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조금 더 힘이 듭니다.

 

그래서 다른사람이 움직이는 것도 싫어합니다. 특히 그가 저 때문에 움직여야 한다면 그것이 커피 한잔을 타거나, 물 한컵을 떠오는 일이라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가 그러고 싶어서 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분명히 희생입니다.

 

대가를 지불하는 경우라면 누구나 충분한 서비스를 받길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움직이게 했다면 그만큼의 대가를 주어야 합니다.

당연하다면 그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부모, 자식, 형제 또는 부부, 친구, 동료이기에 당연히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이니까 어떻게 해야 당연하다는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대가없이 누군가 나에게 무엇인가 해줬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친절이고 베품입니다.

 

심지어는 어떤사이면서 그럴수가 있느냐는 표현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의 공통점은 자신이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으니 타당하고, 남이 자신에게 기대만큼 하지 않으면 서운해하고 화를 냅니다.

 

상대가 움직이거나 시간을 쓸만큼의 충분한 대가를 치루지 않았다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관계없이 상대는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노력이나 시간이라 할지라도 가치가 있음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어머니께서 아침밥을 차려주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아침밥을 차려주어야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더라도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너무나 감사하고 반드시 보답해야 할 사랑입니다. 또한 그때마다 고마움에 대한 감사를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친구가 시간과 통신료를 치루면서 안부전화를 하는 것도,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동료가 일을 잠시 봐주는 것도, 이웃집 아주머니가 장보시는 길에 두부를 사다 주시는 것도, 어차피 가는 길이라며 차를 태워주는 선생님도, 그리고 그와 유사한 그 모든 경우의 친절들 중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에서도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받은만큼 베풀거나 충분한 대가를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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