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식인’과 ‘지식인’의 차이

지식인은 도처에 산재한 정보를 가공하고 편집해서 문제 상황에 적용해보고 그 깨달음의 결과를 지식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부단히 전개하는 사람이다. 자기 몸에 체화된 지식으로 독창적인 관점과 시각을 제시하고 혼란에 빠져 표류하는 사회를 위한 비판적 담론 형성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한다. 모순과 갈등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억압적 이데올로기로 얼룩진 세상을 향해 정면으로 저항하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지식인은 현실을 철저하게 직시하면서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동시에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언제나 미래지향적 변혁을 꿈꾼다. 지식인은 허위와 허상으로 가려진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나 비판적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부단히 새로운 가능성의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전력투구한다.

지식인은 이런 모든 과정에서 자기만족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자신의 고통체험을 통해서 체득한 지식을 남과 나누는 과정에도 열정적이다. 지식인은 지식은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사이에 존재하기에 대중들과의 소통을 중시한다. 지식인은 나눔과 소통, 공감과 연대를 통해 암울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에 언제나 희망을 빛을 밝히려고 불철주야 노력한다. 따라서 지식인은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솔직하고 정직하며 나와 다른 관점에 개방적이다. 지식인은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하면서 다양한 관점 속에서 새로운 대안이 창발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편견이 편파적으로 작용하여 특정 권력집단의 이데올로기가 의사소통 과정에 관여되지 않도록 공론의 장을 형성하는 것이 지식인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서 쥐식인은 지식생산이나 창조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남의 지식을 염탐하고 갈취해서 쥐굴에 몰래 축적하는 과정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쥐식인은 자기 전공을 넘어서는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안하무인(眼下無人)이며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특히 쥐식인은 쥐 굴 밖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왜 무엇 때문에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며, 그것의 말로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담을 쌓고 살아간다. 한마디로 쥐식인의 거주처는 다른 사람의 지식을 몰래 훔쳐다 쌓아놓은 쥐 굴이라서 다른 세상의 변화추세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쥐식인은 자신의 음식을 스스로 만드는 경우가 거의 없다. 주로 남의 지식을 수시로 염탐하면서 신속하게 훔쳐오는데 탁월한 자질과 역량을 갖고 있다. 쥐식인은 또한 돈과 명예를 위해 육신은 돈에 팔고, 지조는 패거리에 바치며, 목적 달성을 향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이다.

쥐식인은 판세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면 변절을 해서라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진다. 쥐식인은 들보 위의 군자처럼 보이지만 결국 남의 지식은 물론 권세를 염탐하는 도둑을 가리키는 양상군자(梁上君子)에 비유될 수 있다. 훔친 지식은 절대로 남에게 공개하지 않고 쥐 굴속에 철저하게 은폐하고 위장해서 수시로 시식하면서 배를 채운다. 쥐식인은 쥐 굴속의 쥐식(쥐가 먹는 지식)을 누가 훔쳐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바깥세상을 두리번거리고 미묘한 변화의 조짐이 보이면 바로 쥐 굴속으로 숨어버리는 행동을 반복한다. 쥐식인의 유일한 관심은 쥐 굴속에 언제나 먹을 수 있는 쥐식을 풍부하게 축적해놓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쥐식인의 눈동자는 언제나 의심의 눈초리로 반짝거리며 쥐식인의 코는 다른 사람의 지식이 어디에 어느 정도 있는지를 포착하는 탁월한 후각을 갖고 있다. 쥐식인의 손(앞 발)과 발은 쥐식을 근간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행동과 실천을 하는데 에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쥐식인의 손과 발은 오로지 남의 지식을 자신의 거주처인 쥐 굴속으로 훔쳐오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민첩하게 발달되어 있다.

쥐식인이 주식으로 삼고 있는 쥐식은 자기 전공분야에만 통용되는 지식에 비유될 수 있다. 복잡한 학문 분야를 세부적인 전공분야로 분할해서 각자의 전공에만 매달려 조금만 전공분야를 벗어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 지식이 대량으로 양산되고 있다. 전공분야마다 축적된 방대한 지식은 전공분야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장애를 가져오고 결과적으로 전공간 장벽이 높아지고 경계가 선명하게 그어지면서 불통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상아탑에 거주하는 교수들의 연구실도 쥐식인이 거주하는 쥐굴과 비슷해지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문제는 상아탑에서 자기 전공 분야에 매몰되어 한 구멍만 파는 쥐식인이 당대의 지식인으로 행세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 전공영역을 넘어서는 분야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고 외부적 시각이 침투하지 않도록 높은 담을 쌓고 넘어설 수 없는 경계를 치고 있다. 자기들만이 아는 전문 용어로 전문적 담론을 펼치기에 세상과 점점 유리․격리되고 학문적 탐구가 진행될수록 세상을 이해하는 혜안으로부터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자기 전공에 대한 아성을 굳히고 자기들만의 리그에서 자기만족을 추구하기 위해 철저한 방어와 동시에 자기 전공에 대한 비판적 담론을 제기하는 다른 전공에 대해서는 무차별 공세를 펼친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인의 진정한 모습은 넓이를 가진 깊이 있는 지식인이다. 즉 전문지식이라는 수직축과 교양지식이라는 수평축을 교차하는 융복합 또는 통섭하는 지식인이다.(정정호, 2009). 자기 전공에 대한 깊이를 추구하는 세로지르기와 인접 유관분야에 대한 넓이를 확산시키는 가로지르기를 동시에 추구하는 십자지르기형 지식인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인의 모습이다(유영만, 2002b, 2006, 2008a). 한 우물 파다가 매몰되기 이전에 자신이 파고 있는 우물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왜 파고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알 필요가 있으며, 더 깊이 파고 들어가기 이전에 주변 인접학문 분야와의 통합적 관계성과 구조적 연관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전문성은 정체성 확보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예전에는 전공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습득하는 길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제 전문가는 자기 전공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은 물론 인접 유관분야에 대한 폭넓은 식견과 안목을 갖추지 않으면 학문적 소통뿐만 아니라 현장의 다양한 현실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따른다(유영만, 2006).

출처: http://blog.naver.com/kecologist/7008043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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