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가 ‘거시기’야

영화 황산벌을 보면 ‘거시기’라는 말이 수없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거시기’라는 말을 쓸 때마다 ‘거시기’의 의미가 다 다르게 쓰이고 있다. ‘거시기’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거시기’라는 말을 듣는 사람과 ‘거시기’로 표현되는 상황적 맥락에 대해서 공유하는 측면이 많으면 많을수록 ‘거시기’의 의미파악은 명료해진다. 그런데 ‘거시기’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은 ‘거시기’로 표현하고 싶은 말의 의미와 의도를 분명히 알고 있다. 문제는 자신이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애매모호성을 ‘거시기’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는 점을 무척이나 답답하게 생각한다는데 있다. ‘거시기’라고 말하는 사람과 ‘거시기’에 대한 표정과 말하고 싶은 ‘거시기’ 표정을 지으면서 ‘거시기’에 대해서 주장하려는 ‘거시기’는 쌍방이 모두 답답할 경우가 많다. ‘거시기’를 말하는 사람이 계속 ‘거시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도 ‘거시기’를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거시기’를 주장하니까 ‘거시기’를 듣는 사람은 ‘거시기’가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를 파악하기가 ‘거시기’ 하니까 답답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거시기’는 ‘거시기’인데 상대방이 생각하는 ‘거시기’는 다른 ‘거시기’라서 ‘거시기’로 의사소통하면서도 ‘거시기’에 대한 공통된 ‘거시기’를 공유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거시기’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거시기’로 남아 무수히 많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채 미궁으로 빠지는 경우도 있다. ‘거시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은 상태로 궁금증만 가중시키는 ‘거시기’는 참으로 진정한 의미의 ‘거시기’다운 ‘거시기’라고 볼 수 있다. ‘거시기’는 다의적(多義的)이기에 ‘거시기’를 말하는 사람의 ‘거시기’에 따라서 다른 ‘거시기’로 들릴 수 있다. ‘거시기’의 참다운 묘미는 ‘거시기’의 정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면서도 ‘거시기’가 주는 묘한 의문점과 애매모호성 때문에 그 ‘거시기’의 정체와 본질에 대해서 각자 다르게 ‘거시기’를 생각해서 ‘거시기’다운 ‘거시기’를 보유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거시기’를 말하는 사람의 ‘거시기’와 ‘거시기’를 듣는 사람의 ‘거시기’가 다르면 다를수록 ‘거시기’의 생명력과 존속효과는 커질 수밖에 없다. ‘거시기’의 파워는 따라서 ‘거시기’일 경우 가장 ‘거시기’하다고 볼 수 있다. ‘거시기’는 ‘거시기’를 통해서 ‘거시기’를 표현하고자하는 ‘거시기’가 ‘거시기’다울 수록 ‘거시기’의 묘미는 더욱 ‘거시기’다워질 것이다.

‘거시기’는 철저하게 어떤 상황적 맥락에서 사용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보유한다. ‘거시기’가 어떤 상황 속에서 언급되고 있는지, ‘거시기’가 어떤 상황적 배경에서 최초로 유래되었으며, ‘거시기’를 말하는 사람의 ‘거시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배경적 정보를 알지 못하면 그야말로 ‘거시기’는 ‘거시기’로 남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거시기’가 보유하고 있는 애매모호성의 정도와 강도는 ‘거시기’를 많이 언급하면 할수록 ‘거시기’ 다워진다. ‘거시기’가 ‘거시기’다워지면 질수록 ‘거시기’의 생명은 그 만큼 길어지는 것이고 ‘거시기’의 ‘거시기’성은 ‘거시기’가 될 수 있다. 똑 같은 ‘거시기’라는 말을 써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거시기’는 천차만별의 의미가 설정될 수 있다. 참으로 ‘거시기’는 한국적 의사소통의 애매모호성을 강변하는 대표적인 언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언표의 애매모호성은 이를 말하는 사람들이 ‘거시기’에 대해 부여하는 ‘거시기’적 속성의 강도나 수준을 어느 정도 조정하느냐에 따라 ‘거시기’를 듣는 사람들의 ‘거시기’에 따라서 ‘거시기’의 애매모호성이 심화될 수 있다. ‘거시기’의 생명력과 존재론적 조건은 따라서 ‘거시기’에 담겨진 다의적 의미와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번안될 수 있다. 세상의 수많은 ‘거시기’들이 ‘거시기’를 이해하기 위해 ‘거시기’를 말하는 사람의 ‘거시기’에 대한 자신의 의미부여와 해석 방식이 ‘거시기’를 듣고 있는 사람과 코드와 일치하면 할수록 ‘거시기’는 오히려 그 효용가치를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거시기’는 뭔가 분명하게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표현하는 한국인의 대표정인 언어다. ‘거시기’라는 단어로 포장하는 이유는 우선 자신은 분명히 알지만 분명히 아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달하기 어려울 경우에 ‘거시기’라는 말로 얼버무린다. 얼버무리는 미적지근함과 어중간함을 분명하게 논리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고 비판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거시기’처럼 언어적 의미표현수단에 어느 정도의 어중간한 애매모호성과 예측하기 어려운 블확실성이 가미될 경우 이를 듣는 사람의 상상력을 촉발시킬 수 있는 가능성과 강점도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거시기’는 ‘거시기’를 말하는 사람과 ‘거시기’를 듣는 사람 간에 ‘거시기’의 의미파악을 위해 상호 공동으로 어느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서 ‘거시기’에 담겨진 ‘거시기’를 인내심을 갖고 찾아내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거시기’를 말하는 사람의 사연과 배경, ‘거시기’가 언급되는 전후좌우의 상황적 맥락을 살펴보면서 ‘거시기’에 담겨진 의미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의 과정에서 ‘거시기’를 둘러싸고 있는 의문의 장막은 서서히 걷히고 비로소 ‘거시기’에 담겨진 의도를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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