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저무는 우시장, 고두현

저무는 우시장



고두현



판 저무는데



저 송아지는


왜 안 팔아요?



아,


어미하고


같이 사야만 혀.



[태헌의 한역(漢譯)]


薄暮牛市(박모우시)



牛市將欲罷(우시장욕파)


彼犢何不賣(피독하불매)


乃曰彼黃犢(내왈피황독)


應與母牛買(응여모우매)



[주석]


* 薄暮(박모) : 저물 무렵, 땅거미가 질 무렵. / 牛市(우시) : 우시장.


將欲罷(장욕파) : 장차 파하려고 하다, 막 끝나려고 하다.


彼犢(피독) : 저 송아지. / 何不賣(하불매) : 어째서 팔지 않는가, 왜 팔지 않는가?


乃曰(내왈) : 이에 말하다. / 彼黃犢(피황독) : 저 누런 송아지, 저 송아지.


應(응) : 응당 ~해야 한다. / 與母牛買(여모우매) : 어미 소와 함께 사다.



[직역]


저무는 우시장



우시장이 막 파하려는데


“저 송아지는 왜 안 팔아요?”


말하기를, “저 송아지는


어미 소와 함께 사야 해.”



[한역 노트]


젊거나 어린 세대들은 소를 사고파는 우시장(牛市場)을 직접 본 적이 거의 없겠지만, 농사를 짓는 집이라면 너나없이 소가 거의 재산 목록 1호였던 시절에는 우시장이 없어서는 안 되는 시장이었다. 시(詩)에서는 이 우시장에 송아지밖에 살 수 없는 농부와 그 아이만을 등장시키고 있지만, 어미 소에 더해 송아지까지 팔아야 하는 농부도 저만치 보인다. 가슴에 사연을 묻어두고 우시장에서 눈길이 마주치기도 했을 두 농부의 마음은, 해질녘에 날리는 저녁노을처럼 타들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결국 둘 다 다음 장이나 다른 장을 기약하며 왔던 길을 되밟아 돌아갔음 직하다. 새 식구, 송아지를 만날 기대감에 한껏 들떠있었을 아이는 이미 어두워진 길을, 아버지 뒤를 따라 고개 숙이고 타박타박 걸었지 않을까? 어둠이 깔린 그 농로(農路)를 그려보다가 역자는 어린 시절의 역자를 만날 수 있었다.


소를 살 때 어른들을 따라 우시장에 가본 적이 없는 역자는 이 시를 볼 때면, 우시장의 풍경보다는 집에서 우시장으로 실려 가던 송아지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경운기에 실려 집과 어미 소를 떠나가던, 햇살보다 눈부신 울음을 울던 송아지의 눈망울을 보며 눈물지었던 어린 시절의 아픔이, 인간 세상의 비애임을 알게 된 것은 제법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처자식을 먹여 살리거나 자식들 뒷바라지를 위해, 사람밖에 할 수 없는 일을 사람이라서 해야 했던 그 시절 아버지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비애를 말하지 않았지만 비애가 있고, 눈물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눈물이 있는 이런 시는 우리를 어린 시절 그쯤으로 데려가주는 타임머신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인도 어쩌면 그 비슷한 회억(回憶) 속에서 이 시를 지었을 법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생에는 눈물이 없는 때가 없는 듯하다. 이은상 선생이 <가고파>에서 “그 눈물 없던 때”라고 한 어린 시절 또한 그러했으니 말이다.


3연 6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역자는 오언 4구의 고시로 한역하였다. 이 시의 압운자는 ‘賣(매)’와 ‘買(매)’이다.


2020. 3. 3.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