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삶이 머물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프롤로그>
사람들은 원하는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멋진 모습만을 포장하여 호감을 얻어내려 애쓴다. 그러다가 본래 실체가 드러나버리면 차가운 이별의 슬픈 날이 찾아온다. 영화<라스베가스를 떠나며(Leaving Las Vegas), 1995>에서는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남녀가 만나서 고독과 공포와 고통을 공감하고 마지막 남은 사랑을 불태운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면서 시작했기에 원망보다는 상처에 대한 이해와 위안의 동행이다. 최근 이태원 클럽 신드롬에서 인간의 깊은 외로움을 발견하게 된다. 위험이 있는지 알면서도, 고독이 너무나도 깊기에 발걸음이 고독을 달랠 수 있는 그곳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현대 문명으로 눈부시게 발전한 편리한 삶의 환경이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반려동물과 텔레비전만이 유일한 말동무가 된 상황에서 깊은 고독을 치유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것이 바로 현대인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삶이 머물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영화 줄거리 요약>
할리우드의 잘나가던 시나리오 작가였던 벤(니콜라스 케이지 분)은 어느 시점부터인가 알코올에 빠지게 되면서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가족에게도 버림받는다. 더는 인생의 희망이 없던 그는, 가진 돈을 다 털어서 환락의 도시 라스베가스로 향한다. 그곳에서 4주 정도 실컷 술에 만취되어 살다가 자연스럽게 이 지옥 같은 삶에서 해방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상상을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이미 희망 없는 삶이 익숙해져 있던 거리의 여자 세라(엘리자베스 슈 분)를 만나 내일을 기약하지 않는 조건으로 암울한 사랑을 나누게 된다.

벤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으며 세라 또한 외로움을 견딜 누군가가 필요했기에 동질감과 연민을 느낀 두 사람은 서로의 삶을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애초부터 미래의 희망을 접었던 두 사람은 사랑이 깊어질 수록 행복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게 된다. 세라의 관심과 애정이 깊어지자 벤은 의도적으로 다른 여성을 불러들여 그녀를 냉정하게 대하며 떠나보내려 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녀에게 자신이 깊은 수렁에서 허우적거릴 때 천사같이 나타나 함께 고독한 시간을 보내준 의미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에 세라도 벤과의 시간이 분명 사랑이었음을 인정하고 마지막 포옹으로 떠나보낸다.

죽음을 생각하면 이 순간의 삶이 더욱 소중해지듯이, 그들이 보여준 짧고 희망 없던 슬픈 사랑은 현대인들에게도 언젠가 닥칠 수 있는 사랑의 절실함을 생각해보게 한다. 알코올 중독자를 실감 나게 연기한 주인공 니콜라스 케이지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삶이 머물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관전 포인트>
A. 라스베가스에서 만난 두 사람의 동거 조건은?
벤은 세라의 직업(거리의 여자)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 것이고 세라는 벤에게 절대 술을 그만 마시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You can never ever ask me to stop drinking)이다. 하지만 세라는 점점 더 죽음으로 치닫고 있는 벤에게 술을 그만 마시고 병원치료를 받자며 정해 놓았던 선을 넘게 되고 그들은 서서히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B. 두 사람이 사랑할수록 힘들어진 이유는?
라스베가스에서 만난 두 사람은 잠시나마 행복을 느끼지만,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면서 관심과 구속이 깊어졌고, 벤과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어진 세라를 향한 그의 비이성적인 행동에 그녀는 너무나도 깊은 슬픔에 빠져버린다.

C. 세라가 벤에게 준 선물은?
벤을 사랑하면 할수록 그를 병원에 보내서 회생을 시도하려 하지만, 그것은 관계를 끝내려는 시도와 같다. 그때 그녀는 벤을 위해 휴대용 위스키병(힙 플라스크)을 선물한다.  세라는 “난 그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였죠. 난 그가 변하기를 바라지 않았어요. 그도 저와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해요. 난 그의 삶을 사랑해요”라고 말한다. 그가 고독과 공포와 고통이 가득한 삶속에서 벗어날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술이라는것을 잘 알고 있었다.

D. 벤이 세라를 진정 사랑하는 대목은?
알코올 중독자인 자신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세라에게 “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느껴져, 내가 항상 취해 있어서일까, 왜 진작 당신하고 못 만났을까”라며 세라에게서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이미 모든 것이 늦어버렸지만 벤은 세라가 있기에 전혀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다. 벤은 마지막 임종 때 세라를 전화로 불러 자신의 마지막을 함께해준 세라에게 깊은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E. 영화에서 제시하는 사랑의 색깔은?
절망 속에서 만난 두 사람을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서 한 줄기 빛을 보여주며, 사랑이라는 명제에 대해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제시하고 있다. 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픔과 고통을 묵묵히 가슴속으로 참아가는 세라의 모습은 화려하거나 아름다운 사랑은 아니지만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이었다.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삶이 머물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에필로그>
인간은 파릇파릇한 청춘의 시기에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가정을 이루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하지만 삶이 복잡해지면서 사랑으로 모든 삶의 고통을 해결하기가 불가능해진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래서 이제 각자의 방식대로의 살아가는 길을 만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결혼보다는 혼자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추구하고 즐기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길을 모색한 것이다. 그만큼 옛날처럼 가정을 위해 자신을 삶을 희생하면서 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는 마지막 낭떠러지로 향해 달려가던 벤도 결국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가족과 가정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치 남인수의 노래<청춘고백: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몹쓸 것 이내 심사/ 믿는다 믿어라 변치말자 누가 먼저 말했던가 아아 생각하면 생각사로 죄 많은 내 청춘 >의 가사처럼 사람의 행복과 사랑에 대한 감정은 복잡미묘하고 주관적이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정답이 없고 본인의 철학과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인 누구라도 잘 나가다가 어떤 계기로 인생의 낭떠러지인 ‘라스베가스’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기에 지금의  삶은 더욱 소중한 것이다.

서태호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