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느낌표(!)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물음표(?) 뒤에 숨어 있다

물음표(?) 없이 느낌표(?) 없다. 물음 없이 답이 나오지 않는다. 묻고 또 물어야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온다. ‘고민하는 힘’을 쓴 재일교포 강상중 교수는 “당신은 진지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우리말에 어중간하다는 말이 있다. ‘어중간함’은 특정한 사회적 이슈나 딜레마적 상황에서 자기 주장을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고 남의 눈치를 살피면서 입장을 유보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항을 지칭한다. 어중간함은 동양의 미덕중의 하나인 중용의 덕과는 다르다. 중용의 덕은 양극단에 위치하고 있는 입장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으며, 각각의 한계나 문제점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파악,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고 양극단의 절충적인 입장을 취하는 자세와 태도를 지칭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어중간하게 대강대충 모색해서 쉽게 답을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힘은 나는 누구인지를 알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며, 나와 내가 직면하는 세계와의 관계를 제대로 알기 위한 치열한 사고의 과정이다. 단순히 알고 있는 상태, 들은 적은 있으나 설명할 수 없는 상태는 폭증하는 정보를 단편적으로 축적하고 있는 상태라서 문제해결이나 위기상황 탈출에 별 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뭔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면서 적용해보고 안되면 다시 시도해보는 가운데 마침내 깨닫는 오랜 탐구과정이 필요하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물음표(?)와 이리저리 시도해보는 고통체험과정에서 내 몸에 지식이 체화되는 순간 깨달음의 느낌표(!)가 탄생한다. 단편적인 정보가 나의 철학과 혼이 담긴 지식으로 탄생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고민하는 힘과 더불어 고통체험의 실천과정필요하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문제 상황, 목적과 수단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애매모호한 상황, 원인과 결과가 호혜적으로 얷혀 있어서 인과관계를 쉽게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 마디로 답이 없는 상황에서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적합한 설명력과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현답을 찾아야 되는 상황에서는 과거의 틀에 박힌 처방전이나 체계화된 매뉴얼적 지식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놓여 있는 현대인들은 실패와 좌절, 절망과 비극이 일상화되는 삶을 온몸으로 부딪히고 고뇌하면서 발버둥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내가 정말 추구하고 싶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고 싶은가? 왜 그 곳에 도달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는가? 그런 몸부림치는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질문은 하루 아침에 속 시원한 정답을 찾을 수 없다. 고민은 고통체험으로 연결되어야 또 다른 차원의 고민으로 연결될 수 있다. 고민이 고통체험을 동반하지 않고 머리 속에서 맴돌 경우 고민은 해결되지 않는다. 고민은 고뇌하는 힘을 통해 내가 살아가는 삶을 무대로 실천될 때에만 해결될 수 있다. 몸이 동반되지 않는 머리, 고통체험이 동반되지 않는 이성적 사유는 관념으로 끝날 수 있다. 아무리 위대한 사상이라고 할지라도 내 몸을 통해서 깨닫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고민하면서 만들었던 사상적 결과물이 나의 고통체험을 통해 내가 직접 깨닫지 않는다면 사상누각(砂上樓閣)이다. 고민은 몸을 움직여 실천해보고 깨닫는 고통체험을 통해 비로소 해결된다. 감동과 감탄의 강도는 물음의 강도에 비례하기도 하지만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시행착오의 고통체험 강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내가 던지는 질문의 질이 내가 얻을 수 있는 답의 질을 결정한다. 색 다른 답을 찾으려면 이제까지 제기하지 않았던 질문을 던져야 한다. 느낌표와 함께 찾아오는 감동과 감탄의 강도는 의문과 질문의 깊이가 결정한다. 물음은 길고 답은 짧다. 물음표는 뭔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시킨 문장부호다. 물음표를 마음속에 갖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곰곰이 생각하는 곡선의 삶을 살아간다.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염원하는 답은 물음표의 곡선에서 태어난다. 묻고 또 묻는 집요한 문제의식 없이 쉽게 답을 얻으려는 성급함이 사색과 고민하는 시간을 빼앗아 간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의식적으로 피해서 좀 더 많은 일을 보다 빨리 달성하려는 속성재배 지향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묻지 않고 바로 답을 찾으려고 한다. 심지어는 물음표(?)를 아래로 잡아당겨 바로 느낌표(!)를 구하려고 한다. 느낌표를 구부려야 물음표가 된다. 물음표의 곡선 속에서 느낌표의 직선이 탄생한다. 느낌표는 저절로 탄생되지 않는다. 물음표의 곡선은 어느 날 갑자기 느낌표의 직선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물음의 여정이 깊어질수록 느낌표에 담기는 경이로움의 질적 수준과 강도도 달라진다. 물음의 과정은 시행착오의 곡선이고 물음 끝에 나오는 답은 깨달음의 직선이다. 직선은 곡선의 수행 끝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곡선의 자식이다. 직선이전에 곡선이 있었다. 진지한 질문 없이 바로 답을 찾으려는 곡선 없는 직선만의 세계에는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의 시간적 여유가 살아가지 않는다. 의심이나 의혹으로 시작한 의문이 본질에 대한 집요한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 시대의 흐름을 꺾을 수 있는 경이로운 발견과 창조가 이루어진다. 본질은 쉽게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오로지 알고 싶다는 꺼지지 않는 호기심과 탐구심, 포기하지 않고 달려드는 불굴의 의지 속에서 본질은 서서히 그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미숙하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고, 넘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넘어지고 엎어지지만 다시 일어서는 불굴의 의지 속에서 미숙함이 능숙함이 바뀌고 어중간함이 진지함으로 성숙된다.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던 학자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히트 상품과 서비스는 모두 집요한 물음과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궁리 속에서 탄생했다.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뉴톤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에 시비를 거는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사과가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한 뉴톤의 만유인력 법칙을 갖고 시험보고 있다. 비타민은 알약으로 먹어야 된다는 고정관념에 물음표를 던진 마시는 비타민, 비타 500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혁신적인 제품으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비타민을 보다 쉽고 편안하게 복용하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마시는 비타민도 가능하다는 경이로운 히트상품, 마시는 비타민을 개발하는 감동과 감탄을 연출해냈다. 어머니의 밥맛이 고스란히 살아 있으면서도 보다 쉽게 편리하게 밥을 먹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물음이 CJ의 햇반을 탄생시켰다. 고객의 불편함을 포착, 이를 치유할 수 있는 물음표를 던지면서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고객감동과 감탄을 유발할 수 있는 경이로운 히트 상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가 수분이 포함되어 있어 냄새도 나고 처리하기 곤란한 불결한 음식물 쓰레기에 물음표를 던져 음식물 쓰레기를 건조해서 처리하는 새로운 기계를 개발한 루펜의 이희자 사장님은 가정주부들의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는 대박 상품을 개발했다. 찜질방 수건이 자주 없어져서 고민하는 사장님은 어떻게 하면 찜질방 수건을 없어지지 않게 할 수는 없을까?라는 물음표를 던지고 이런 저런 궁리 끝에 모든 수건에 ‘훔친 수건’이라는 글귀를 새기기로 했다. ‘훔친 수건’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찜질방 수건은 그 이후에 하나도 없어지지 않았다. 모든 혁신과 창조는 이처럼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 존재하는 인터러뱅을 통해서 태어난다. 물음표(?) 뒤에 느낌표(!)가 기다리고 있다. 물음표(?)는 언제나 감동의 느낌표(!)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은 길지만 기회는 짧은 순간에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다. 감동적인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 속에서 기회는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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