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 인터러뱅이 살고 있다!

 

인터러뱅은 물음표와 느낌표가 합쳐져서 탄생한 경이로운 부호입니다.

물음느낌표 또는 느낌물음표나

의문경탄부호 또는 경탄의문부호라고도 합니다.

전대미문의 새로운 창조는

모두 생각의 빅뱅을 일으키는 인터러뱅에서 살아갑니다.

세상은 물음으로 시작됩니다.

물음표?는 궁금거리는 상상력입니다.

물음표?는 알고 싶은 호기심입니다.

물음표?는 타성과 통념에 통렬한 시비를 거는 출발점입니다.

물음표?는 당연과 물론의 세계에 던지는 왜?라는 질문입니다.


물음 뒤에 간절히 원하는 답!이 나옵니다.

느낌표!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 마침내 승리하는 환희의 순간입니다.

느낌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역전의 순간에 터져 나오는 감동의 순간입니다.

느낌표!는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나타나는 반가운 손님입니다.

느낌표!는 물음표가 곡선으로 방황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직선으로 달려가는 창조의 순간입니다.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

상상초월의 창조가 이루어지는 생각의 빅뱅, 인터러뱅이 살고 있습니다!

 
느낌표!는 물음표? 곁에서 살아갑니다.

물음표는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본 따서 만든 문장부호라고 합니다.

느낌표는 뭔가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추구하다가 원하던 바를 찾았을 때

기뻐서 펄쩍 뛰는 사람의 모습을 본 따서 만든 문장부호라고 합니다.

물음이 감동을 가져옵니다.

묻지 않으면 감동과 감탄도 죽습니다.

한심한 사람,

매일 신세타령을 하고 환경을 탓하면서 한숨과 한탄만 거듭하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은 물음표 속에서 꽈리를 틀고 있습니다.

물음표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건져 올리는 두레박과 같습니다.

 

물음표?는 느낌표!를 만나야 행복합니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질문이 큰 감동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질문에 질문을 거듭한 끝에 깨달음의 느낌이 찾아옵니다.

물음은 곡선이고 감동은 직선입니다!

물음표는 곡선의 방황여정에서 살아가고

느낌표는 곡선의 방황 끝에 찾아오는 짧은 감동입니다.

물음의 곡선이 감동의 직선을 가져옵니다.

묻고 또 묻는 가운데 질문의 질이 달라집니다.

질문의 방향과 성격, 질적 수준이 내용이 달라지면 내가 얻을 수 있는 답도 달라집니다.

묻고 또 묻는 곡선의 질문을 경험하지 않고

바로 달려가서 얻을 수 있는 직선의 답을 찾으려고 고민하고 있지 않습니까?

 

물음표?도 느낌표!도 마침표(.)와 함께 살아갑니다.

끊임없이 묻되 가끔은 멈춰야 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계속 이어지다보면 방향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무엇을 물어보고 있는지가 의심스러울 때 멈춰 서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야 됩니다.

방향감을 잃어버린 연속적인 질문은 자신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습니다.

질문 뒤에 질문의 의미와 본질, 방향과 성격을 곱씹어보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찰적 질문이 깨달음과 감동을 가져다줍니다.

잠시 멈추어서서 사색과 고뇌의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던진 질문이라야

깊은 깨달음을 주는 통찰의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물음표?와 느낌표!는 모두 마침표(.) 위에서 살아가야 됩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각도는 속도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각도를 바꾸고 멈추어 서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을 점검해봐야 될 시점입니다.


느낌표!를 뒤집으면 눈물이 되고, 눈물을 뒤집으면 느낌표!가 됩니다!

느낌표는 즐거움과 감동과 함께 살아가지만

견디기 어려운 혹독한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고 난 뒤에도 찾아옵니다.

즐거움과 감동 뒤에 찾아오는 느낌보다

힘들고 어려운 난관과 장애물을 극복하고 난 뒤에 찾아오는 감동이 더 감동적입니다.

감동은 눈물을 가져옵니다.

느낌표를 뒤집으면 눈물이 됩니다.

느낌표는 눈물이고, 눈물이 느낌표를 만들어 갑니다.

남의 감동이 나의 눈물이 되고

나의 눈물이 다른 사람에게는 감동으로 다가갑니다.

꿈을 이루면 나는 눈물이 나지만

내 눈물은 다른 사람에게 감동으로 다가갑니다.

꿈을 이루면 누군가의 꿈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래서 느낌표는 언제나 눈물과 함께 살아갑니다.


물음표?를 뒤집으면 낚시 바늘이 됩니다.

고기를 낚으려면 낚시 바늘을 바다나 호수로 던져야 됩니다.

답을 얻으려면 세상을 향해서 질문을 던져야 됩니다.

낚시 바늘이 달라지면 낚을 수 있는 고기가 달라집니다.

다른 물고기를 잡으려면 낚시 바늘을 바꾸어야 합니다.

다른 물고기를 잡으려면 낚시 바늘을 바꾸어야 되는 것처럼

지금까지와는 다른 답을 얻으려면 질문을 바꾸어야 됩니다.

세상을 향해 내가 던지는 질문의 그물을 바꾸면

질문의 그물에 걸리는 답이 달라집니다.

내 삶을 바꾸려면 질문을 바꾸십시오.

지금까지 내가 던진 질문이 바로 나입니다!

물음표?는 내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낚시 바늘과 같습니다.

나는 오늘 세상을 향해 어떤 질문의 그물을 던지고 있습니까?

혹시 어제와 비슷한 질문의 그물을 던져놓고 어제와 다른 고기가 걸릴 것이라는 요행을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음표?를 두 개 합치면 뜨거운 하트마크♥가 됩니다!

질문이 있는 사람이 언제나 뜨거운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원래 그런 것이 없고 당연한 게 없습니다.

물론과 당연의 세계에 언제나 왜?라고 시비를 걸고 모든 것에 의문의 화살을 던집니다.

묻고 묻다 보면 답이 보입니다.

질문하지 않는 사람, 질문이 없는 사람, 질문하기 싫은 사람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삶에 안주하려는 사람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마음 속에 물음표가 사라지는 이유는

세상에 대한 궁금함과 호기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살고 싶은 사람,

지독한 열정으로 정상에 서고 싶은 사람,

뭔가 해내고야 말겠다고 의지의 불꽃을 태우고 싶은 사람은

모두 물음과 물음사이에서 답을 찾아 나서는 과감한 도전을 감행해야 합니다.

물음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나 다름 없습니다.

묻고 또 물으면 열정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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