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 박예분님>


겨울 허수아비


 

박예분


 

이곳이


벼가 누렇게 익었던 곳이라고


 

찾아보면


잘 여문 낟알들이 있을 거라고


 

먹이 찾는 겨울새들을 위해


찬바람 맞으며


 

논 한가운데


기꺼이 알림판으로 서 있습니다


 

[태헌의 한역(漢譯)]


冬日草人(동일초인)


 

此是水稻黃熟處(차시수도황숙처)


細看或有穀粒藏(세간혹유곡립장)


唯爲打食冬季鳥(유위타식동계조)


水田冒風作標榜(수전모풍작표방)


 

[주석]


* 冬日(동일) : 겨울, 겨울날. / 草人(초인) : 허수아비.


此是(차시) : 여기는 ~이다. / 水稻(수도) : 벼. / 黃熟處(황숙처) : 누렇게 익은(익어가던) 곳.


細看(세간) : 자세히 보다. / 或有(혹유) : 간혹 ~이 있다. / 穀粒藏(곡립장) : 곡식 낟알이 숨다.


唯爲(유위) : 오직 ~을 위하여. / 打食(타식) : (새나 짐승이) 먹이를 찾다. / 冬季鳥(동계조) : 겨울철의 새.


水田(수전) : 논. / 冒風(모풍) : 바람을 무릅쓰다. / 作(작) : ~이 되다. / 標榜(표방) : 알림판.


 

[직역]


겨울 허수아비


 

이곳이 벼가


누렇게 익었던 곳이라고


자세히 보면 간혹


곡식 낟알 숨어 있을 거라고


오직 먹이 찾는


겨울새들을 위하여


논에서 바람 무릅쓰며


알림판이 되었습니다


 

[한역 노트]


역자가 보기에 이 시는 두 가지 점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끈다. 첫째는 허수아비란 추수가 끝나면 쓸모없는 물건이 되고 마는 데도 이 시에서는 쓸모 있는 존재로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허수아비란 본래 새들을 쫓기 위하여 인류가 고안한 장치인데도 이 시에서는 역으로 새들을 부르는 장치로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특이한 점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무엇일까? 역자는 바로 시인의 따스한 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텅 빈 겨울 들녘에 애처로이 서 있는 허수아비에 대한 애틋함과, 천지가 얼어붙은 데서 먹거리를 찾아 다녀야 하는 날것들에 대한 연민이 없었다면 이 시는 지어지지 못했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입춘이 지난 이 시점에 이 시를 소개하는 까닭은 순전히 이번 입춘 추위 때문이다. “입춘 추위에 장독이 깨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입춘 무렵에 한파가 밀려오면 매섭기가 예로부터 장난이 아니었던 듯하다. 한파는, 시에서 얘기한 새들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거의 모든 존재에게 가혹한 시련이 된다.


시인의 바램처럼 새들이 허수아비가 서 있는 자리 근처에서 운 좋게 실한 곡식 낟알들을 많이 찾았다 하더라도, 봄이 멀지 않은 지금조차 아직 한참 동안은 먹이를 찾아 날고 또 날아야 할 것이다. 먹이를 찾아다니는 일이 어찌 새들에게만 만만치가 않겠는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에게도 그러하지 않은가? 산다는 것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의 숙명이기 때문에 저 새들에게나 사람들에게나 경건함일 수밖에 없다. 삶이 때로 아픔이고 때로 슬픔이라 하더라도……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세찬 바람도 무릅쓰고 서있는 겨울 허수아비는 숭고하기까지 하다. 역자는 이 시를 대할 때마다 “사람이 허수아비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는 말을 여러 번 되뇌어 보았다. 자신이 설령 하로동선(夏爐冬扇:여름 화로와 겨울 부채)처럼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하여도 저 허수아비와 같을 수만 있다면야, 뜻과 같지 못해 허허로운 세상도 그럭저럭 살 만한 곳이 되지 않겠는가!


4연 8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역자는 4구의 칠언고시로 재구성하였다. 한역시의 압운자는 ‘藏(장)’과 ‘榜 (방)’이다.


2020. 2. 11.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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