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산부인과 의사는 의사냐?

나는 스스로를 ‘지식산부인과 의사’라 부른다. 지식창조 및 공유과정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싹틔우기 위해 만든 조어다. 그런데 지식산부인과 의사라는 말이 문제였다. 내 트위터 프로필에 ‘지식산부인과 의사’라는 말을 올렸더니, 어떤 의사가 합법적 절차를 거쳐 정당한 의사가 되지 않았으면 의사라는 말을 쓰지 말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 사람의 요지는 “아무리 자기홍보 시대라지만 의사가 아닌 사람이 앞뒤 없이 ‘의사’라고 자신을 알리는 것은 명백히 대중에 대한 사기 아닙니까?”라는 비난에 잘 담겨 있다. 나는 진짜 의사가 아니니 홍보수단으로 ‘의사’라는 말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논조였다. “‘~한 의사’를 지향하신다면 의사면허 취득이라는 적법한 절차를 거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현재같이 ‘의사’라고 알리고 다닌다면 ‘사칭’이 맞습니다.” 지식산부인과 의사 면허를 취급하는 공식 기관도 없는 상태에서 어디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치라는 말인지. 

나아가 그는 그런 말을 쓰는 것 자체가 의사 사회 전체에 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그를 보면서 솔직히, 참으로 한심한 의사도 많다고 생각했다. 나는 산부인과 의사를 사칭해서 산부인과 진료행위를 한 적이 없고, 다만 지식산부인과 의사라는 은유를 사용해 지식임신, 지식 낙태수술방지법, 지식 자연분만법 같은 지식의 창조과정을 산부인과학을 원용해 비유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막무가내로 무조건 의사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라는 주장만 반복할 뿐이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의사 커뮤니티 회원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묻고 단계적 공론화를 하겠다고 말하며, ‘좋은 게 좋은 거지’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며 의사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풍토에서는 올바른 의료가 실현되기 힘들다는 궤변을 펼쳤다. 의사를 사칭해 입에 풀칠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을 커뮤니티의 다른 원장들과 함께 모색해야겠다는 공지를 한 적도 있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을 받고, 잠시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의사라는 사람이 이 정도로 상식이 없을까. 지식산부인과 의사라는 말을 쓴다 한들 실제 의사처럼 의원을 개업하고 진료행위를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에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행히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트위터리안들의 댓글이 뒤따랐다. 사람들은 샤갈을 ‘색채의 마술사’라 부르지만 샤갈은 마술사 자격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구두대학병원’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구두를 닦는 사람들은 대학병원 설립 허가증을 갖고 있느냐는 반문을 던져보지만 여전히 젊은 의사는 의사라는 말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써서는 안 된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막무가내 자기주장만 반복하다가 나를 지지하는 트위터리안들의 공세가 만만치 않자 조용히 꼬리를 내렸다.  

우리 사회의 전문가들이 이 수준이라니… 왠지 그들의 자화상을 본 것 같아 씁쓸하기만 했다. 세상에는 참으로 상식 이하의 전문가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런 전문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 다른 사람의 꿈을 쏘아 떨어뜨리게 만드는 재주(?)가 남보다 탁월한 사람이다. 자기 분야를 누군가가 비판하거나 영역을 침범하는 것 같으면 인정사정없이 공격하는 풍조는 우리 시대에 만연한 슬픈 풍경이기도 하지만, 전문가들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는 그중에서도 으뜸이다. 

이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면서 웃지 못할 해프닝을 몇 번 겪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문가가 지니고 있어야 할 자세와 태도, 자질과 역량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다.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한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무리를 무차별적으로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것을 당동벌이(黨同伐異)라 한다. 역지사지해 생각하지 않음은 물론 자기주장만 반복할 뿐 상대에게 아량과 관용 따위 일절 베풀지 않는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전문성만이 최고이며, 자신의 전문성을 함부로 침범하지 말라는 의사가 과연 남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생각하면서 극진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지식산부인과의사라는 말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비유다. 뛰어난 전문가일수록 다른 분야의 개념이나 지식을 융합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이를 쉽게 설명하는 다양한 비유를 적재적소에 잘 활용한다. 그런데 현실은 전문가일수록 전문적인 용어를 남발하며 비전문가에게 어렵게 설명한다. 전문가일수록 많이 걸리는 병이 그래서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wledge)’라는 현상이다. 지식의 저주는 한마디로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는 것이다. 즉 전문가는 비전문가의 전문적인 설명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답답한 마음을 모른다는 거다.

출처: 유영만(2013). 브리꼴레르: 세상을 지배할 지식인의 새 이름. 서울: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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