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은 상처다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기존의 내 앎에 생채기가 생긴 것이다. 당연하다는 고정관념이 고장이 나서 머리가 아프고, 옳다고 믿었던 신념체계가 파괴되면서 심하게 가슴앓이를 시작하는 것이다.

기존의 앎에 상처가 생기면 상식이 식상해져서 몰상식에 눈을 뜨게 된다. 몰상식이 세상에 눈을 뜨고 나오는 순간 또 한 번 상처를 받는다. 그렇게 앎은 아픈 상처에 흉터가 생기고 아름다운 앎을 기반으로 내가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다.

알면서 생기는 상처는 주로 머리보다 가슴에 생긴다. 마음이 동반되는 생각이라야 아픈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우리가 뭔가를 반성하라고 할 때 머리에 두 손을 얻고 생각하라고 하지 않고 가슴에 두 손을 얻고 생각하라고 한다. 생각은 머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하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가장 정직한 앎은 가슴으로 먼저 느낀다. 생각은 속일 수 있지만 느낌은 속일 수 없다. 가슴으로 와 닿은 느낌이 머리로 옮겨 가면서 각색되고 희석되며 탈색된다. 그래서 감성적 설득 없는 논리적 설명은 이해는 가지만 뻥 뚫리는 통쾌함이 없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시어머니가 아프면 머리가 아프고, 친정 엄마가 아프면 가슴이 아프다는 말이 있다. 머리가 아픈 것과 가슴이 아픈 것의 극명한 차이를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머리가 아프면 요리조리 잔 머리를 굴리지만 가슴이 아프면 온 몸으로 ‘이리저리’ 그 아픔을 공감하고 대책을 세운다.

‘요리조리’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이고, ‘이리저리’는 생각하면서 동시에 좌우지간 행동으로 옮겨보는 것이다. 세상은 ‘요리조리’ 고민만하는 사람보다 ‘이리저리 ’하여간에 직접 행동으로 옮기면서 고통을 겪는 사람이 바꾸어 나간다.

‘요리조리’ 머리로 고민만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답은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또 다른 고민뿐이다.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고민하는 사람에 줄 수 있는 유일한 처방전을 두통약이다.

내가 고민하는 많은 문제는 사실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걱정도 긍정하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걱정만 하지 말고 몸을 행동으로 옮기면 고민과 걱정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들이대고 저지르고 안 되면 다시 도전하자.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 - 들이대학교 저절러학과 뒷수습 전공 유영만 교수의 ‘다르게 생각하면 답이 보인다’에서-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의 트위커  @kecolog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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