 졌다.

2017년 첫 빤짜실라의 날을 맞아 시내 중심부에 갈 일이 있었다. 차를 타고 가다보니 자카르타 중심도로인 수디르만로와 M.H.땀린로를 따라 양 옆에 인도네시아 독립영웅들의 초상을 그린 족자가 쭉 걸린 것이 보였다. 그림 아래에는 해당 인물이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싸웠고, 어떻게 산화했는지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그 설명은 마치 빤짜실라의 날을 맞아 ‘이렇게 이 사람들의 피 위에 세워진 나라가 바로 빤짜실라의 나라 인도네시아이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인도네시아 직원들과 친구들의 소셜미디어 프로필도 빨갛고 하얀 인도네시아 국기를 배경으로 ‘내가 인도네시아다, 내가 빤짜실라다’ 라는 배너로 넘쳐 정부의 호소에 호응하였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빤짜실라의 날도 조용한 모양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는 지금도 논의가 진행중인 조용하지 않은 주제이다. 다른 나라가 어떤 이념에 근거하여야 하는지는 밖에서 관여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변화가 있다면 그 결과가 정치, 경제, 국제관계 등에 미칠지 모르는 영향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위 내용은 필자 소속기관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양동철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 한국수출입은행(crosus@koreaexi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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