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상대에 대한 관용과 나와의 차이를 인정하는 어떠한 윤리학의 신봉자가 되더라도 상대에 대한 판단을 그만둘 수 없는 한 결국은 “나처럼 되어라 그러면 너의 차이를 존중하겠다”라는 동일성의 폭력으로 귀착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을 중지해야 합니다. 특히 그와 2인칭의 관계를 맺으려면 말입니다. 예를 들어 애인, 배우자 또는 자녀에 대해 “너는 게을러”, “너는 부지런해”와 같은 긍정이나 부정의 어떤 판단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이 존재하는 그대로 상대하는 것을 가로 막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상대를 판단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그가 존재하는 자체로 사랑하기 어려워 진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인간을 그대로 대하는 일은 상대를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판단이란, 이미 존재하는 3인칭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원해서 관계를 맺은 2인칭 관계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상대를 인식이나 판단의 대상으로 접근하면 그 사람은 다른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주관의 인식적 소유물로 자리잡게 되어 주관에서 벗어나 인식될 수 없습니다.

김용규의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중에서

현대를 살아가며 가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소양은 상대를 2인칭으로 인식할 것인지, 아니면 3인칭의 사물로 인식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서 나를 찾아야 하는 오늘의 사회 시스템에서 우리를 구성하는 3인칭 중, 내가 관계를 맺고자 하는 2인칭을 고르는 일은 삶의 질을 유지하는데 중요합니다. 내가 2인칭으로 관계를 맺은 사람에게는 어떠한 판단도 필요 없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해야 한다면 2인칭의 관계를 맺으면 안됩니다. 내가 2인칭으로 관계를 맺은 사람으로 내 존재가 정의되고 의미가 부여됩니다.

“나는 너로 인해 내가 된다 – 마틴 부버 “

조민호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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