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에서 일할 때 언제부턴가 자동차를 구입하는 현지 직원들이 늘어나는 게 보였다. 비싼 차도 아니고 우리 돈으로 천만원이 조금 넘는 작은 신차나, 이보다는 조금 큰 중고차를 사는 경우가 많았다. 경력이 좀 되고 급여수준이 괜찮은 매니저들이야 그렇다 치고 급여가 적은 젊은 직원에게는 농담처럼 차보다 집이나 땅을 먼저 사는 것이 어떠냐고 지나가는 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나는 것이 보였다. 물론 부유층들이야 그 전에도 여기저기 다녔겠지만 급여생활자 중에서도 형편이 좀 괜찮은 편에 드는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는 것이 부쩍 눈에 띄었다. 우리 사무실에서도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같이 가까운 여행지를 다녀온 직원은 그 전에도 있었지만 가족과 함께 한국이나 일본을 여행한다는 직원도 나오기 시작했다. 업무차 만나는 현지인들도 한국여행 계획이 있다며 정보를 물어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비행기표는 여행박람회에서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1년 뒤에 출발하는 취소나 변경이 어려운 티켓은 한국이나 일본행도 왕복 40만원대에 구입이 가능했다. 아니면 말레이시아를 경유하는 저가항공을 이용하여 저렴한 표를 구할 수도 있었다.

차를 사고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하니 어릴 때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도 소득이 늘고 좀 살만해 졌을 때 ‘마이카’ 시대라 해서 자가용 자동차를 사는 사람이 늘어나고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생기고 그랬다. 그 때를 생각해 보면 집도 없는데 차부터 사고 해외여행을 가는 세태를 꼬집는 내용이 매체에 나오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인도네시아가 1인당 국민소득(GNI)이 2018년 기준으로 아직 4천달러에도 못 미치기는 하지만 통계상 착시를 감안하더라도 자카르타 지역의 소득은 1인당 1만 달러에서 1만 5천달러 이상은 되는 것 같다. 그러니 부유층이 아니더라도 소득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 급여생활자와 자영업자, 전문직 종사자들이 차를 사고 해외여행을 가고 하는 것이 더 이상 이상한 일은 아니다.

개인들의 소득만 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이제 중소득국 중에서도 상위중소득국 진입을 앞두고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분석과 정책활용을 목적으로 세계 여러나라를 1인당 국민소득(GNI) 수준에 따라 저소득국(LIC), 하위중소득국(LMIC), 상위중소득국(UMIC), 고소득국(HIC)의 4개 그룹으로 분류하는데. 인도네시아는 2018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3,840달러로 하위중소득국에 속해 있다. 2018년 소득을 기준으로 하위중소득국과 상위중소득국을 나누는 경계선이 3,995달러이니 1인당 국민소득이 150달러만 늘어나면 인도네시아는 상위중소득국(UMIC) 지위를 얻게 된다. 원래는 2,3년 내로 상위중소득국 편입이 예상되었으나 코로나19 판데믹과 유가하락 등이 겹친 세계경제 변동성 증가의 영향으로 향후 전망은 불투명하다. 1인당 소득이 3,840달러라는 건 전체평균이고 지역별 편차가 커서 산업과 기업이 집중된 자카르타나 동칼리만탄 같은 곳은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가 넘고, 동부 도서지역은 1천불을 간신히 넘기는 곳도 있다. 하위중소득국이던 인도네시아가 상위중소득국이 된다 하여도 당장 뭐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하지만 국가 전체적으로는 자신감이 올라가는 일이기도 하고, 국가 단위에서 소득이 오른다는 얘기는 구성원들의 생활수준도 점점 나아진다는 뜻일 수 있어 의미는 있다.

올해 1월 세계은행은 인도네시아의 중산층 확대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에서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루어 중산층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인구는 약 5천 2백만명이다. 연간 기준으로 1인당 2,800달러에서 1만 3,800달러 사이에서 소비(구매력 평가 기준)할 수 있는 그룹이다. 이 중산층 그룹은 인구구성비는 전인구의 20%에 조금 못 미치지만 전체 소비의 절반 정도를 담당하고 있으며 소비규모 확대 속도도 2002년 이후로 매년 12%에 달한다. 이 계층이야말로 인도네시아 경제성장을 이끄는 중심축이다. 향후 인도네시아 경제가 어떤 성장경로를 보일 것이냐도 중산층의 확대와 이들의 소비패턴에 달려있다. 많은 기업들이 인도네시아의 자원이나 노동력뿐 아니라 중산층 확대에 따른 내수시장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세계은행이 주목한 것은 연간 기준 1인당 1,200달러에서 2,800달러 정도를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예비중산층 1억 1,500만명이다. 중산층과 예비중산층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경제적 충격을 얼마나 잘 흡수할 수 있느냐에 있다. 중산층은 예기치 못한 충격이 닥치더라도 이를 극복하여 빈곤층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예비중산층은 언제든지 빈곤층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 통계청(BPS) 기준으로 2006년 18%였던 빈곤율이 2019년에는 9.22%까지 떨어지는 등 인도네시아에서 빈곤극복은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는 빈곤을 극복한 계층이 빨리 상당한 규모의 소득증대를 거둘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과제이다. 세계은행 보고서의 표현대로라면 이 예비중산층 그룹이 어느 정도나 중산층으로 편입될 수 있느냐에 따라 향후 인도네시아 소비자들의 구매력과 이에 따른 경제성장 경로가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막 빈곤층과 취약층 기준을 벗어난 예비중산층 그룹은 중산층으로 도약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도 항상 지니고 있다. 소비여력도 크지 않을 뿐 아니라 작은 경제적 충격에도 취약하다. 사회안전망이 잘 갖추어지지 않고 저축도 하기 힘든 상황에서 조금만 삐끗해도 당장 주거와 식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계층에 속한 사람들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항상 마음이 불안하다. 지금은 그 나름대로 꽤 괜찮은 소득을 올리고 있지만 몸이라도 아프거나, 사고가 나거나 실직을 하거나 하면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없어 항상 위태위태한 삶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건강보험이나 연금보험 등 사회보장제도 도입으로 안전망을 구축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보장성을 높여 의미있는 안전망을 구축하려면 가입자가 내는 부담금을 높여야 하지만 당장 나가는 지출이 부담스러운 가입자들의 저항이 거세다.

그리고 1억 1,500만명에 달하는 예비중산층, 5천 2백만에 달하는 중산층의 소득 분포를 보면 평균근처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있는 정규분포 비슷한 모양이 아니라 계층을 구분하는 기준 소득선 하한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모양을 보이고 있다. 그러니 통계상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비율은 얼마든지 조절이 가능하다. 기준이 되는 금액을 조금만 올려도 예비중산층, 중산층 숫자가 많이 줄고 빈곤층 비율은 그만큼 늘어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인도네시아에 중산층이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를 보고 진출을 결정하였는데 생각만큼 이들의 소비여력이 크지 않아 고전하는 기업도 생길 수 있다. 통계의 착시 때문이다. 온라인 기업 관계자와 얘기를 하면서 자사 앱을 깔고 게임을 하고 아이템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빠르게 늘어 점유율이나 인지도는 괜찮은데 유로 아이템 구매율은 현저히 떨어져 수익으로는 잘 연결이 안 된다는 고민을 들은 적이 있다.

쇼핑몰에서도 이런 모습들이 보인다. 점포들의 구성을 지켜보면 아이템마다 차이는 있지만 상품을 파는 상점은 물건이 잘 안 팔려서 한가한 곳이 많은 반면에 식당은 그래도 장사가 되어 식음료 구역에만 사람이 몰리는 모습도 꽤 많이 보았다. 그래서 어떤 몰들은 상점 구역은 점점 줄고 식당, 까페 구역만 확장되기도 한다. 물건을 살 구매력은 충분하지 않지만 식당에서 가족이나 친구, 동료와 함께 보내는 시간과 경험에는 돈을 쓰는 소비패턴 때문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다.

인도네시아는 이제 국가적으로도 상위중소득국 반열에 들 날이 멀지 않았고, 중산층도 조금씩 두터워지고 이들의 소비도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차를 사고, 해외여행도 가고 좀 더 비싼 내구재를 사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중산층이 증가하니까 내수시장도 커지고 이 품목, 저 품목 다 잘 될 거라는 전망은 경계해야 한다. 중산층의 구매력이 증가하는 속도가 기대보다 빠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구매력이 증가하더라도 그 과실은 소비자들의 소비패턴에 따라 각 부문과 품목별로 다르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 위 내용은 필자 소속기관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양동철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 한국수출입은행(crosus@koreaexi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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