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 지향적 학문과 정착 지향적 학문

사막의 오아시스 주변에서 농사를 짓는 정착민들은 오아시스 주변을 벗어나면 죽음이지만 양떼들을 몰고 다니면서 초원에서 풀을 뜯어 먹이는 유목민들에게 정착이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잠시 머무는 동안 양떼들은 초원의 풀을 모두 뜯어 먹기 때문에 곧바로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하지 않으면 생존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착이 한 민족에게는 죽음을 또 다른 민족에게는 생존을 의미한다. 같은 맥락에서 이동은 정착민에게 죽음을, 유목민에게는 평범한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이렇게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서로가 상생하는 삶을 통해서 오랫동안 성장하고 발전해왔다. 오히려 상생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면 어느 한 종족도 오랫동안 종족을 유지하고 발전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기동력과 전투력을 갖춘 유목민은 정착민들을 외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대신 정착민으로부터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었다. 정반대의 기질과 역량, 삶의 양식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쌍방간에 호혜적인 상생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유목 지향적 학문은 하나의 학문분야나 관심분야에 오랫동안 깊이 파고드는 탐구를 하기 보다는 새로운 트랜드와 이슈에 따라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학문적 취향이라고 볼 수 있다. 유목 지향적 학문이 끊임없이 옮겨 다닌다고 해서 학문적 정체성과 주체성이 없이 단순히 옮겨 다니는 기생적 학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더욱이 유목 지향적 학문이 뿌리와 핵심없이 유행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시류 편승적 학문적 스타일을 지칭하지 않는다. 유목민이 생존을 위한 부단한 이동을 통해 일정기간 정박하고 또 다시 새로운 삶의 목적지로 이동했던 것처럼 유목 지향적 학문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한 새로운 트랜드와 이슈를 포착하고 이를 심화·발전시켜 종국에는 학문적 경쟁력을 강화시키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 유목민이 한군데 오랫동안 정착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목 지향적 학문도 오래전에 배웠던 학문적 탐구결과에 안주하지 않고 자기 정체성과 주체성위에 늘 자기 변신을 시도하기 위한 새로운 분야를 탐색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정착 지향적 학문은 한 학문분야에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그 것의 진가를 파악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할 뿐만 아니라 해당 학문분야에 담겨진 의미들을 캐내기 위한 깊이 있는 천착을 주로 한다. 정착민이 한 군데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의미하지 않는 것과 같이 정착 지향적 학문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학문분야에 오랫동안 안주하면서 별다른 학문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정주(定住)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정착 지향적 학문은 자신의 전공분야를 선정하고 그 분야의 세계 최고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함으로써 자기 전공분야의 정초(定礎)를 놓는 전력투구의 학문적 노력을 지칭한다. 정착(定着)은 정주가 아니라 정초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정초를 세운다는 의미는 자기 전공분야의 확고부동한 기반을 다지고 이를 토대로 세파와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학문적 집을 짓고 그 집안에서 자신의 학문분야를 지속적으로 연마해나간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유목 지향적 학문이 유목을 통한 새로운 트랜드와 이슈를 포착해서 정착 지향적 학문에게 나눠 줄 수 있으며, 정착 지향적 학문은 그런 학문적 트랜드와 이슈가 정착(定着)을 넘어서서 토착(土着)되기 위해서는 어떤 별도의 노력이 필요한지를 알려주는 상생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유목 지향적 학문은 세계적인 변화추세와 트랜드를, 정착 지향적 학문은 그것의 토착 가능성과 토착화 방안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공생의 길을 간다면 학문발전은 물론 학문의 실천 지향적 성격을 강화시켜 학문의 자가발전을 선순환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정착(定着)이 정주(定住)를 통한 안주(安住)를 의미하지 않고, 유목(遊牧)이 유희(遊戱)와 유세(遊說)를 위한 유표(遊標)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착은 삶의 터전을 소극적으로는 방어하고 적극적으로는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의 보이지 않는 노력의 징표라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맥락에서 유목은 소극적인 측면에서 볼 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투쟁이며 적극적으로는 끊임없는 변신을 위한 몸부림의 한 노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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