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물의 세계에서는 내가 있어야 그대가 있지만, 존재의 세계에서는 그대가 있어야 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대가 있어야 내 존재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바로 이 말을 유대인 랍비인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에서 “나는 너로 인해 나가 된다”고 표현했고, 김남조 시인은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그대가 없으면 나도 없다. 마르셀은 나와 그대 사이에 존재하는 이런 관계를 “상호 주관적 매듭”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사랑은 "상호 주관적 매듭"의 상징이지요. 악수도 포옹도 같습니다. "상호 주관적 매듭" 안에서는 사랑하는 것이 곧 사랑 받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사랑이라는 "상호 주관적 매듭" 안에서는 “우리가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보다 언제나 우선합니다.  즉, 내가 있어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있어 내가 있는 것이지요

세상에는 본디 “나”라는 일인칭과 그, 그녀, 그것이라는 3인칭만 존재합니다. 그런데, 모든 3인칭 관계에 있는 대상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제3자이고 당연히 서로 배려하거나 응답하지 않습니다. 또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직 일인칭인 내가 3인칭 대상에게 2인칭 관계를 맺어 “너” 또는 “그대”라고 부를 때만 3인칭 대상은 나를 2인칭으로 부르면서 응답하고 존재를 인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에서 표현하는 철학입니다.

김용규의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중에서

조민호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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