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는 그것 밖에 모르는 전문적인 문외한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정답이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분야별 전문가가 문제에 대한 답을 갖고 있었다. 복잡한 일을 분업화시켜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만 신속하게 처리하면 되는 시기였다. 덩치가 큰 것은 나누고 쪼개서 분석하고 분석결과를 종합하면 전체를 이해하려는 사고방식이 유행이었다. 산업화 시대는 정해진 도로를 누가 더 빨리 달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거나 과제를 추진하는 매뉴얼이 있었고,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에 대한 처방전이 있었다. 어떤 일을 추진하는 표준이 있었고 속도와 효율이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산업화 시대에는 주어진 일을 반복해서 기계적으로 누가 더 빨리 처리하느냐가 성과창출의 가치판단 기준으로 작용했던 시기였다. 이제 정해진 도로를 누가 더 빨리 달릴 수 있느냐가 중요한 시기가 아니라 남이 가진 않은 길을 가면서 이전에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보람과 의미를 찾는 시기다. 도로에서의 속도경쟁이 아니라 길에서의 의미발견과 가치창출 경쟁으로 접어든 것이다. 도로는 빨리 가는데 목적이 있고, 길은 삶의 보람과 의미를 찾는데 목적이 있다. 도로는 방향과 목적뿐만 아니라 가는 방법도 이미 정해져 있다. 하지만 길은 얼마든지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기에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도로는 ‘정답’(正答)이 하나 밖에 없지만 길은 상황에 따라서 다른 답, 즉 ‘현답’(賢答)이 존재한다. 정답이 하나 밖에 없었던 시대였던 산업화 시대에는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고 추구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었다.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날과 같이 답이 없는 시대에는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이런 저런 시도를 하는 수밖에 없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나서는 모험을 감행하고 용기를 갖고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면서 도전하는 수밖에 없다.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한정되어 있고 필요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사람도 제한되어 있던 산업화 시대가 정보화 시대로 전환되면서 정보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접근해서 공유할 수 있는 공유재가 되었다. 보다 많은 정보를 수집해서 소유하는 사람이 권력을 행사하고 특권을 누릴 수 있었던 산업화 시대는 이제 인터넷과 디지털 네트워크 기술이 발전하면서 정보에 대한 독점권이 무너지고 있다. 정보는 이제 도처에 산재해있고 정보가 너무 많아서 걱정인 시대가 되었다. 정보를 많이 소유하는 것 자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단순히 무엇을 알고 있는지의 여부를 물어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경쟁력의 원천은 정보량이 아니라 정보가공능력과 가공된 정보를 갖고 활용하는 능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필요한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를 포착해서 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상황을 탈출하는데 활용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한마디로 정보검색이나 수집능력보다 정보를 목적에 맞게 편집하고 가공해서 지식으로 전환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한 사람이 모든 분야에 능통한 전문가가 될 수 없는 상황,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문제의 복잡성 수준과 난이도 수준이 높아진 시점에서 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능력은 이제 답이 없는 가운데 답을 찾아나서는 다각적인 시도와 도전정신이다. 이런 점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형 천재가 되기에는 지식이 너무나 세분화․전문화되었고, 방대해졌다. 한 사람이 모든 분야를 섭렵해서 능통해지기에는 지식의 깊와 폭이 너무 심화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고 주변 분야가 어떻게 발전되고 있으며 자신이 전공하는 분야와 어떤 구조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자기 분야만 깊이 파다가 매몰될 수 있다. 세상은 거대한 관계망으로 엮여 있다는 깨달음, 그 관계 속에서 내가 위치하고 있다는 점, 그래서 무엇보다도 관계속에서의 지속적인 상호작용과 상호의존성 속에서 삶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앎을 통해 삶을 이해하려는 본성이 있다(박이문, 2009). 우주 삼라만상에 대한 인간의 다양한 지적 욕망이 다양한 학문 분야를 탄생시켰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의 2008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 존재하는 학문 분야는 약 4,230개다(2008년 1월 통계, 한국학술진흥재단). 학문 분야(分野)나 분과(分科)는 분화(分化)를 통해 전문화되고 제도화된다. 학문 분야의 분화를 통한 전문화는 탐구영역 늘어나면서 독립된 연구 분과로 급속도로 심화․발전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학문 분야의 제도화는 전문화된 연구 분과가 학회를 만들고 학회지를 창간하면서 개별 영역 고유의 사고․논리․언어 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천정환, 2008). 학문 분야의 전문화와 제도화는 다른 학문 분야와의 원활한 소통의 벽을 높이는 역기능적 결과를 가져온 장본인이다. 학문 분야의 전문화와 함께 학문 분야별 특유의 전문용어와 개별지식 체계도 발전하면서 다른 학문 분야와의 소통이 어려워진다. 이 같은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보기를 2007년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science지의 다음과 같은 지적을 들 수 있다. “과학 연구가 점점 더 세부 주제로 파고들고 약칭과 기호들이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쓰이면서 보고서와 연구논문의 전문적이고 난해한 언어를 관련 분야의 사람들조차 이해하기 힘들게 됐다”(한겨레 신문, 2007년 4월 11일). 이처럼 학문 분야의 분화와 전문화를 통한 발전과 새로운 지식의 생성은 아는 사람만 알거나 자기 분야의 학자도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와 사고, 논리와 접근방법이 횡행하게 만들고 있다. 근대 이후 학문 발전은 곧 연구 분야별 분화와 전문화를 통한 새로운 지식의 창조를 통해 이루어져왔다.

인간의 지적 욕망으로 과학지식은 끊임없이 심화․발전되어 오면서 학문은 세계와 우주를 총체적․근원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본래적 속성에 역행해왔다. 그 결과 학문분야는 하나의 세포가 분열을 계속 하듯이 서로 다른 세계로 세분화되어 동일한 영역에 속하는 학자들끼리도 소통이 단절되어 왔다(박이문, 2009). 학문 분야의 분화와 전문화를 통해서 창조된 지식과 여기에 담겨져 있는 사고논리는 인접 분야의 사람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의 영역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런 신비의 영역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분과학문은 분과학문간 벽을 더 높이 쌓고 넘어설 수 없는 경계선을 그으면서 더욱 더 독자적인 탐구체계와 논리를 구축해나간다. 결국은 전문 분야별 보통의 상식과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의 영역’은 전체 지식체계에 대한 종합적이고 직관적인 설명과 이해가 불가능한 ‘신앙의 영역’으로까지 승화․발전되기도 한다(천정환, 2008). 학문의 분화와 전문화의 추구는 개별지식에 대한 깊이의 심화를 가져오며, 이는 결국 분과학문이 만들어 내는 지식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은 물론 분과학문간 또는 인접학문간 소통의 부재를 발생시킨다. 결국 전문 지식은 더욱 전문화의 길로 심화․발전되면서 동시에 다른 분야의 전문가는 자기 분야가 아닌 분야에 대한 전문적으로 문외한인 절름발이 전문가를 대량 양산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한 우물을 파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여전히 전문가가 되는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이제 한 우물을 파더라도 전후좌우를 둘러보고 파야 자기가 판 우물에 매몰되지 않는다. 학문 분야도 마찬가지다. 특정 학문 분야를 깊이 있게 파고들되 인접유관 분야와의 관계성을 염두에 두고 파야 된다. 깊게 파되 넓게 파기 시작해야 된다. 넓게 파면서 동시에 깊게 파고들어가야 깊게 파다가 막히거나 장애물에 직면하면 다른 길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수 있다.

현재 통용되는 지식의 구획들이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탐구영역간 지식을 구분하기 위해 인공적인 칸막이를 쳐놓은 것에 불과했지만 이런 지식의 구획들이 이제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을 만들고 건널 수 없는 경계를 만들게 되었다(장대익, 2009). 분과학문간 벽이 높아지고 경계가 확연하게 구분되면서 창조되는 세분화․전문화된 지식은 그 지식의 근원이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지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파편화․단절화되어 가고 있다. 분과학문이 늘어나면서 탄생하는 지식은 분과학문 내부뿐만 아니라 분과학문 간에도 그 출처(出處)는 물론 용처(用處)도 알기 어려울 정도로 세분화되어가고 있다(유영만, 2009). 통합적 안목을 잃고 끊임없이 세분화되는 전공의 전공을 전공하다 보니 자신의 전공이 유래된 모학문(母學文)의 실체와 본질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사태와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획일화․구획화․표준화된 지식으로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의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김광웅, 2009a, 2009b; 이어령, 2006, 2009; 이인식, 2008; 장회익, 2009; 천정환, 2008; Horx, 2008). 칸막이에 갇힌 분과학문의 세분화․파편화된 연구의 깊이로는 새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이 살지 못한다는 반성과 위기의식이 일어나면서 근대이후 학문과 지식발전의 방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경영학의 위기가 대부분의 경영학자와 컨설턴트들이 경영학이란 학문적 경계 안에 머물러 있으려는 안이한 태도로부터 기인한 것처럼(유정식, 2007), 모든 교육학 분과학문의 위기도 대부분의 교육학자들이 자신들의 학문적 경계 안에 머물러 있으려는 외골수적 사고방식에서 유래된다. 교육학이 교육현상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화된 전문가적 시각과 관점의 융합이 필요하다. 교육현상은 종합적 교육이해와 처방을 기다리고 있다. 교육현상은 교육학의 분과학문이 쓰고 있는 안경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각자가 쓰고 있는 분과학문적 개별지식의 안경으로 하나의 총체적 현상으로서의 교육현상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에는 한계와 문제점이 있음을 인식하고 교육학 분과학문간 지식융합을 통한 통합적인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시점이다.

분과학문의 전문화 추세가 갖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전체에서 분화․전문화로 가는 방향과 정반대의 노선에서 이루어지는 노력이 통합화․융합화의 길이다. 지금까지의 학문과 지식발전이 나누고 분석해서 부분을 포착, 전체를 이해하려는 환원론적 접근으로 이루졌다면 앞으로는 쪼개진 분과학문간 경계를 넘고 벽을 무너뜨리는 전체론적 접근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한 마디로 세분화․전문화 추구가 20세기 학문적 탐구였다면 통합화․융합화 추구가 21세기 학문적 탐구 추세다. 20세기가 전문가의 시대라면 21세기는 통합의 시대다(이어령, 2006). 학문 분화를 통한 전문화의 추구가 자가당착의 오류나 스스로 파 놓은 자기 한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전문성의 관점에서 안을 들여다보거나 분화되기 이전의 분야와의 구조적 관계성의 관점에 비추어 볼 필요가 있다. 두 가지 이질적 학문 분야가 만날 때 이제까지 가능하지 않았거나 이제까지와는 다른 창조적 상상력이 싹을 틔울 수 있다.

책과 학교에서 배운 파편화된 지식, 특히 전공 분야별로 나누고 쪼개서 습득한 지식만으로 격변하는 복잡한 사회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현실은 전문가도 필요하지만 전문적 지식을 통합하는 종합적 이해력을 요구한다. 전문가는 전문적으로 문외한(門外漢)인 사람일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기 분야를 조금만 넘어서면 전문적으로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는 그것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만나는 현실은 종합시험과 같아서 일상의 어느 한 곳에서도 학창시절처럼 과목별로 성적을 받아낼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가 구하는 지혜는 통합적이면서 일반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이면희, 2008, p.11). 예를 들면 경영학자는 전공을 나누어서 경영을 연구하지만 경영자에게 경영은 하나의 총체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경영자에 필요한 지식은 경영학적 전문 지식일 뿐만 아니라 경영을 총체적으로 읽고 이해하는 안목과 식견이다. 경영자에게 필요한 지식은 경영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경영학적 지식을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몸으로 느끼고 체득한 지적 안목과 인격적 지식(personal knowledge)이나 실천적 지식(practical knowledge)이다. 실천적 지식은 문서나 말로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체화(體化)․체득(體得)(embodiment)된 지식이다. "경영학자는 경영이론에 해박하지만 슈퍼마켓 하나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며, 능력있는 실무 경영인이라도 이론에 관해서는 입도 못 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해답은 바로 노하우의 차이에 있다(p.152)." ‘정보의 사회적 생활’(The Social Life of Information)이라는 책을 ‘비트에서 인간으로’라는 책으로 번역된 책에서 인용한 말이다. 경영학자와 경영자는 우선 존재이유가 다르고 삶의 목적과 추구하는 방향성이 다르다. 우선 경영학자는 학문적 탐구를 통한 진리의 발견과 이를 통한 해당학문의 학문적 성숙은 물론 지적 정교화 작업에 매달린다. 반면에 경영자는 복잡하고 어렵고 심오한 철학이나 이론보다는 단순하지만 노하우적 지식을 포함하고 있어서 자신이 고민하는 문제를 쉽게 적용해서 해결해줄 수 있는 실천적 이론과 방법론을 개발해달라는 요구가 많을 것이다.

문제는 경영학자의 존재이유를 경영자와 관련지워 생각해볼 때 경영학자의 존재이유가 다르게 이해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줄 수 있다. 경영학자는 경영전반에 대한 지식창출, 법칙 정립, 모델 개발, 이론 구성 등 경영현상을 설명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학문적 활동을 전개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존재이유는 당연히 이런 학문적 탐구활동을 통해서 산출된 다양한 연구결과를 실제 경영현장에 적용하여 본래 의도하고자 했던 모종의 변화를 이끌어 냄으로써 나름대로의 보람과 학문적 삶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경영학은 특히 경영이라는 현상의 총체성과 복잡성, 그리고 역동성을 인접분야의 이론적 관점과 탐구 방법론을 통해 구축해나가는 일종의 응용학문이자 실천지향적 학문분야에 속하는 대표적인 학문이다. 한편 경영학의 최종 고객은 경영현장에서 실제로 경영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경영학자의 존재이유는 경영학의 최종 고객을 위해 경영활동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지식과 모종의 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 유익한 혁신기법 등을 제공하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문제를 제기해볼 수 있다. 경영학자가 쓴 학술논문을 경영자가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는가? 그 대답은 그렇게 만족스러운 대답을 기대하기 어렵다. 극단적으로 항상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경영자가 경영학자가 쓴 학술논문이나 책을 거의 보지 않는다면 누구의 잘못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쌍방간에 어느 정도의 문제점이 공존하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지만 일차적으로 경영자가 경영학자의 학술논문이나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읽어본들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경영성과를 달성하는 데 별다른 도움을 제공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또한 실제 경영현장에서 거의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용어와 실제와 거의 관련성이 없는 이론이나 기법의 난무로 경영현장을 개선하는데 기여하기보다는 오히려 경영자를 착각에 빠뜨리거나 경영현실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즉 경영학자가 창출하는 경영학적 이론이나 방법론의 출생근거는 경영자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경영현장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수많은 구성원들이 모여서 엄청나게 오랫동안 생사고락을 같이한 경영현장에 다양한 프랙티스를 통해 축적해온 상황구속적 이론이나 방법론이 잠재되어 있다. 경영의 노하우가 살아 숨쉬는 경영현장를 매개로 이론화시키지 않는 그 어떠한 이론과 방법론도 경영현장을 설명하고 이해하는데 올바른 관점을 제공해주기 어려울 것이다.

경영은 경영현상의 총체를 다루지만 경영학자는 자신이 전공하는 분야를 세분화시켜 그 분야에 대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수준에서 논의를 전개하고 실천현장의 문제에 대한 처방책을 강구한다. 경영학자는 그야말로 자신이 전공한 안목과 식견의 범위 내에서 동원할 수 있는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해결대안으로 총체적 실체로서의 경영을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전개한다. 즉 경영자는 경영전반에 대한 총체적인 해결대안을 갈망하지만 경영학자는 자신의 전공분야와 자신이 이제까지 습득한 지식체계에 비추어 처방책을 제시한다. 따라서 경영학자가 제시하는 해결대안으로 경영의 일부가 개선될 수 있지만 경영자가 바라는 경영전반의 획기적인 대안마련에는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경영학자가 경영현장에 유효적절한 처방적 지침을 제공해주기 해서는 경영자가 고민하는 경영현상 전체에 대한 안목과 식견이 필요하다. 경영학자는 자신이 다른 이론적 문헌이나 근거를 기반으로 경영학적 이론화 작업과 방법론적 대안 마련에 관심을 둘 필요도 있지만 실천현장에서 매일매일 역동적으로 살아 숨쉬는 경영의 총체를 이론화시켜 경영학적 이론의 설명력과 이해력을 제고시킬 필요가 있다.

이런 현상을 경영학만이 해당되지 않는다. 경영에 '학(學)'자가 붙으면 학문적 탐구대상을 세분화시켜 연구하듯이 여타 학문분야, 예를 들면 교육에 '학'자 붙어서 교육학이 되면 교육철학, 교육행정학, 교육과정, 교육인류학, 교육사회학, 교육경제학, 교육통계학, 교육공학 등과 같은 분과학문이 각각의 아파트에 입주를 시작한다. 분과학문이 입주한 아파트 집 내부는 모(母) 학문을 더 세분화시켜 각자의 전공영역에서 따로 따로 따로 연구를 진행하는 세부 전공분야가 된다. 그 연구가 심도를 더해가면서 모학문과는 거리가 멀어질 뿐만 아니라 전공 분야가 탐구하는 교육현상이나 실제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파워는 더욱 약해질 수 밖에 없다. 나아가 교육학의 분과학문으로 세분화되면서 교육적 설명과 이해를 촉진하는 교육학적 안목보다는 교육학이라는 말 뒤에 붙어 따라다니는 철학적, 행정학적, 사회학적, 인류학적 설명과 이해가 앞서게 된다. 예를 들면 교육사회학적 연구가 심도를 더해가면서 교육의 사회적 과정과 여기에 관여하는 사람들 또는 이들간의 상호 작용과 제도, 그리고 시스템고 문화 등을 사화학적 관점에서 사회학적 방법론을 원용하여 탐구의 깊이를 더해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문제는 모학문에서 분화된 분과학문도 더 세분화를 거듭하여 자신의 전공영역을 설정하고 자기전공에 대한 철저한 깊이를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모학문은 물론 인접분야의 학문적 발전추세와 최근 이슈, 전반적인 학문적 패러다임 전환에 눈을 감는 경우가 발생한다. 관계론적 넓이 추구와 전체학문적 관점과의 구조적 의존성 보다는 심층적인 깊이 추구에 몰두하기 시작하면서 전체적 안목과 식견을 상실하고 있다는 데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다.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서 해당 분과학문의 전공에 몰두하는 학자는 심지어 모학문에서 통용되는 개념조차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수평적 교류와 소통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주어진 문제상황에 대한 전문가적 처방은 언제나 자신의 눈으로 본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부분적인 처방이다. 전문가의 눈으로 본 문제와 문제에 대한 처방전은 문제는 해결될 수 있으며, 자신이 제시하는 답이 언제나 맞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전문가가 제시한 답은 자신이 아는 범위내에서만 답으로 통용될 수 있으며, 자신이 갖고 있는 전문성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답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Keinichi(2009)는 '지식의 쇠퇴'라는 저서에서 '가르치다'(teach)의 의미에 대한 의미심장한 해석을 음미해보면 전문가의 문제에 대한 전문적 처방은 답이 아닐 수 있다. '가르치다'를 의미하는 영어 'teach'에는 답이 있다는 전제가 있다. 즉 답을 알고 있는 전문가나 교사나 답을 모르는 학생이나 후진에게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teach’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의 뒤안길에는 “답이 없으면 가르칠 수 없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문제상황이 복잡하고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애매모호한 상황이라면 누구도 이것이 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 대해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지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하고 모색하는 길 밖에 없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기에 선진의 기존의 지식과 경험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이제 선진으로서의 전문가나 교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후진들로 하여금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측면지원하고 용기를 북돋우며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 밖에 없다. 한 가지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상화에서는 가르치기보다는 코우칭이 필요하다. 가르친다는 것은 답을 알 고 있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지식이나 이전의 경험에 비추어 어떻게 하라고 지도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답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가르치는 행위는 이제 무의미하다. 



출처: http://blog.naver.com/kecologist/7007998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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