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행복, 나태주
행복


나태주



어제 거기가 아니고


내일 저기도 아니고


다만 오늘 여기


그리고 당신



[태헌의 한역]


幸福(행복)



不是昨日其所(불시작일기소)


亦非明日彼處(역비명일피처)


但只今日此席(단지금일차석)


而且眼前爾汝(이차안전이여)



[주석]


* 幸福(행복) : 행복.


不是(불시) : ~이 아니다. / 昨日(작일) : 어제. / 其所(기소) : 그곳, 거기.


亦非(역비) : 또한 ~이 아니다. / 明日(명일) : 내일. / 彼處(피처) : 저곳, 저기.


但只(단지) : 단지, 다만. / 今日(금일) : 오늘. / 此席(차석) : 이 자리, 여기.


而且(이차) : 그리고. / 眼前(안전) : / 눈앞. 역자가 번역의 편의상 보충한 시어임. / 爾汝(이여) : 너, 그대.



[직역]


행복



어제 거기가 아니고


내일 저기도 아니고


다만 오늘 이 자리


그리고 눈앞의 그대



[漢譯 노트]


서양 사람들은 “지금 그리고 여기[Here And Now]”라는 말로 현재의 시공(時空)이 갖는 의의를 매우 중시한다.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 ‘까르페 디엠(Carpe diem)’ 역시 따지고 보면 이와 궤(軌)를 같이 하는 말이다. 그런데 위의 시는 ‘오늘 여기’라는 시간과 공간 개념 위에 다시 ‘당신’이라는 존재(存在)를 더함으로써 동양의 고전적인 담론(談論)인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역자가 거론한 천지인의 ‘天’은 시간을, ‘地’는 공간을, ‘人’은 존재를 각각 의미한다.


역자는 이 시를 처음으로 읽었던 어느 날에 이 시의 제목은 ‘행복’이지만 주제는 ‘사랑’이라고 단언하였다. 시인이 얘기한 행복은 님과 함께 하는 사랑이 아니라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을 보여주는 시로 읽으면서, 역자는 도대체 사랑이 무엇일까를 한 동안 생각해보다가, 한가한 틈을 타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언급한 기록들을 한번 찾아보게 되었다. 세상에나! 사랑에 대한 언급이 정말 어찌나 많던지 그 정의만 다 모아도 책 한 권은 거뜬히 나올 듯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정의했다 해서, 또 그 많고 많은 정의들이 쌓여 있다 해서 이 시대의 사랑이 더 성숙해지는 것은 결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정의는 철학자들이나 사상가들이 내리는 것인지 몰라도, 사랑은 언제나 무엇인가가 부족하기 마련인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철학자들이나 사상가들조차 사랑 앞에서는 초보운전자나 마찬가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역자에게는, 교육학을 전공했지만 서양 철학과 사상 공부를 정말 많이 한 한 친구가 있다. 이 친구의 지론(持論)을 역자가 나름대로 정리해서 얘기하자면 사랑은, “나에게서 우리로 가게 만드는 신비한 묘약(妙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은 ‘우리’가 아니라 ‘나’를 강조하는 순간 바로 깨지는 그릇이기도 하다. 역자는 약을 다루는 약사도 아니고 그릇을 다루는 상인도 아니지만, 친구의 이 얘기를 사랑에 관한 그 어떤 정의보다 더 가슴에 와 닿는 말로 여긴다. ‘우리’가 될 수 없는 사랑이 어찌 사랑일 수 있겠는가! 또 ‘나’를 내세우는 사랑이 어찌 사랑일 수 있겠는가!


역자는 우정 역시 사랑과 비슷하게 “나에게서 우리로 가게 만드는” 그 무엇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원시(原詩)의 “당신”은 님이 아니라 벗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역자는 최근에 언제나 들꽃처럼 웃어주던 한 벗에게 짧은 시 하나를 지어주었다. 기실은 작년 이맘때에 짓고 올해 살짝 손을 본 것인데, 한 하늘을 이고 살지만 자주 만날 수가 없어 어느 날 불현듯 지어보게 되었던 것이다. 가슴 한 켠에 이런 그리움이 있어 허허로운 가운데 인생이 행복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致君(치군)  그대에게


春日短(춘일단)  봄날은 짧다


而且往(이차왕)  그리고 간다


吾君兮(오군혜)  우리 그대여


頻擧觴(빈거상)  자주 마시자



※ 4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역자는 4구의 육언고시(六言古詩)로 한역하였으며, 그 압운자는 ‘處(처)’와 ‘汝(여)’이다.


2020. 6. 2.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