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중경삼림(重慶森林)의 실연치료기!
<프롤로그>
춘향과 이몽룡처럼 운명적인 만남으로 일생을 해로하는 시대는 지났다. 현대를 살아가는 남녀는 여러 번의 사랑과 이별의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진정한 사랑을 찾아간다.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행복했던 기억에서 벗어나는 데는 많은 아픔과 고통이 따르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때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 1994>에서는 청춘남녀가 실연의 힘든 시기를 딛고 새로운 사랑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가슴 설레는 사람을 만나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힘든 여정을 극복게 하고 보상해주는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중경삼림(重慶森林)의 실연치료기!
<영화 줄거리 요약>
중경삼림은 2개의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은 에피소드 2부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경찰인 663번 (양조위 분)은 얼마 전 항공사 승무원인 여친과 헤어졌다. 평소 그가 자주 가는 스낵바의 종업원 ‘페이(왕페이 분)’는 그를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어느 날 그 승무원이 스낵바에 찾아와 이별의 편지와 아파트 열쇠가 든 봉투를 맡기고, 페이는 경찰에게 전해준다. 하지만 이별을 인정하기 싫었던 633은 페이에게 당분간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페이는 열쇠를 가지고 그가 사는 아파트에 드나들며 그와 전 여친의 사랑의 흔적을 청소하고 자신의 색깔로 새롭게 장식한다. 페이의 방문을 모르던 경찰은 페이의 노력으로 서서히 실연의 아픔을 치유하고 점점 기운을 되찾게 된다. 결국 자신의 아파트에서 페이와 마주친 경찰은 그녀에게 캘리포니아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에서 만나자고 데이트를 신청한다. 그러나 페이는 오지 않고 대신 스낵바 주인인 사촌오빠가 찾아와 페이가 미국 캘리포니아로 떠났다고 알려주며 그에게 종이 냅킨에 그린 비행기표 한 장을 남긴다. 1년 후 비행기 승무원이 되어 홍콩의 스낵바로 돌아온 페이는 경찰 663이 자신을 기다리며 사촌 오빠의 스낵바를 사들여 레스토랑을 개조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중경삼림(重慶森林)의 실연치료기!
<관전 포인트>
A. 중경삼림(重慶森林)의 뜻은?
영화의 무대가 된 홍콩 침사추이 지역 건물들의 복잡하고 혼잡한 모습을 빽빽한 삼림에 비유했다. 왕가위 감독은 90년대 화려한 홍콩 도심의 모습과 사람들의 생활상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또한 자신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형형색색의 색채 등을 사용한 연출방식으로 영상미를 훌륭하게 표현했다. 또한, 마마스 앤 파파스(The Mamas & the Papas)의 캘리포니아 드림(California Dreamin, 1965) 같은 추억의 음악을 삽입하여 주인공들의 심리를 더욱 잘 묘사하였다. 1998년 7월까지 운영되었던 홍콩의 아파트와 고층빌딩 사이를 통과하던 ‘카이탁 공항’이 배경으로 영화와 잘 어울리기도 했다.

B. 스낵바 종업원 페이는 왜 경찰의 집에 드나들었나?
평소 경찰 663을 짝사랑하던 페이는 그가 새로운 남친을 만나 떠나간 항공사 승무원인 여친과 헤어지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그를 치유해주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녀는 그의 공간인 아파트를 찾아가 청소도 하고 추억의 인형도 바꾸고, 그가 실연의 고통에서 벗어나 편히 자길 바라며 생수에 수면제도 넣어주고, 어항에 금붕어도 넣어주는 등 경찰 663의 실연의 기억을 새로운 에너지로 전환하고자 했다.

C. 페이는 왜 데이트 장소인 레스토랑에 가지 않았나?
경찰 663도 페이에 대한 좋은 감정이 생겨, 놀라서 쥐가 난 페이의 다리도 마사지해 주고, 캘리포니아란 이름의 레스토랑에서 데이트 신청을 한다. 이에 페이는 경찰 663이 좋아하는 여성상이 되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가 항공사 여승무원이 되었고, 당당한 모습으로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나게 된다.

D. 경찰 663이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방식은?
그는 페이가 떠나며 남긴, 종이 냅킨에 그린 항공권 그림을 보고 페이와의 추억이 깃든 스낵바를 인수하여 자신만의 레스토랑으로 개조하며 돌아올 그녀를 묵묵히 기다린다. 1년 만에 승무원이 되어 나타난 페이에게 자신을 데려다줄 비행기표를 다시 그려달라고 요청하고, 그녀가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묻자 “어디든 당신이 데려다줄 곳으로”라며 새로운 사랑의 시작을 알린다.

E. 여자주인공 왕페이는 어떤 배우인가?
미국 TIME 지의 표지 인물로도 선정된 베이징 출신의 유명 가수로 본명은 왕비이고 예명은 왕정문이다. 영화에서 부른 몽중인(夢中人:꿈속의 사람)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그 노래는 아일랜드그룹의 크렌 베리스(Cranberries)의 Dreams를 광둥어로 번역한 곡으로 그녀만의 독특한 음색으로 환상적인 사랑을 그려냈다. [몽중인:꿈속의 그대와 1분간 안고 10분은 입 맞추었지/낯선 사랑이었는데 어떻게 내 마음속에 오게 되었는지/이렇게 가슴을 떨리게 한 걸까/나와 당신이 서로를 사랑하며/당신과 이렇게 가까이 지내며/그리워한 적은 없었던 거 같아요/왜 갑자기 나타났나요/나의 꿈속으로 들어와/날 흔들어 놓으신 건가요]
[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중경삼림(重慶森林)의 실연치료기!
<에필로그>
영화<중경삼림>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아픔까지 치유하고 에너지를 주는 페이가 아름답게 보인다. 결국, 남자는 그녀의 진심을 알고 그녀의 남자가 되기로 한다. 너무나도 쉽게 만나고 쉽게 이별하는 현대인들의 사랑 방식과는 사뭇 다른, 영화에서 진정한 사랑과 일을 찾아가는 남녀의 모습에서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낼 힘과 위안을 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코로나 사태로 사랑을 나누기도 어려운 요즘이지만, 설레는 사랑이 있다면 바이러스를 무서워만 하지 말고 자신만의 마음을 전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소설 해리포터에서 절실하고 간절한 소망이 있을 때 <필요의 방/necessary room>에서 꿈이 이루어지듯 말이다.

서태호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